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김달진 문학관

태산목

by 실비단안개 2006. 7. 29.
728x90

태산목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목련과의 상록교목.

학명 : Magnolia grandiflora

분류 : 목련과

원산지 : 북아메리카

크기 : 높이 약 30m

양옥란()이라고도 한다. 높이 약 30m이다. 가지와 겨울눈에 털이 난다.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이거나 긴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고 길이 10∼20cm, 나비 5∼10cm이다. 끝이 둔하고 혁질(:가죽 같은 질감)이다. 겉면은 짙은 녹색으로서 윤기가 있고 뒷면에는 갈색 털이 빽빽이 나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잎자루는 길이 2∼3cm이다.

꽃은 5∼6월에 흰색으로 피는데, 지름 15∼20cm이고 가지 끝에 위를 향하여 1개씩 달린다. 향기가 강하고 꽃받침은 3개, 꽃잎은 9∼12개이다. 암술과 수술은 많으며 수술대는 자주색이다. 열매는 골돌과로서 9월에 익는데, 타원형이고 짧은 털이 나며 붉은 종자가 2개씩 나와서 붉은 실로 매달린다.

북아메리카 원산이며 관상용으로 심는다. 미국에서는 잎을 크리스마스 장식용으로 쓴다. (출처 : 네이버 백과)

 

꽃말 : 위엄

 

생가의 하얗게 큰 꽃을 피운 나무가 오늘 방문자로부터 '태산목'이라고 알려주었다.

두송이가 피었는데, 높아서 학예사님께서 사다리를 놓아주셨다.

그럼 훼나무는?

훼나무를 검색하면서 훼나무 => 회나무(槐木)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 열매의 물은 부적의 재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생가는 성흥사와 가까운 거리이며, 월하님은 불교문학을 전공하셨다.

그럼 훼나무가 회나무일 가능성이 큰데, 어디에도 이미지가 없다.

 

‘괴황지’는 순 한지에 훼나무 열매로 물들인 것인데 그 색깔이 노랑색이기 때문에 괴황지라 했다. 예부터 동양인들은 색깔을 구분할 때 청ㆍ황ㆍ적ㆍ백ㆍ흑을 오정색(五淨色)이라 불러왔다. 그런데 적색은 폐부로 볼 때는 심장, 계절로 볼 때는 여름, 방향으로 볼 때는 남쪽에 속하지만 오행(五行)으로 볼때는 화성(火性)에 속하고, 황색은 비위(脾胃)ㆍ계하(季夏)ㆍ중앙 토성(土性)에 각각 속한다. 그러므로 중앙은 모든 방향의 중심으로 6방(方), 8방(方)에 다 통할 수 있고 또 계하는 극양(極陽)으로 음(邪)를 누르는 최강의 세력이 되기 때문에 누런 종이에 빨간 주사로 부적을 쓰는 것이다.(한정섭,‘불교부적인상 소고’)

회나무(槐木)는 예부터 버드나무ㆍ복숭아나무ㆍ석류나무와 함께 귀신을 쫓는 나무로 알려져 왔으며 그 열매ㆍ잎ㆍ가지ㆍ뿌리ㆍ껍질ㆍ버섯ㆍ진 등은 모두 피를 맑고 깨끗하게 해주는 약재로도 쓰였다.

이런 이유로 하여 일반적으로 부적의 자료는 나무 부적일 경우 벼락 맞은 대추나무나 복숭아나무를 사용하고, 종이에 쓸 때는 괴황지에 경면주사를 사용하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불교에서는 여기에 향료를 가미하고 때로는 먹을 사용하기도 했다. (출처 : http://blog.naver.com/ndsan/100025943227)

 


불모산 - 성흥사 - 월하 김달진

불모산(佛母山)을 말 그대로 옮기면 ‘부처님의 어머니 산’이고, ‘불교의 으뜸 산’이다. 시원하게 뻗은 산능선을 보며 무엇을 보고 불모라고 했는지 늘 궁금했다. 산은 해발 802미터라 남쪽 해안가에 있는 산 중에서는 가장 높다. 산이름은 오래전부터 불렀던 것인데, 불모(佛母)라는 명칭이 가야불교의 시원지라는 뜻에서 붙여졌다는 이가 더러 있다. 이것은 마치 백제불교의 시원지를 불갑사(佛甲寺)라고 이름붙인 것과 같다. 불갑사는 삼국시대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래한 인도스님 마라난타(滅難陀)가 남중국 동진(東晋)을 거쳐 영광땅 법성포의 모악산에 처음 창건한 절의 이름이다. 그때가 백제 침류왕 원년이니 서기 384년이다.

불모산에는 서기 48년의 가야시대에 이미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이자 승려인 장유화상(長遊和尙)이 누이 허씨를 따라와 창건한 장유암이라는 절이 아직 남아 있다. 불모산 자락의 장유 신도시도 장유화상의 이름에서 유래하지 않는가. 어쨌든 불모산은 장유화상이 우리나라에 불교의 씨를 맨 먼저 뿌린 산이라고 보면 된다.

