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김달진 문학관

김달진 문학제 기념 만찬

by 실비단안개 2006. 9. 24.
728x90

9월 23일 오후

해군회관 대연회장

 

시상식이 끝나고 만찬이 이어졌다.

 

 

 

 

 

 

 

 

 

▲ 강은교님의 접시

 

강은교(姜恩喬)

1946년 함경남도 흥원 출생
1968년 연세대학교 영문과 졸업
1968년 『사상계』 신인 문학상에 <순례의 잠>이 당선되어 등단
1975년 제2회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
1992년 제37회 현대문학상 수상
현재 동아대학교 교수

시집 : 『허무집(虛無集)』(1977), 『빈자일기(貧者日記)』(1977), 『소리집(集)』(1982), 『우리가 물이 되어』(1986), 『바람 노래』(1987),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1989), 『그대는 깊디 깊은 강』(1991), 『벽 속의 편지』(1992) 등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한복 착용분이 강은교님

 

▲ 유안진님

1941년 10월 1일

출신지 : 안동. 시인,대학교수

수상 : 2000년 제35회 월탄문학상 (시집 - 봄비 한 주머니)
1998년 제10회 정지용문학상 (시- 세한도 가는 길)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 유안진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 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겨질 자산이 되었을걸.

우정이라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道)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聖賢)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서 탄로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바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은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단,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는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되,
미친 듯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 같아서
요란한 빛깔도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가,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 있게,
군밤은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보다 우아해지리라.
그의 숙녀됨이나 신사다움을 의심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 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더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 드레스처럼 수의(壽衣)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芝蘭)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 늦게 챙기다보니 자리가 없어서 안내 책상에서 식사를 한 실비단안개의 접시

 

 

▲ 식사 후 - 행사를 기다리는 시간부터 식사 후 휴식까지 김륭님의 모습이 많이 잡혔다.

 

지리산 고로쇠 나무 - 김륭

 

동란 때 동네 우물가에 터지던 수류탄처럼

울음보가 터졌다

어이구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어르고 달래 보지만

막무가내다


늙으면 외롭고 쓸쓸하다고

도시에 먹고 살려면 맞벌이해야 한다고 큰 놈 작은 놈 해마다 줄서더니

어제는 딸년 까지 찾아와 던져 놓고 간

네 살배기 손자

 

지리산 꼴짝 박둘선 할머니 젖가슴에 매달려있다.

풀꽃 한 송이 자라지 않는 절벽에 매달려

딸깍, 숨을 삼켜 버릴 듯

자지러진다.

 

어미야 안되겠다 이번 주말엔 꼭 내려 오거라.

최신형 휴대폰을 수류탄처럼 움켜쥔

젖동냥 나서고 있다.

<2005년, 김달진 문학제 문학상 작품>

728x90

'고향 이야기 > 김달진 문학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아  (0) 2006.09.30
김달진 문학제 마무리  (0) 2006.09.25
11회 김달진 문학제 시상식  (0) 2006.09.24
들풀.들꽃과 시의 만남  (0) 2006.09.24
11회 김달진 문학제  (0) 2006.09.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