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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茶山이 반한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우리도 반했다

by 실비단안개 2019.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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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월출산 차밭을 구경한 후 멀지 않은 데 있는 백운동 정원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강진 민박을 검색하다보니 달빛 한옥마을 근처에 차밭과 백운동 정원이 있었기에 1차 계획을 수정하여 시간이 되는대로 차밭과 백운동 정원을 가보자고 했는데, 차밭이나 정원은 아침 시간이라야 제 맛이 날 것 같았으며, 또 전날에는 시간이 나지 않기도 하여 이튿날 일찍 찾았습니다.

우리가 걸었던 길이 '강진 월출산 달빛길'이었습니다. 달빛마을 전망대에서 백운동 원림까지 걸었으며, 다시 별바라기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차를 타고 무위사까지 갔었습니다.

 

윤선도의 부용동 정원, 양산보의 소쇄원 정원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정원으로 불리는 백운동 별서정원은 백운동 원림안에 있으며,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12년 지은 '백운첩'에 초의선사가 그린 '백운동도'가 담겨 있어 당시 정원 등 모습을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2006년 차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 전문 서적인 '동다기' 필사본이 발견돼 우리나라 차문화 발상지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백운동 원림 안내표지판입니다.

백운동 원림은 뒤에 있는 월출산에서 흘러오는 물이 계곡을 타고 흘러가다가 안개가 되어서 구름으로 상천하는 상스러운 풍경을 지녔다고 해서 백운이라고 붙여졌다고 합니다.

 

백운동 원림은 조선 중기 처사 이담로가 조영하여 은거한 별서 정원으로 신명규, 남구만, 임영, 김창흡, 정약용 등 조선시대의 저명한 문사들이 즐겨 찾아 많은 시문을 남겼던 공간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 중이던 1812년 이곳을 다녀간 뒤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재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2가지 풍경을 시로 지어 '백운첩'을 남겼는데 이를 근거로 현재의 모습을 재현하였다고 합니다.

 

 

백운동 별서 정원의 '백운첩과 백운동 12경'입니다.

 

 

이른 시간 백운동 원림으로 들어 가는 길은 마치 밀림으로 들어가는 듯 했습니다. 숲은 어둡고 날벌레가 많아 연신 손을 좌우로 저었습니다.

 

 

우리는 계곡을 버리고 원림을 따라 걸었는데 얼마간 걸으니 배롱나무꽃이 보였으며 그 안으로 가옥이 있었고 곧 도로가 나타났는데. 월하 안운길이었습니다.

 

 

월하 안운길을 가운데에 두고 아래로 차밭이 있었으며 윗쪽은 백운동 원림입니다.

 

 

가옥을 뒤로 하고 조금 걸으면 백운동으로 가는 오솔길이 나옵니다. 새소리와 날벌레의 세상같았던 숲과는 달리 마을은 고요했습니다.

 

 

 

백운동 화살표길을 따라 가자 곧 정약용의 백운동 12경이 이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만난길은 2경인 산다경(山茶徑)입니다. 산다경은 별시정원에 들어가는 동백나무(山茶)숲의 작은 길입니다.

 

 

자연석에 새긴 암각글 '白雲洞' 세 글자는 백운처사 이담로(1627~1701) 선생이 기록해 두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학문을 익혀 남을 이롭게 살고자 하던 주자의 백록동서원을 의식하고 '백운동(白雲洞)'이라고 바위에 새긴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백운동 암각바위를 스치자 마치 원시시대에서 현시대로 가는 듯 한 다리가 계곡위에 걸쳐져 있었으며 어슴푸레 담장이 보였습니다.

 

 

다리를 건너니 초록이끼를 쓴 창하벽이 나타났습니다. 그 초록이 어찌나 예쁜지 한동안 서성거렸습니다. 이 계곡길에는 단풍나무가 우거지기도 했습니다. 6경 창하벽과 10경 풍단(楓壇)이 어우러진 풍경입니다.

 

 

이끼바위의 구멍으로 아침해가 들어 왔으며, 백운별서의 솟을삼문이 보입니다.

 

 

백운동 정원에 들어 섰습니다. 강진은 온통 배롱나무꽃이이었습니다. 뜨거운 이 계절 배롱나무꽃은 탄산수같습니다.

9경 취미선방(翠微禪房)입니다.

