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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달마산이 품은 아름다운 절 미황사

by 실비단안개 2019.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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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강진 무위사에서 해남 땅끝 미황사까지는 약 1시간 거리였습니다. 대로를 달리다 마을길을 달리다 그렇게 달마산 미황사 주차장에 주차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미황사에 가지 않겠답니다. 한반도의 맨 끝에 있는 사찰이니 함께 가자고 해도, 여름휴가가 마치 사찰 투어 같다나요.

하긴 전날 (우리끼리였지만)남미륵사를 다녀왔으며 오후에 백련사, 3일 오전에 월남사지와 무위사를 다녀왔고, 또 대흥사까지 예정되어 있다보니 그런 말을 할 만 합니다. 어쩔수없이 차에 두고 우리 둘만 미황사로 갔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사찰은 종교이전에 역사이며 문화이다보니 여행시 사찰을 방문하는 편인데, 불교에 대해 모르지만 사찰을 계속 방문하다보면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해남 미황사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으로 유명한 명소이며, 달마산(489m) 서쪽에 위치한 사찰로 육지의 사찰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749년(경덕왕 8)에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창건한 천년고찰로 불교가 한창 흥할 때 불교의 요람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김대성의 불국사와 첨성대가 지어졌습니다.

 

미황사 일주문입니다. 미황사의 시작점입니다.

일주문 지붕은 마치 옛날 궁중 여인들의 가채처럼 무겁게 보여 기둥이 쓰러지기라도 할까 염려가 될 정도로 웅장했습니다.

 

 

일주문 앞에는 미황사 가람 안내도와 달마산 미황사 일원 소개가 있었습니다.

1,200년전 바닷길을 통해 인도 우전국에서 불교가 전해진 천년역사길, 땅끝바다와 달마산의 숲길을 새들의 노래소리와 함께 걸을 수 있답니다.

 

 

해남 달마산 미황사 일원은 미황사를 포함하여 달마산 정상까지 수려한 지형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2009년에 명승 제5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해남군 현산면·북평면·송지면 등 3개 면에 접하고 있는 달마산은 높이 489m로 해남읍에서 남쪽으로 약 28㎞ 떨어져 있으며, 땅끝 가까이에 우뚝 솟은 산입니다. 달마산은 소백산맥이 두륜산을 지나 마지막으로 일어선 산으로 삼황(三黃)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상과 바위 그리고 석양빛 등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룬 것을 의미합니다.

 

달마산이 품고 있는 미황사는 749년(경덕왕 8)에 의조(義照)가 창건한 신라시대 고찰입니다.

미황사(美黃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로 1692년에 세운 사적비에 의하면 749년에 의조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합니다.

창건설화에 의하면,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고 금의인이 황금으로 번쩍거리던 것을 기리기 위해 미황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뒤의 사적은 알 수 없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약탈과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으며, 1601년에 중창하고, 1660년에 3창했습니다.

1752년 금고를 만들고, 1754년 대웅전과 나한전을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보물 제947호)·응진당(보물 제1183호)·오백나한전·명부전·요사채 등이 있으며, 사적비와 여러 점의 부도가 전합니다.

 

 

미황사로 가는 길은 넓은 계단길이었습니다. 계단길은 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어졌기에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 오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걷는 걸 좋아 하기에 종일 걸어도 불평이 없습니다. 그것도 이렇게 산속의 길을 걸으면 들꽃의 동정도 살피며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청아한 새소리에 절로 힐링이 되는 듯 합니다. 숲의 그늘도 좋아하며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해도 반갑고 바람이라도 간간이 불어 주면 금상첨화지요.

 

 

사천왕문을 앞에 두고 달마고도 안내표지판과 안내도가 있었습니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태고의 땅으로 낮달을 찾아 떠나는 구도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개통한 달마고도(達摩古道)는 해남군과 미황사가 공동으로 기획하여 송지면 미황사와 달마산 일원에 개통한 달마산 명품 둘레길입니다.
달마고도는 천년고찰 미황사를 출발해 천년숲길~이진리임도~달마고도길~도솔봉임도~천년숲길을 거쳐 미황사로 돌아오는 17.7㎞로 짜여져 있습니다.

기암괴석이 아름다워 남도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달마산(489m) 중턱을 따라 조성된 달마고도는 순수 인력으로만 시공됐으며, 수려한 산세와 남도 바다의 너른 품을 조망할 수 있는 4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천왕이 없는 사천왕문을 지나면 찻집 선다원이 있고 사천왕문과 마주하는 자하루(紫霞樓)가 있습니다.

 

 

 

紫霞樓는 연주회, 전시회, 법회 등이 열리거나 하는 누각입니다. 이날은 템플스테이 중인 학생들이 있어 자하루에 들어 가지 못 했는데, 자하루 안에는 벽에 돌에 그려진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천불입니다. 해남에 살고 있는 조병연 작가의 작품인데 각각의 돌모양에 맞게 부처님이 그려져있습니다.

 

 

대웅보전뒤로 달마산이 솟아 있습니다. 달마산은 돌산으로 공룡의 등 같기도 합니다.

미황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로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잡석을 쌓은 높직한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웠습니다.

 

 

대웅보전 마당에는 무위사와 마찬가지로 당간지주가 양쪽에 있으며 거운데 배례석이 있었습니다.

대웅보전 현판은 조선시대의 서예가 한석봉의 글씨라고 하며, 정유재란 때에 미황사가 크게 불탄 적이 있는데 그 때에 미황사도 소실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재건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대웅전의 모습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모습입니다.

단청은 단정하게 민낯입니다.

 

 

 

대웅보전뒤로 올라가니 해남 바다가 보였습니다. 여기가 땅끝이라는 걸 알려 주는 듯 했습니다.

 

 

대웅보전과 응진전 사이의 담장에는 담쟁이와 능소화가 피어 있었으며 작은 연못에는 수련이 새초롬했습니다.

 

 

다른 절도 그러하지만 미황사는 텃밭이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템플스테이시 공양 재료인 듯 했습니다.

 

 

 

마침 점심공양시간이었기에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식판을 들고 학문학당(자하루)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절에 가면 모든게 조심스러워지는데 식판을 든 어린이들의 걸음이 너무 다소곳 했기에 보는 마음은 더 조마조마했습니다.

 

 

사천왕문을 들어 설 때 보였던 紫霞樓는 자주빛 노을이 머무는 누각이란 뜻으로 자하루는 한문학당의 글방이나 수행관, 절집을 찾는 이의 잠자리가 되기도 하는 곳입니다.

 

 

향적당앞에서 본 대웅전과 달마산입니다.

 

 

아이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어 미황사 곳곳을 관람하지 못 했는데 언제 기회가 또 주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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