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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함안 동산정(東山亭) 배롱꽃 질 무렵 풍경

by 실비단안개 2019.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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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함안으로 가는 길이니 고려동과 무진정, 함안시장만 둘러 보고 오기에는  걸음이 아까워 꼭 한 번씩 가본 무기연당과 장춘사를 검색하니 이 계절 별 풍경이 없었기에 '함안 배롱꽃'을 검색했습니다. '동산정'이 검색되었습니다. 함안천에 반영된 배롱꽃은 마치 함안천에서 붉은 꽃이 피어난듯 하여 신천지 같았습니다. 하여 고려동을 나오면서 '동산정'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동산정으로 가는 길이 눈에 익었습니다. 무진정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진정을 몇 번 다녀왔었는데 언제나 앞만보고 달렸기에 함안천과 동산정을 놓친 것이었습니다.

고려동유적지, 동산정, 무진정이 있는 지도입니다. 동산정에서 무진정으로 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 유턴을 했는데 이 길을 몇 번이나 다녔습니다.

 

 

함안천에 피어 있어야 할 배롱나무 붉은 꽃이 지고 있습니다. 고려동과 기온이 비슷한 모양입니다. 배롱꽃이 질 무렵이면 초록은 빠르게는 단풍이 들기도 할 때입니다. 생각했던 신천지는 아니었지만 첫길이니 알뜰히 즐기겠습니다.

동산정 맞은편에서 가운데 함안천을 두고 찍었습니다. 울창한 숲과 그 사이 기와집에서 옛사람의 숨결이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절벽(검암)위의 동산정으로 갑니다.

 

 

그런데 고목이 잡았습니다. 고목옆에는 야영텐트가 있었는데 장시간 숙식중인지 빨래가 널려 있기도 했습니다.

참 잘 생긴 고목이었는데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함안군은 유명 여행지만 챙기지 말고 이름없는 곳의 노거수도 챙겨주었으면 합니다. 노거수는 동산정이 있는 상검마을에도 몇 그루 있었습니다. 오래된 나무가 있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 가기에 적당한 지역임을 말해 줍니다.

 

 

 

정비되지 않은 함안천을 가로 질러 검암교가 있었습니다. 다리는 낡았기에 차가 지나갈때는 무너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까지 들었습니다.

 

 

검안교에서 보는 함안천과 동산정입니다. 눈맛이 좋았습니다.

 

 

 

검암교를 건너 동산정으로 가는 길은 회화나무 하얀꽃이 눈처럼 내려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귀한 회화나무인데 함안은 무진정에도 회화나무가 있습니다.

 

 

동산정입구의 보호수, 수령 640년의 느티나무입니다. 느티나무는 검암 주민과 동산정을 찾는 이들에게 마음까지 시원함을 주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동산정입구입니다. 좀 난해했습니다. 동산정이 어디 가지 않으니 우선 검암천 생태공원 산책로의 부분인 동산정 아래의 배롱나무군락으로 갔습니다.

 

 

동산정 안내입니다.

 

 

검암천 생태공원 산책로입니다. 이 넓은 함안천을 그동안 왜 몰랐을까요.

검암 아래로 배롱나무가 있으며 함안천을 끼고 산책로가 있습니다. 마침 여행객 두 분이 맞은편에서 오기에 함께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산책로를 함께 걸으면 좋을텐데 얼라아부지는 혼자 동산정에 간 모양입니다. 언제나 이렇습니다.

함께 걸었던 검암교가 보입니다.

배롱나무꽃길이 끊어졌기에 되돌아 동산정에 올랐습니다.

 

 

동산(東山)은 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무신 이호성(李好誠)의 호입니다. 동산정은 성산광평(星山廣平) 이씨 정무공(靖武公)의 유적지입니다.

