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절영 해안산책로에서 피아노 계단을 오르면 흰여울 문화마을입니다. 부산은 지형 특성상 산복도로에 건물이 많은데, 산복도로는 전쟁의 기억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산비탈에 판자촌을 이루고 살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판자촌 대신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차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산복도로는 영주동 산복도로인데 이 도로는 수정동으로 이어지며 부산의 야경을 감상하기에 좋지만 이건 순전히 여행객의 생각이며, 그들의 삶은 지금도 고달플 수 있습니다.
영도 흰여울 문화마을도 영선동에서 태종대로 가는 산복도로에 위치하며,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바닷가 절벽에 집을 지으며 형성된 마을로, 2011년부터 빈집에 지역 예술가 등이 작업공간을 마련하고 벽화 등으로 마을을 꾸미면서 외지 관광객들에게 알려졌습니다만 이제서야 흰여울 문화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흰여울 문화마을의 골목길은 흰여울길인데, 흰여울길은 예전에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림으로써 마치 흰눈이 내리는 듯 빠른 물살의 모습과 같다하여 흰여울길이라 하는데, 흰여울길 주변일대를 제2송도라 일컫습니다. 바다 건너편 암남동의 송도를 제1송도라 하고 마주 보고 있는 이곳을 제2송도라 하였습니다.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등 영화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지역민이 거주하는 공간이기에 통영 동피랑과 감천 문화마을처럼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흰여울 문화마을은 2011년 12월 공·폐가를 리모델링하여 지역 예술가의 창작의욕을 북돋우고, 영도 구민들로 하여금 생활 속 문화를 만나게 하는 독창적인 문화·예술 마을로 거듭났는데 젊은 작가들의 창작공간이 여럿 있었으며, 카페와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그림처럼 있었습니다.
절벽위의 담장이 포토존으로 변했으며, 계단도 좋은 포토존이었습니다.
마을은 계단식이며 폭은 좁았지만 거주민들의 아기자기한 생활상을 엿볼수 있었는데, 그들은 흰여울이라는 마을 이름만큼이나 예쁘게 살아가는 듯 했습니다.
중리로 가는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전에 동삼중리에서도 살았으며 대교동에서도 잠시 살았기에 오래전 봄날에 이 언덕 어디쯤에서 쑥을 캐기도 했으며, 이송도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기도 했지만 옛날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흰여울 마을은 새로운 마을이 되어 있었습니다.
앞글에서도 이야기를 잠시 했지만 묘박지 설명입니다.
배 주차장인 묘박지에는 경기가 좋을 때는 수십 척의 배들이 빼곡하게 들어차는데 지금은 몇 척만이 잔잔한 바다 위에서 미동도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한해가 시작되는 새해 0시에는 묘박지에 정박하여 있는 배들이 일제히 뱃고동을 울린다고 하니 12월 31일에 가면 또 다른 흰여울 마을만의 풍경을 만날수 있습니다. 이때는 동영상으로 담아야 겠지요.
해안 산책로를 걸을 때 담은 묘박지 풍경입니다.
하늘이 맑아 바닷물이 마구마구 빛났습니다.
해안 산책로를 걸으며 위를 올려다 볼 때는 건물들이 위태롭게 보였는데 언덕이 굳건한 듯 하여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모형 등대가 있는 이곳은 모두가 쉴 수 있는 쉼터입니다. 마을 곳곳에는 흰여울 마을 안내도와 주의 사항이 안내되어 있었기에 낯선 지역일지라도 안내도를 보면 친근감이 느껴질 겁니다.
절영 해안산책로가 파랑색이 위주인데 흰여울 문화마을은 흰색이 주입니다. 흰여울과 잘 어울리는 색이며, 절벽위에 조성되어 있는 마을로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연상케 하기에 부산의 주요 여행지로 손꼽힙니다.
남항대교와 바다 건너의 송도가 보입니다.
마을 안내도입니다. 공방, 카페, 작은점방과 계단 등이 안내되어 있습니다.
공사안내가 있었는데 절벽위의 담장을 새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시는 분들도 그랬지만 여행객도 불평 한마디 없이 좁은 골목을 걸었습니다.
계단식 마을이다보니 공간활용면에서 뛰어 났는데 담장에 선인장을 올려 두었으며, 건물의 창문 아래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화원을 꾸미기도 했고, 나이 드신 어르신 한 분은 작은 나뭇가지로 화분의 울을 만들고 계시기도 했습니다.
담장위는 고양이의 안락한 쉼터가 되기도 했습니다.
