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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벚꽃 · 웅천요(熊川窯)

부모님과 처음으로 '함께' (진해)벚꽃장에 갔습니다

by 실비단안개 2009.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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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에 아버지께서 일주일쯤 입원을 하셨으며, 퇴원 후 얼마간 통원치료를 하셨고, 요즘은 이주일에 한 번 병원을 찾는데, 오늘이 병원을 가는 날입니다.

 

어제 퇴근 후에 "내일 함양 출장인데 같이 갈라요?"하기에, "내일 아버지 병원 가시는 날이니 병원 가야지."하니, 아버지와 올케와 함께 식사를 하라면서 점심값을 주더군요.

진료 시간이 길지 않기에 점심 시간 이전일 것 같아, 오늘이 경화장날이니 시장에서 좀 당기는 걸(음식이나 재료)로 사 드려야지하며, 병원으로 향하는데, 아버지께서 "너그 엄마는 벚꽃장 가자카이 안갈라카네, 밥 한 그릇 사 줄라캣더마는…."하셨습니다.

(그동안 혼자 다닌 딸에게 많이 서운해 하셨을 겁니다.)

오늘 밥값 얻어 왔는데 - 하니, 너그 엄마 데꼬가자 - 하시기에 엄마에게 전화로 "나들이 준비하셔요." 한 후 차를 돌렸습니다.

 

"일도 만은데 무슨 벚꽃장이고…."

 

언제부터일까, 엄마가 색조화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부터일까, 며칠전에 분홍립그로스를 드려도 "마이 있다."고만 하셨는데….

지난해까지 분명 색조화장을 하신 엄마입니다. 색조화장이라고 아이샤도우를 칠한 건 아니지만, 화운데이션을 바르고 분을 토닥이고 입술도 발그레하게 그리셨거든요. 우리 엄마가 만사가 귀찮은 진짜 할머니가 되신 모양입니다. 그래도 옷은 세가지 정도를 덧입는 신식입니다.^^

 

"어제부터 좀 이상하다, 먼저 가 있어라, 이거(생리대) 좀 하고 가께."하십니다.(요실금 초기같습니다.)

엄마가 시중에서 판매를 하는 생리대를 처음 사용한 건 70대 이후인데, 처음엔 초경을 치루는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며 몇 번 사달라고 하셨지만, 요즘은 용감하게 혼자서 구입을 하십니다.(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는 어릴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불편한게 참 많습니다.)

가슴이 납작한 엄마지만 가끔은 브라런닝을 구입하여 저를 눈물 찔끔거리며 웃게 하고요.(여전히 소녀의 마음인 엄마인데, 엄마의 연세 분들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브래지어를 어릴 때 못해봤을 겁니다.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가 브래지어를 장만해주며 딸이 소녀됨에 많이 기뻐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진료는 정말 잠깐이었습니다.

얼마전 건강검진 결과표를 보여 드리고, 복용중인 약을 이제 한 달치를 받았는데, 건강이 좋아져 이주일에서 한 달 간격이 되었으니 병원 가는 횟수가 반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내로 향했습니다. 올케는 (반)트롯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요.

 

블로그에 많은 벚꽃 사진을 올렸지만, 엄마와는 10년도 넘게 전에 한 번 다녀왔지만, 두 분을 모시고 함께 벚꽃축제에 가는 건 처음입니다.

지금은 군항제, 벚꽃축제라고 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 봄소풍 장소는 '웅동벚꽃장'이었으며, 시내(당시 우리는 창원군)에서 한 군항제는 "'진해벚꽃장'에 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어른들은 지금도 벚꽃장에 간다, 가자, 갔다온나… 라고 합니다.

 

(오늘이 경화장날이기에 경화역에서 벚꽃열차를 담고 경화시장 휘~ 둘러 볼 참이었는데~^^)

"아버지 어디로 가까예?"

 

"어데 갈라요? 양어장 가까?"