세종 정미년(1427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40여 년간 나라에 봉직하였고, 정헌대부병조판서(현 국방부장관)겸 오위도총부도총관(현 합참의장)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는데, 세종, 문종, 단종, 세조 네 임금을 모시면서 책무에 성심 성의를 다 하였다고 합니다.

 

公은 벼슬을 그만두고 만년(1459년 경)에 물 좋고 경치 좋은 이곳 함안 제일의 대명지에 정자를 세워 풍류를 즐겼는데, 을축년(1505년)에 손자인 옥포만호 희조가 공의 높은 덕을 기리기 위해 초정(草亭)으로 단장하고 '동산정(東山亭)이라 이름하였습니다. 1935년에 집채가 오래되고 낡아서 정면 4칸, 측면 2칸 두리기둥소로 수장한 팔작집 규모의 현 건물로 중건하여 2008년도에 경상남도 문화재 44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公은 금산(지금의 김천)에 살았으나 경상도관찰사, 이조참의를 지낸 함안인 광주안씨 안여경의 사위가 된 연유로 동지산에 잠시 우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약 600년 전) 후손들은 검암에 세거하게 되었고, 동산정앞 국가지정보호수 느티나무도 公이 심었다고 합니다.

김천 사람이 함안천변에 정자를 왜 지었을까 하는 의문은 동산정 안내문을 읽은 후 풀렸습니다.

 

 

동산정으로 오르니 얼라아부지가 내려 왔습니다. 모기가 너무 많답니다. 절벽위에 지은 동산정이다보니 입구가 좁았으며 안전을 위해 울이 있었습니다.

 

 

동산정 입구의 안내입니다.

 

함안 검암리 동산정(咸安 儉岩里 東山亭)

 

동산정은 검암천의 절벽 위에 위치하는 근대기 정자건축으로, 조선조 세조때 경상우도처치사와 병조판서를 지낸 이호성이 창건하고 그의 손자 이희조가 중수했다고 한다.

동산정은 산수가 수려한 함안군 가야읍 검암리에 자리 잡고 있다. 뒤는 산림이 울창한 동지산이 위호하고 앞은 항상 맑은 물이 흐르는 여항천이 있다. 동산정은 여항천에 면해 20여m의 절벽 위 절경에 자리 잡고 있다. 동산정은 사대부들이 處士的 취향을 가지고 고향의 풍속을 바로잡고 교화에 힘쓰고 학문 연구에 힘쓰던 중종대 창건되었다.

동산정은 정면 4간, 측면 2간 규모이다. 평면은 중앙부 2간에 온돌방을 꾸미고 그 좌우에 1×2간의 넓은 우물마루를 둔 형태이다. 이처럼 온돌방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에 마루를 배설하는 형태는 경남 서부지역과 호남의 정자건축에서 볼 수 있다.

온돌방의 정면과 측면에는 주간의 폭만큼 사분합문을 달았다.
온돌방 정면의 키 큰 띠살문은 머름이 없는 형태이고, 廳房間(청방간) 분합문에는 근대형식의 팔각의 불발기가 달려 있다.
우측 온돌방과 마루 사이의 분합문은 네 짝을 모두 분실하여 최근에 새로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온돌방 정면의 사분합문 위에는 채광을 고려하여 길게 교살의 고창을 설치해 놓았으며, 高窓(고창)의 중앙부에는 방형의 작은 환기창을 시설했다. 이러한 교살의 가로 긴 형태의 고창은 마루 양 측면의 판문 위에도 시설되어 있으며, 다만 여기에는 환기창이 없다.

동산정은 소로로 수장한 홑처마 팔작집이다. 시멘트 몰탈로 마감한 기단 위에 원형의 다듬은 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워 3량가의 지붕틀을 지지하는 구조이다. 기둥은 원주와 각주를 혼용했는데, 온돌방 주위에만 각주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원주를 사용했다. 지붕 네 귀에는 연목을 마족연의 수법으로 걸었다.

사주문 형식의 소원문은 간략한 3량가의 홑처마 맞배집이다.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주 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지지하고 있다.