흰여울 안내소는 영화 변호인의 촬영 장소이기도 한데 현재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변호인'촬영지는 배우 고 김영애 씨가 운영하는 국밥집으로 설정됐지만, 마당으로 들어서는 계단과 집의 겉모습만 나왔을 뿐 실제 국밥집 장면은 다른 곳에서 찍었다고 합니다. 담장에는 그의 사진과 함께 명대사도 적혀 있었습니다.
"니 변호사 맞재? 변호사님아, 니 내 쫌 도와도"
세상을 뜬 그분의 얼굴과 음성이 새삼 그립습니다. 어제 케이블에서 '형제의 강'을 잠시 시청했는데 그분은 희생하는 우리나라의 어머니를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안내소에 잠시 들렸습니다. 변호인 영화를 관람했지만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작가가 여행객을 창문밖에 앉게 하여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으며 방이 여러칸 있었는데 쉼터같은 방도 있었고, 종이박스로 흰여울 마을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으며 작가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흰여울 마을은 아기자기함이 넘쳤습니다. 바다위에 걸쳐진 솔방울도 새롭고 차림표가 삼각깃발인것도 새로웠습니다. 언니네집에서는 볶은 커피콩을 바닷바람으로 식히고 있습니다.
가장 핫한 흰여울 핫도그점입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닥스훈트(몸통이 길고 사지가 짧은 독일 개) 모양의 프랑크푸르터 소시지가 미국에서 핫도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인데, 그 유래가 벽에 붙어 있기도 했으며 인형들이 많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진만 찍고 핫도그옆의 계단을 올랐습니다.
계단은 김소운의 수필 '외투'를 약간 비켜 이어졌습니다.
김소운은 부산 영도 영선동 출신의 시인, 수필가, 번역가입니다. 시비(詩碑)가 흔한 세상에 손글씨의 수필을 읽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 벌써 10여 년, 채 15년까지는 못되었을까? 하얼빈서 4, 5백리를 더 들어간다는 무슨 현이라는 데서 청마 유치환이 농장 경영을 하다가 자금문제인가 무슨 볼 일이 생겨 서울을 왔던 길에 나를 만났다. 2, 3일 후에 결과가 시원치 못한 채 청마는 도로 북만(北滿)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외투옆의 자물쇠가 채워진 공간은 화장실 내지 연탄창고였지 싶습니다. 옛날에는 거의 이랬거든요. 흰여울 마을에는 수도계량기가 계단 아래 빈공간에 있기도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풍경들입니다.
계단을 오르면 차도입니다. 흰여울 마을로 가는 또 다른 길이 되는 곳입니다.
작은 점방에 들렸습니다. 먼저 휴대폰 충전을 부탁했습니다.
갤럭시 s6이다보니 배터리가 분리되지 않으며 내장형 1개라 충전기를 가지고 갔습니다. 이날은 카메라를 들지 않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다보니 배터리 소모량이 많았기에 충전을 부탁했기에 점방 사진은 없습니다. 우리는 팥빙수를 두 개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날씨가 여름 날씨였다보니 시원한 것이 간절했거든요.
이 점방은 작았지만 메뉴가 다양했는데 우리가 팥빙수를 먹고 있으니 근처 공방의 처자가 와서 5,000원에 김밥과 떡뽁이, 어묵탕이 가능하느냐고 물었으며 주인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공방 처자의 점심인 모양이었습니다.
조금 충전되긴 했지만 휴대폰을 받아 다시 골목으로 들어 섰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예쁜 카페가 참 많았습니다.
걸어 온 길을 뒤돌아 보고 아래를 보기도 했습니다. 바닷물은 여전히 반짝거렸습니다.
절영 해안산책로를 걸을 때 언덕을 지탱하고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래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걷기 시작한 곳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사진이 잘못되었나 봅니다. 분명 언덕을 오르는 골목이었거든요.
사람들은 여전히 긴 가로와 세로의 골목을 찾아 걷고 있고 바다를 품은 흰여울 문화마을은 그 자리에 꼼짝않고 있었습니다.
담장따라 흰여울길
흰여울길은 태평양을 품고 있다.
마을길은 마을의 앞마당이다.
이 길은 버스가 다니는 절영로가 생기기 전까지
영도다리 쪽에서 태종대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곳 골목길은 마을 사람들의 고단함과 웃음소리를
함께 기억하고 있다.
담장따라 흰여울길을 걷다 보면 어린시절 뛰놀던
골목길이 언듯언듯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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