내수면연구소가 양어장입니다.^^

"그럼 내수면연구소에 갔다가 통제부 갔다가 중원로타리 거쳐 탑산까지 가지요."

 

내수면연구소입니다. 유치원 병아리들의 삐약삐약 소리에 벚꽃이 피어나는 곳입니다.

연인들도 가끔은 지나가지만,  내수면연구소는 이른 오전 시간을 제외하고는 군항제 기간에만 개방을 하기에 물고기의 생태와 수생식물 등을 감상하며 배울 수 있기에 꼬마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입니다.(부분 입장금지 구역이 있습니다.)

 

  

 

우리가 저수지를 둘러보고 나올 때는 정말 엄청난 수의 꼬마들이 도시락을 까먹거나 선생님에게 이쁜짓을 하며 카메라에 담기고, 서로 부르거나 당기며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 실외양어장입니다. 올케가 무엇을 가르키는지는 모르겠네요.^^

 

  ▲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있었는데, 작은 피래미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엄마는 "야들은 물이 안맞는갑다." 하며 유리관을 손으로 톡톡 쳤으며, 아버지께서는 이거(수석) 좀 찌거봐라 - 하셨습니다.^^

 

  ▲ 이기 머꼬, 밭에 있는긴데 - 엄마, 봄까치꽃과 제비꽃인데, 봄까치꽃은 보통 안먹어요 - 꽃밭에 살포시 앉은 엄마는 또 소녀였습니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학교 댕길 때 소풍왔었는데…."

"진짜로? 우리는 봄소풍을 웅동벚꽃장으로 갔는데, 엄마때는 내수면연구소까지 왔다꼬?"

 

"그때 갈데가 있었나, 해서 양어장까지 왔지."

"뭐 타고?"

"타기는 걸어서 왔지."

"이 먼 거리를, 그럼 종일 걸렸겠네, 점심은? 도시락은 싸고요?"

"모르겠다, 종일 걸렸응께 밥을 준비했겠제?"

 

엄마와 아버지는 국민학교 동창이며, 나와 동생들의 선배이고 우리 아이들은 내 후배가 됩니다.^^

그 옛날에 창원의 웅동 촌에서 진해시내까지 소풍이라니,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저수지입니다. 아직 서툴게 꽃을 피운 벚꽃이지만, 우리가 저수지를 한바퀴 걷는데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긴의자에 앉아 쉬기로 했고요.

 

 

 

 

저수지 주변이 진해역처럼 새단장을 했더군요. 이쁜 화장실이 새로 지어졌으며, 주위로 조팝나무와 춘추벚꽃단지가 조성되었고, 수생식물 단지도 새롭게 단장되었으며, '환경사진'이 전시중이었습니다.

 

  ▲ 춘추벚꽃(내수면 연구소에는 많이 늙은 수양벚꽃나무도 있습니다.)

 

  ▲ 갈대가 있던 자리에 몇 개의 웅덩이가 만들어졌으며, 수생식물을 심었더군요.

 

  ▲ 몇 종류의 새가 찌지직 - 했으며, 까마귀가 벚꽃을 따 먹는 듯 했습니다.(정말 벚꽃을 먹는 건 아니겠지요?)

 

 

혼자 쳐져 풍경을 담고 엄마에게로 오니 엄마와 올케가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칫~^^/

 

 

  ▲ 내수면 연구소 안녕!

 

우리는 통제부로 갔습니다.

예전엔 차(셔틀버스 포함)로만 입장이 가능했는데, 언제부터 바뀌었는지 도보로도 가능했으며, 나들이객들이 단체 사진을 찍기에 차 내(통제부 내에서 정차 금지)에서 달리며 벚꽃 길을 몇 컷 담았습니다.

아름 벚꽃나무가 커다란 분재같았으며, 송알송알 달린 벚꽃 또한 우리를 감동케 했습니다.

나 좀 내려 줘 -

행님 요는 못 내리~ 저 봐, 군인 아저씨들이 군데군데서 지키잖아~

 

그래, 사진 찍는 것만도 행운이며 행복인데….