 

조선중기 사대부들이 處士的(처사적) 취향을 가지고 고향의 풍속을 바로잡고 교화에 힘쓰고 학문 연구에 힘쓰기 위해 정자를 짓고 소요하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여 창건되었다.
동산정은 구조수법이 견실하고 의장면에서 근대적인 성격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어 근대기 정자건축의 특징과 변화양상을 잘 보여 준다.

 

 

동산정에 들기전에 배롱꽃과 함안천을 봤습니다. 가로수가 즐비한 도로는 79번 국도입니다.

 

 

동산정으로 듭니다.

출입문은 소원문(溯原門)입니다. 간략한 홑처마에 맞배지붕을 하였습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담장 용마루에 세월이 쌓였으며 모퉁이에 멋대로 자란 향나루 한 그루가 있습니다.

 

 

동산정 담장밖의 배롱꽃과 함안천입니다. 600년도 더 전 부터 흘렀던 함안천은 함안의 숱한 이야기를 바다로 날랐을 것이며 公은 때로는 무심히 또 때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바라 봤겠지요.

 

 

 

동산정입니다.

이 정자는 동산(東山) 이호성(李好誠)의 덕을 추모하여 조선 연산군 3년(1497년)에 손자인 이희조(李希祖)가 세웠고, 이호성의 호를 따서 동산정이라 하였습니다. 동산정은  홑처마 팔작지붕집입니다.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2칸입니다. 구조는 가운데 2칸에 온돌방을, 그 좌우에 마루를 두었습니다.

 

 

 

동산정 함안천 절벽 20m위에 있다보니 마당에도 바위가 드러나 있습니다.

 

 

동산정 좌측에서 우측으로 돌아 봅니다.

온돌방의 정면과 측면에는 주간의 폭만큼 사분합문을 달았으며, 온돌방 정면의 키 큰 띠살문은 머름이 없는 형태이고, 廳房間(청방간) 분합문에는 근대형식의 팔각의 불발기가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고려동 안채에서 본 그 모양으로 팔각의 불발기라고 하는군요.

* 불발기 : 종이를 두껍게 바른 장지문의 한가운데에 교살이나 완자 살을 짜 대고 창호지를 바른 문.

 

 

좌측 마루뒷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이날은 배롱꽃의 날이었기에 배롱꽃이 보이도록 찍었습니다.

 

 

우측마루 뒷쪽에서 찍은 동산정입니다.

 

 

현판이 여럿 있었습니다.

 

 

600년보다 더 많은 세월을 이고 있는 담장 용마루입니다. 오랜 세월 잘 견뎌주어 감사하다고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고택이나 사찰 등 오래된 건축물은 꽃을 대하듯 손을 대지 않는 편입니다. 담장 끝의 오래된 붉은 벽돌계단을 오르면 성산이씨 조상을 기리는 비석이 있습니다. 

 

 

 

 

벽돌계단쪽 담장에서 다시 함안천을 봅니다. 배롱나무 붉은꽃이 조금 남아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동산정을 나섭니다. 풍경을 담되 배롱꽃이 주인공이 되도록 찍었습니다.

 

 

동산정 울밖에는 낡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문화재 근처에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낡은 가옥은 보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하여 그 가옥을 확인하기 위해 가면서 찍은 동산정입니다. 와송이 아닌 망초가 용마루에 자라고 있었습니다.

 

 

동산정 담장에도 소통 구멍이 있었습니다.

낡은 가옥입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담장의 구멍으로 안을 보니 비석이 있는 곳으로 가는 벽돌계단이 눈이 들어 왔습니다. 작은 구멍으로 봐도 세월이 보입니다.

 

 

검암리 마을길을 걸으면서 본 식물입니다. 함안천변이지요. 꾸지뽕과 피마자입니다. 피마자 열매가 익었기에 따가웠지만 몇 알을 바지 주머니에 넣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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