화계(花階, 꽃계단)아래로 유상곡수(流觴曲水)물길이 있습니다. 은거하기에는 너무 편안한 곳, 은거하기에는 아름다워 세상에 드러내어 자랑하고픈 곳이 백운동 정원이었습니다.

 

 

 

유상곡수(流觴曲水)입니다.

두개의 연못을 두고 낮은 누마루가 배치가 되어있는 정자형태의 초가로, 백운동을 찾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보이는 정자형의 초당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11경 정선대(停仙臺)에서 내려다보면 모습이 더 잘 드러나는 곳입니다.

 

 

언덕 위, 용 비늘 껍질의 사철 푸른 소나무가 있는 7경 정유강(貞蕤岡)을 오르다보면 이시헌(1803~1860)의 묘가 있습니다

이시헌은 백운동 원림을 조성한 이담로의 6대손으로 다산 정약용의 제자입니다. 덕행과 문장이 뛰어나 유명한 시인 묵객과 관작들이 그를 찾아 백운동으로 왔고 특히 다산 정약용, 초의선사, 소치 허련 등 당대 최고 명사들과 교유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차 전문서인 '동다가'를 필사기록으로 남겨 우리나라 차의 역사를 다시 쓰게 했으며, 삼증삼쇄라는 독특한 제다법으로 차를 제조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후손 이한영은 일제강점기 때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라는 상표로 차를 만들어 판매하였고, 그 제다법과 상표가 지금까지 이어져 백운동 차문화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월남사지앞쪽에 이한영 생가가 있었는데 모르고 스쳤습니다.

 

 

월남사지를 지나면서 '월남'이라는 버스정류장을 찍었는데 초가 두 동이 이한영 생가이지 싶습니다. 월남저수지는 표지판이 있으면서 이한영 생가는 다른 곳에 있는지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 모양입니다.

 

 

비에 씻겨 고운 뫼 바라보는, 신선 머무는 작은 정자 11경정선대(停仙臺)에 올랐습니다.

 

 

정선대에 오르면 1경인 옥판봉(玉版峰)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빼어나면 1경이겠습니까.

옥판봉은 정선대 정자에서 볼 수 있는 월출산 구정봉 서남쪽 정상의 바위로 이루어진 산봉우리입니다. 아래로 백운동 정원이 보입니다.

그 사이 수목이 자라 산봉우리가 가려지기에 카메라를 힘껏 당겼습니다.

 

 

 

정선대에서 아래를 보면 백운동 정원 마당의 유상곡수(流觴曲水)가 보입니다.

백운동 원림의 내정(內庭, 안뜰)에는 계곡물을 끌어 마당을 돌아나가는 '유상곡수'가 있는데, 잔을 띄워 보낼 수 있는 아홉 굽이의 작은 물길입니다. 계곡의 물을 끌어와 곡수(曲水)를 만들고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은거중이지만 국사를 논하고 시 한 수를 읊으며 지친 마음을 달래던 휴식의 장소였을 겁니다.

 

 

정선대(停仙臺)입니다.

 

 

백운동 별서 정원으로 내려왔습니다. 접시꽃이 늦게까지 피어 배롱나무꽃을 마중하는 듯 합니다.

 

 

12경 운당원(篔簹園)은 별서 뒤편의 늘름하게 하늘로 솟은 왕대나무 숲입니다. 은거중이지만 선비의 기개가 느껴지는 숲이었습니다.

 

 

이곳은 안채가 있던 자리로 '백운유거(白雲幽居)'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백운동 정원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부녀가 나란히 앉았지만 정원 구경은 뒷전이고 딴짓입니다. 편안한가 봅니다.

유상곡수(流觴曲水)위, 백운유거 아래로 화계가 있는데, 8경 모란체(牡丹砌)입니다.

 

 

 

산 사람 색보에 조예가 깊어

호걸에게 양보하길 즐기질 않지.

그루를 나누는 법 하마 익숙해

작약 캐는 수고로움 아예 없겠네

 

화계에 심어진 식물은 목단(모란)인데 시에는 작약이라고 하니 헷갈립니다.

 

 

 

백운유거와 초당 사이에는 돌비석이 있었습니다.

 

 

 

백운유거를 살짝 비켜 사당인 듯 한 작은 건물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곳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정원을 다시 한 번 거닐어 본 후 백운동 정원을 나섰습니다. 그 사이 해가 제법 차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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