1월 1일
칠암횟집촌에서 식사를 한 후 도로 건너편의 파라솔에서 김, 다시마, 멸치젓갈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올케가 옛날에 왔던 그 포구와 풍경이 다르다고 했기에 큰포구인 대변항으로 갔습니다. 방금 바닷가인 칠암항에서 왔는데도 바다가 좋았습니다.
대변항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있는 국가 어항으로 조선 시대부터 포구가 발달한 지역이었는데, 1971년 12월 21일 1종 어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기장군은 어업 인구 3,000여 명으로 부산광역시 총 어업 인구의 31.7%에 해당하며, 19개의 어촌계가 구성되어 있는 지역입니다.
대변항은 특히 전국 멸치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의 멸치 산지로 멸치회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변항에서 어획한 수산물을 중심으로 대변리 해안을 따라 멸치회, 장어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횟집들이 즐비하며,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 봄 멸치 성어기에는 대변항을 중심으로 멸치회 무료 시식회, 멸치 털기 체험 등의 즐길 거리가 풍성한 기장 멸치 축제가 열립니다. 또한 기장의 유일한 섬인 죽도 주변에서 채취하는 미역의 산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며칠전 안타까운 뉴스가 있었습니다.
멸치잡이 선주들 갑질로 두 어선이 멸치를 잡았지만 협회의 협박으로 입찰을 보지 못 하고 아까운 멸치가 버려졌다는 기사였습니다. 이에 기장 수협측에서 갈등을 해소하고자 중재에 나섰으나 봉합에는 실패했다고 하는데 빠른 시간에 잘 마무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선이 굉음을 내며 항구로 들어 오고 두붓가에는 생선이 말려지고 있었으며, 선원들은 다음 조업을 위해 어망을 손질하기도 했습니다.
새해 첫 날이라고 달라진게 없는 포구입니다. 어머니들은 여전히 생선을 손질했으며 아버지와 젋은 외국인 노동자는 어망을 손질했습니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건물에서 영업을 하며 맞은편은 천막에서 생선이나 마른 생선, 해초류를 팔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기장멸치와 멸치젓, 액젓입니다. 우리도 한 해 여기서 멸치회와 멸치찌개를 먹은 후 멸치액젓을 구입한적이 있습니다.
어획한 멸치를 젓갈로 담근 통 같았습니다.
기장 멸치육젓입니다.
찌개용 생멸치며 뼈를 발라낸 멸치도 있었고, 생멸치를 수작업으로 말린 것도 있었습니다.
겨울인데도 생선을 말리기 위해 대형선풍기가 돌고 있었습니다. 해가 짧아 그런 모양입니다.
오징어, 대구, 가자미 등이 말려지고 있으며 굴비도 엮어서 말리고 있었습니다.
건조중인 미역입니다. 기장 미역이 유명한데 두붓가에는 소량이 건조중이었습니다.
물미역입니다. 큰비닐봉지 가득 3,000원을 하기에 한 봉지를 구입했습니다. 미역의 길이가 성인 키보다 길었습니다.
국내산 장어와 가자미가 말려지고 있는 집이었는데, 앞쪽에 생아구가 있었기에 값을 물어보니 큰놈 3마리에 1만원을 달라고 하기에 얼른 장만해 달라고 했으며, 올케와 함께 반건조 장어를 각 2만원어치 구입했습니다.
큰놈은 수육용으로 해주고 작은놈은 전을 부치게 해 주세요. 겨울이면 몇 번씩 해 먹은 아구수육입니다.
아구, 대구와 알과 이리입니다. 알과 이리를 따로 팔기도 했습니다. 대구가 워낙 크다보니 분리하여 판매를 하기도 하는데 여기 오일장에 가면 대구대가리를 따로 팔기도 합니다.
쥐치포와 반건조 오징어구이입니다.
생미역, 멸치, 다시마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생미역과 다시마를 구입했기에 사진만 찍었습니다.
구입한 물건들을 동생에게 주고는 혼자 여기저기 살피며 다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낚시를 했습니다. 뭐가 잡혔을까.
한가족이 나들이겸 낚시를 왔는데 감생이 같지요? 사진을 찍으니 아기가 누구세요?하데요. 똘망똘망한 아기의 기습이었습니다.
병어와 병어회입니다. 병어는 사찰 횟감이며 뼈가 연하여 조림으로 좋은 생선입니다.
국내산 생갈치입니다.
아래에도 있었습니다. 한 무더기를 달라고 했습니다. 부모님 찬용으로 생멸치를 구입하려다 갈치가 좋아 갈치 한 무더기를 구입했습니다.
3~5만원이었습니다. 여기는 냉동을 취급하지 않으며 모두 국내산이라고 했습니다. 스티로폼박스에 얼음까지 채워주었습니다. 그날 저녁 갈치구이를 했는데 참 고소했습니다. 생선은 도톰해야 제맛이 납니다.
대변항에서 조금만 가면 연화리의 여러 등대가 있고 해동용궁사와 오랑대이지만 우리는 해가 있을 때 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어디냐, 밥은 먹었느냐며 전화를 하셨거든요. 잠시라도 비우면 계속 전화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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