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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토지의 무대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에 다녀오다.

by 실비단안개 2008.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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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을 찾아 재첩국을 먹어주지 않는다면 섬진강에게 죄를 짓는 일 같아 섬진강재첩국을 먹고 아름다운 길을 달리고 있다는 달콤한 알림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대나무와 어우러진 섬진강변을 달렸다.

섬진강의 본래 이름은 모래가 고와 두치강(豆恥江:또는 豆直江), 모래가람, 모래내 등으로 불렸으며, 고려시대 1385년(우왕 11)경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했다고 한다.

 

매화와 배꽃이 진 자리에는 작은 열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으며, 잠시 주유를 하는 동안 배 밭에 들었다가 미로같은 배나무 그늘에서 미아가 될 뻔 하였다.

강둑으로 배롱나무가 자그마하였다. 배롱나무는 작아도 레이스같은 꽃을 충분히 피워내는 나무이니 여름날에 달리는 풍경을 그려보았다.

드디어 악양이다.

 

 

  ▲ 섬진강 

 

박경리 선생님의 타계소식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은 듯 하였으며, 마을은 산인과 방문객들의 차들로 전체가 주차장을 방불케하였다. 오래전에 쌍계사를 찾아갈 때 잠시 스친 평사리 들판이며, 곧 다시 찾아야지 하였지만, 어느사이 10년이 넘었다.

들판을 잠시 걷고 마을로 갔다.

작가 한사람이 마을 전체를 먹여 살리는구나 싶을 정도로 상평마을은 토지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토지'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6년간에 걸쳐 5부 16권의 방대한 규모로 집필된 장편대하소설이다. 한말에서부터 일제 말기에 이르는 우리 근대사의 역사적 질곡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겪는 삶의 애환을 최씨 일가의 가족사를 축으로 그린 역사소설이며 가족사소설이다. 삶의 터전으로서의 토지는 농경 사회에서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토지는 토지에 대한 믿음과 이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는 외부 세계의 대립 속에서 각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데, 그 주무대가 섬진강 하구 하동의 평사리다.

 

 

최참판댁 안채의 뜰에 작가 박경리 선생님의 약력이 있으며, 뒤로 돌아 오르면 '평사리문학관'이 있는데, 토지의 작가와 하동의 문인, 대하소설 '토지'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 문학관 가는 길

 

  ▲ 평사리문학관 전경

 

 

마을 입구에 '상평마을의 유래'비가 있으며, 입구부터 산채와 약초, 토산품을 판매하는 노점과 점포들이 있다.

 

 

최참판댁으로 가는 길에 왼편의 마삭꽃을 피운 집이 눈에 띄기에 다가가니 낮은 대문을 수리중이었다. 인사를 드리고 내부와 이웃집도 둘러 보았는데, 드라마 '토지' 2대 때 용이(임동진 분)의 집이며, 그때도 이 집에서 거주를 하였으며, 지금도 거주를 하며 당시 평사리 전체가 '토지'의 무대였다고 하였다.

 

많은 풍경을 담았지만, 그 풍경을 어느 정도 올릴지는 모르겠다.^^

 

* 총 3차례 드라마화된 '토지'에서 한혜숙(1979)에 이어 1987년 '2대 서희'로 최수지, 3대 서희역은 김현주.

 

 

용이집 옆의 대문옆에 망루와 다락 비슷한 건물이 있는데, 평사리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오며, 여름날 낮잠을 자거나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하였다.

 

 

요즘은 어디나 수도시설이지만 예전에는 마을마다 공동우물이 한 두개 있었으며, 아낙들의 하루가 열리는 곳이며, 마을과 이웃 마을의 동정까지 샘 솟는 장소다.

 

 

최참판댁의 규모는 밖에서도 알 수 있다.

 

 

이제 안으로 들었다. 유난히 많은 작약이며, 별당에는 목단이 심어져 있었는데 이미 졌다.

 

 

 

담장 너머가 별당이며 집 내부의 담장은 낮았다.

 

 

별당은 따로 부엌이 없으니 아궁이는 툇마루 아래에 있었으며, 굴뚝은 뒷켠에 있었는데, 일반 서민의 가정과는 달리 높다.

 

  ▲ 별당의 굴뚝

 

 

별당과 이웃한 안채다. 옛날 살림의 규모는 그 집의 장독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높은 장독대에 많은 독이 있고 정지의 뒷문을 열면 장독대로 통한다.

 

 

 

 

안채다. 안채는 그 집의 안주인이 생활하는 곳이며 그 집의 중심이다. 일반 서민 가정과는 달리 안채의 마루가 넓고 뒤안으로 향하는 문이 두개이니 두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마루를 중심으로 마주하여 방이 있다.

 

  ▲ 안채의 정지

 

  ▲ 안채의 뒤안

 

 

남자 주인이 거주하는 사랑채와 다른 장소에 초당이 있었다.

