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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사람이 있는 풍경

개인 박물관 만드는 고물쟁이 김씨 이야기

by 실비단안개 2006.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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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박물관!

 

단순한 나는 언제나 머리가 지시하는대로 앞만보며 다닌다.

얼마전과는 반대로 9월 부터는 김달진 생가를 먼저 방문하고 다음으로 김달진 문학관, 그리고는 가까운 들판이 순서인데, 어제는 김달진 문학관의 前학예사님과 관리인 아저씨께서 앞장을 서기에 따라 나섰다.

집수리를 하는듯한 그저그런 집이었는데, 일 장갑을 낀 집주인을 만났다. 시원한 머리, 편안한 눈빛, 열정의 목소리, 그리고 커피 한잔!

 

'김씨 박물관'을 만드는 김현철씨다.

 

'김씨 박물관',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다. 아무려면 김씨 박물관이라니, 아주 대중적인 성씨이니 나를 놀리는거겠지. 그런데 참말로 '김씨 박물관'이다.

차 한잔을 권하기에 커피로 주문하고 방안을 둘러 보았다.

 

오호~ 내가 좋아하는 여자 사진, 아주 낡은 - 지금이 몇년인가, 코흘리게 시절 이웃에 놀러가면 걸려있던 여배우(그때는 배우인줄 몰랐으며, 그저 이쁜 여자로만 알았다.)가 있는 달력을 몇십년만에 만났다. 오후 햇살이 열려진 창문으로 정답게 내려앉고, 간식인지 찐고구마 두개가 책상위에 있으며, 대충 책장겸 선반으로 이용하는 고가구 위에는 여자들의 사진 만큼 낡은 책몇권이 꽂혀있고, 그 앞에 내 동생이 어릴 때 복용하였던 '용각산'이 있었다.

남자의 침대이니 앉아볼 수가 없어 다른방으로 가니 작업복이 벽에 걸려있었는데, 이 또한 얼마전까지 우리 이웃들의 평범한 방안 풍경이라 좋았으며, 방 가운데 상위에는 도면이 있었다.

 

커피를 준다. 나 만큼 할 일이 많은 분인지 머그잔 5분지 4 정도의 양이었다.

커피의 색과 양이 마음에 들었다. 쉬엄쉬엄 마시는 커피, 일을 하다가 생각나면 한모금씩 마시는 편인데 많은 양도 두어시간 지나면 바닦이지만, 그렇다고 커피를 양푼에 담아 마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열려진 창문으로 바깥분들에게 커피가 배달되었고, 알지 못하는 숫자로 가득한 도면이었지만, 도면 여러장을 오래 살폈다.

 

'김씨 박물관'은 공사 기간이 2년 예정이며, 모든 공사는 수작업으로 진행될 것이다.

 전시품은 우리 근현대사라고 하기에 전시품은 준비되었냐고 여쭈니, 근현대사 물건(물품)을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계시단다. 우리는 잠시 부산 서면의 개인 박물관 이야기도 하였다. 

개인이 몇십년 수집한 물건을 지역과 이웃을 위하여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어머니의 도움이 컸다고 말씀하였다. 어릴 때부터 '칭찬'으로 자신감을 준 어머니의 도움으로 고물상을 뒤지며 옛 물건들을 하나씩 수집하기 시작하였고, 이제 객지의 생활을 접고 고향에 그 터를 마련하여 소장중인 우리 근현대사와 함께 한 물건들을 여러 이웃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단다.

 

박물관의 간판 중에 '웅천사진관'이 있기에 왜 '웅천사진관'이냐고 여쭈니 본가에서 웅천사진관을 30여년간 운영하여 '웅동(박물관 건립 지역)'이 아닌 '웅천'사진관이라고 하였다.

웅천 사진관 간판을 만들기 위하여 낡은 양철을 구해 두었는데, 간판을 그려 던져두면 비와 바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녹이 슬테니 더 멋지지 않겠느냐며 웃기에, 나와 비슷한 사고에 나도 웃어주었다.

칠하고 칠하고 또 덧칠하는게 멋이 아니란 걸 아시는 분, 시원한 머리위로 가을빛이 곱다.

 

그는 김현철이란 이름보다 '고물쟁이 김씨'로 불러 달라고 하였다. 거리감 없이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웃 아저씨, 꿈을 현실로 이루는 멋진 고물쟁이 김씨.