불모산 너머 서북쪽이 창원이고 북동쪽이 장유이고 산 남쪽에 바다가 트인 곳이 웅천(熊川)이다. ‘곰 웅(熊)’자와 ‘내 천(川)’자의 마을이다. 웅천은 지금 진해시에 포함된 변두리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웅천현의 중심지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같은 산줄기를 두고 창원 쪽의 산을 불모산(佛母山)이라 하고, 웅천 쪽의 산을 웅산(熊山)이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웅산의 꼭대기에 웅산신당(熊山神堂)이 있는데, 4월과 10월에 신당의 신을 모셔와 동네에서 쇠북과 북을 치며 잡놀이를 벌이면, 각처의 사람들이 다투어 와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웅천의 동쪽 마을이 웅동(熊東)인데 성흥사(聖興寺)는 웅동(熊東)의 불모산 기슭에 있다. 웅동은 봄이 매우 일찍 찾아오는 동네이다. 이 동네에는 봄만 일찍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일본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나라의 하고 많은 해안 중에서 왜병들이 이 동네를 맨 먼저 찾아온단다. 그래서 오래된 왜성이 해안 곳곳에 많다. 임진왜란 때에는 천주교도인 왜장 소서행장이 이 곳에 진을 치면서, 그를 따라온 스페인신부 세스뻬데스가 천주교의 씨앗을 뿌리다가 떠난 곳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불모산 자락의 이 바닷가는 불교가 처음 전래된 곳이기도 하거니와 천주교가 처음 전래된 곳이다.

성흥사의 창건설화도 왜구의 침입과 연관이 있다. 흥덕왕 재위 초에 이 지방에 왜구의 침략이 잦아 왕이 몹시 고민했는데, 어느 날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지리산에 있는 도인을 불러 왜구를 평정하라”고 말했단다. 왕은 사신을 보내 도승을 모셔와 그 일을 간절히 부탁했다. 도승은 불모산에 올라가 한 손에 지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배를 두드리니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했다. 왜군이 이 소리를 신라군의 함성으로 착각하고 물러갔단다. 왕은 도승에게 재물과 전답을 주어 불모산 자락에 집을 짓게 했는데, 이 절을 성흥사라고 불렀다.

성흥사 안내판은 지리산의 그 도인을 무염국사(無染國師 : 801∼888)로 보고 있는 듯하다. 무염국사가 창원의 성주사와 함께 이 절을 창건했다고 적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창원 성주사와 웅동 성흥사의 창건설화가 비슷하다. 무염국사는 나말여초에 구산선문 중에서도 가장 번창했던 성주산문을 열었던 큰스님이다. 그 성주산문은 충남 보령에 있는 절을 가리킨다.

웅동의 성흥사는 규모가 작다. 작은 절에다가 전봇대 몇 개가 절을 막고 있어 겉으로 보아 절은 더 왜소하게 보인다. 대웅전은 겹처마인데 서까래가 길게 뻗지 않고 짤막하다. 흙과 돌로 쌓아올린 담벼락의 지붕에도 섬섬이 서까래를 배열해 놓고 각각의 단면에는 꽃 문양을 그려 놓아 담벼락이 매우 아름답다.

절에서 내려와 웅동 앞바다의 안골만에 스미어 드는 물줄기가 대장천인데, 대장천을 따라 내려오다가 보면 오른쪽 마을이 소사마을이다. 소사마을에는 월하(月下) 김달진(金達鎭) 시인의 생가가 있다. 월하는 웅동면 소사마을에서 태어나 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금강산 유점사에서 승려생활을 했다가, 20여 년 간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운허스님 등과 더불어 국역(國譯)작업에 참여한 큰 불교인이었다. 소사마을은 아직도 황토로 엮은 집들이 있을 정도로 퇴락한 마을이다. 하지만 바닷가에서부터 불모산을 탁탁 막으며 들어서는 아파트들을 보면 이 마을도 금방 개발바람이 일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김달진 시의 「열무우꽃」을 음미하며, 대장천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온다. (출처 : http://blog.naver.com/sctao/120024900017)

 

열무꽃 - 김달진

 

가끔 바람이 오면 

뒤울안 열무 꽃밭 위에는

나비들이 꽃잎처럼 날리고 있었다.

 

가난한 가족들은

베적삼에 땀을 씻으며

보리밥에 쑥갓쌈을 싸고 있었다.

 

떨어지는 훼나무 꽃 향기에 취해

늙은 암소는

긴 날을 졸리고 졸리고 있었다.

매미소리 드물어 가고

잠자리 등에 석양이 타면

우리들은 종이등을 손질하고 있었다.

 

어둔 지붕 위에

하얀 박꽃이

별빛따라 떠오르면

모깃불 연기이는 돌담을 돌아

아낙네들은

앞개울로 앞개울로 몰려가고 있었다.

 

먼 고향 사람 사람 얼굴들이여

내 고향은 남방 천리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생각이여.

 

 

 

 

 

 

 

 

 

 

 

 

 

▼ 7월 13일 - 검색을 위하여 여러 모습을 담은 날.

 

 

 

 

 

▲ 마른잎

728x90

'고향 이야기 > 김달진 문학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가의 대나무  (0) 2006.07.29
바람개비꽃이 바람을 막는 담장  (0) 2006.07.29
문학관 내부 엿보기  (0) 2006.07.12
태풍 다음날의 생가 풍경  (0) 2006.07.11
월요일의 열무꽃  (0) 2006.06.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