* 초당 :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

 

외에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따로 있었는데, 대나무숲 사이라 조금 으시시하였다.

 

최참판댁은 세트장이라기 보다는 잘 관리가 되고 있는 고택과 가깝다.

아래의 풍경들은 평민 이하의 거주지다.

현재도 거주하는 집이 있는가하면 단순히 세트장으로 구실만 하고 폐가의 모습으로 있는 초가도 있지만, 마을 안으로 밭, 물레방아등이 있으며, 소, 닭, 돼지등 가축도 키워지며, 손질을 하여 관리를 한다면 손색없는 민속촌의 모습이 될 것이다.

 

 

 

위의 두 컷.

훈장 댁이다. 대부분의 가정은 천민일지라도 작은 화단이 있으며 작약이 많다. 아주 소박한 장독대에는 독 서너개가 있고.

어딘가를 방문하면 우리는 아주 주관적으로 그 풍경을 대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뜰과 자라는 수목, 장독대가 주요 관심사다.

 

 

 

 

 

글을 쓰는 재주가 없으니 그래도 글 보다는 조금 나은 사진이 주가 되는데, 정겨운 그 풍경들을 세세하게 전하지 못하여 많이 안타깝다.

계속해서 평민 이하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집과 마을 풍경이다.

 

 

볼품없는 집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벽이며, 저곳으로 연기가 빠져나갈 까 싶은 굴뚝이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님들은 저 공간을 데워 우리를 키우고 토지를 지켜주었다.

 

수원화성에 두번을 다녀왔었다. 화성행궁에서 가장 거슬린 게 드라마등 촬영 표지판이었는데, 평사리 역시 대부분 드라마 촬영 장소였지만 그 표지판은 요란하지 않아 더 아련하게 다가왔다.

 

 

 

  ▲ 2부 '토지'와는 다른 3부 '토지' 용이, 강청댁

 

  ▲ 닭집. 닭이 있으며, 화단의 대나무 울이 어릴 때 만들어 본 울이기에 정겹게 다가왔다.

 

  ▲ 우리의 소다.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마냥 신기한 소며, 미국 쇠고기 수입으로 크고 순한 눈빛은 슬퍼질 것이다.

 

 

 

 

 

 

  ▲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

 

  ▲ 아직은 풍요로운 평사리 들판

 

이 글과 풍경들이 어느 정도의 농도로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고향, 토지, 우리나라는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기에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한다. 

 

5일 타계한 한국 문학계의 거목 故 박경리 선생이 고향인 경남 통영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고인의 유해는 9일 오후 2시께 통영 앞바다가 내다보이는 통영시 산양읍 신선리 양지농원에 안장되었으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외동딸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과 사위 김지하 시인 등 유족들과 문인들, 통영 시민들이 함께 하였다.

 

문학계의 큰 별은 미륵산 기슭의 ‘토지’ 흙속에 고이 잠들었다.

 

박경리

소설가.

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깊이있게 그려낸 문제작을 발표했다.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결혼했으나,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된 후 딸과 함께 생활했다.

시인 김지하는 그녀의 사위이다.

 

1970년대 후반에 강원도 원주시로 거처를 옮기고 창작활동에 전념하여 1994년 8월 대표작 대하소설 〈토지〉를 완결지었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 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 黑黑白白〉이 〈현대문학〉에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이어 〈현대문학〉에 단편 〈군식구〉·〈전도 剪刀〉·〈불신시대〉·〈영주와 고양이〉·〈반딧불〉·〈벽지 僻地〉·〈암흑시대〉 등의 문제작을 계속 발표했다. 195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단편을 쓰다가 1959년 〈표류도〉(현대문학, 1959. 2~10)를 발표한 뒤로는 주로 장편을 썼으며, 1963년 단편 14편을 모아 소설집 〈불신시대〉를 펴내면서 작가로서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토지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간 집필된 대하소설로서 1890년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를 배경으로 했으나 역사소설로 굳어진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과거에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인물들이다. 또 이 작품은 몇몇 제한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고, '평사리'와 '간도'의 주민들 전체를 다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이는 곧 작가의 시점이나 화법이 자유롭고 선악관에 의해 인물이나 상황 및 사건을 저울질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유방암 선고와 사위 김지하의 투옥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토지〉의 집필을 계속하여 그녀는 윤씨부인-별당아씨-서희, 그리고 그 자식들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인물들을 통해 민중의 삶과 한(恨)을 새로이 부각시켰고, 이로써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소설집으로 〈표류도〉(1959)·〈김약국의 딸들〉(1962)·〈가을에 온 여인〉(1963)·〈파시〉(1965)·〈박경리단편선〉(1976)·〈박경리문학전집〉(1979)·〈토지〉(1989) 등이 있다. 1957년 현대문학상, 1959년 내성문학상,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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