 

언제부터......

1987년, 김씨는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본에서 군단위의 민속관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 후 일본을 몇번 더 방문을 하면서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우리의 것을 모으기로 마음먹었다.

그 당시 대구의 칠성시장, 서울 청계천의 황학시장, 부산 자유시장과 망미동등을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쓰레기로 분류되어 버려지고 잊혀져가는 생활용품부터 무차별적으로 구입하여 창고를 마련하여 보관하였다.

이렇게 모은 고미술품과 포스터, 물품등으로 1997년부터 전시회를 열었으며, 2000년 복지부 주관의 '건강 2000'행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는 김현철씨를 내외부로 알리는 기회가 되어 전시회는 20003년까지 계속되었다.

 

소장중인 물품은...... 보관은?

그의 일화를 보자.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8½...

내 가까이에 늘 있어 내 일을 (Tom & Judy) 도와 주었던 종필이는 내가 커피숍 공사를 하자 "8½"이 디자인 된 Logo를 가져왔다. "자기 자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모자라는 것을 몰라서 그렇다"라는 의미있는 충고의 말을 남기고...

"길 가다가도 고물실은 리어카가 지나가면 세워서 뒤져보기 시작했고, 시간이 나면 부산에서 제일 많이 고물상이 있는 '동촌'일대를 돌면서 쓸만한 고물을 찾아 다녔다. 그 결과 내 작업실에는 오래된 라디오, 벽시계, 미싱다이 등이 재이기 시작했고, 몇달 안되어 이 공간이 다 차자 다음 장소를 택한 곳이 '8¹/₂커피숍'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왠 일인가  8¹/₂에 고물이 늘어갈수록 매출이 늘기 시작하는데.....

한잔 800원 커피 팔아 하루 매출이 50만원이나 되었다."(출처 :김씨 이야기)

 

 

▲ 당시 창고가 된 '8¹/₂커피숍 내부 - 사진 제공 :김현철

 

 

▲ 사진 제공 : 김현철(김씨 이야기)

 

현재 박물관을 짓는 옆 건물 창고에 자료들은 보관중이며, 아직은 일반인에게 공개를 할 수가 없지만, 고미술품과 생활용품과 함께 국보급 자료로는 일제 시대의 '징용 포스터', 1897년의 최초 공산품인 '성냥'이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머니의 성씨 또한 김씨이며, '김씨 박물관'은 어머니의 꿈이기도하다.

현재 건립중인 박물관의 테마는 과자 종류와 문구가 주테마이며, 1407년에 개항 된 제포항을 염두에 둘 때, 인천의 달동네박물관, 부산의 근대사박물관과 같은  근대박물관을 제포항을 중심으로 개항 마을을 만들어 진해 지역에 건립하는  것이 김현철씨의 희망이다.

 

'김씨 이야기' 바로 가기 http://kimc289.kp.st/

 

내 블로그 카테고리에 '김달진 문학관', 웅천요(熊川窯)', '흑백'에 이어 '김씨 이야기' 내지 '김씨 박물관'이 자리하기를 바람해 본다.

고물쟁이 '김씨', 얼마나 편안한 이웃인가 -

 

▲ 이제 삽질을 시작한 '김씨 박물관' 현장

 

 

 

 

 

 

▲ 고물쟁이 김씨

 

▼ 고물쟁이 김씨의 홈페이지에서

 

나, 김현철

어머니는 외갓집 기질을 많이 가진 나를 "너는 큰자식"이다 하면서 항상 나에게 꿈을 키워 주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항상 어머니의 칭찬 속에 살아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며 꾸준하게 계획하고 실행하여 내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어왔다 .

그러나 연이은 성공은 나에게 자만과 교만을 주었고, 그 결과 1984년 5월에 시작한 "나의 제국"은 1998년 5월에 막을 내렸다.

 

Tom & Judy(이대점, 돈암점, 신창점), 8½ Coffee shop, Tom's House(이대점, 신창점) 그리고 5 년간의 방황의 객지 생활.........

 

2003년 내 외할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나는 사랑하는 이들의 곁으로 왔다.

내 아내, 내딸 주희, 주연이 그리고 어머니....

나는 내 집 고물창고 한 곁에 있는 내 책상에 다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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