 

 

  ▲ 통제부에서 달리면서 - 두 컷

 

통제부를 달리며 아버지께서 옛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

.

.

그때(오래전 옛날에) 속천에서 니야카(리어커)에 짐을 실고 요까지 와서 보일러를 낫제, 도꾸(dock)서도 일을 했고…."

"누가 아버지가요?"

"어"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어망일을 하며 농사철엔 들로 나가셨으니까요.

가끔 엄마는 아버지를 원망하셨습니다.

"그때(우리가 아주 어릴 때), 상회(부산 남포동의 어망상회)서 그만큼 오라캐도 안 가고 이 고생을 시킨다 아이가, 그때 부산에 나갔으모 얼라들 공부도 잘 시킷고 고생도 안했을 낀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일류 어망기술자입니다. 아버지가 젊었을 대 부산의 상회(어망회사같음)에서 아버지께 부산에서 함께 일을 하자고 여러번 청을 했는데, 부모님(할아버지 할머니)을 두고 고향을 떠날 수 없다며 거절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엄마는 시골의 일과 어망일로 힘이 들때(언제나 힘이 들지만)마다 아버지를 원망했으며, 오늘도 역시 그 말씀을 하시더군요.

 

달리면서 그랬습니다.

(우리는 이미 다 자라 그때 우리보다 더 큰 아이들을 둔 부모며, 어릴 때의 큰서운함까지 모두 삼킬 수 있는 나이이기에)

"요새 도시 어른들 보세요, 할일이 없어 공원의 햇살 바른곳에서 종일 보내거나 노인정에서 보내며, 점심은 무료 급식소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 드시니 지금 얼마나 행복합니까."

 

며칠전에 작은늠이 묻더군요.

"엄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중에 누가 더 좋노?"하고요.

"할아버지가 더 좋지."했지요.

부모님인데 어느 분이 더 좋고가 어디있겠습니까만, 아버지편이 되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통제부를 나와 복개천(소방서 옆)에 주차를 한 후 밥을 먹었습니다. 그저께 먹은 중국집을 소개시켜 드리고 싶었는데, 올케가 밥을 먹고 싶다기에 시래기국이 나오는 정식으로 하여 아버지께서는 소주 두 잔을 드셨습니다.

"우리 공주는 맥주 아이라꼬 안마시나?"하시면서요.

 

밥값은 아버지께서 얼른 계산을 하시더군요.^^/

 

중원로타리를 지나(진해우체국의 우표전시회는 끝이 났더군요.) 3월 26일부터 운행을 한 모노레일카를 타기로 했습니다. 중원로타리에서 두어번 모노레일 작업 풍경을 담으며 많은 불만을 가졌었는데, 부모님께서 타고 싶어하셨기에 아무 불평없이 표를 구입했습니다.

 

 

어머나 어머나 이모 아니에요, 저 진해시민이거든요, 여기요~(주민증)

어른(경로)할인은 1인 1,500원(왕복)이며, 일반 어른은 3,000원이라고 하기에 요금표를 확인않고 표를 구입하여 줄을 서 요금표를 확인하니 진해시민은 어른 1인 2,000원이었기에 올케의 표까지 2,000원을 환불받았습니다.^^/

 

 

 

진해탑을 우리는 탑산이라고 합니다. 색이 이쁜 자목련이 활짝 피어 벚꽃과 탑과 함께 잘 어울리더군요.

 

이번엔 올케가 쉬고 싶다기에 부모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 전망대에 올랐습니다.

아버지께서 엄마에게 우리가 다녀온 곳들을 가르켜 드립니다. 우리 엄마 귀를 쫑긋하여 똑똑한 학생이 됩니다.^^

 

 

  ▲ 진해탑 8층에서 담은 진해만

 

우리는 다시 모노레일카를 타고 내려와 옛진해경찰서 자리에서 전시중인 월남전 사진전을 감상한 후 무대쪽을 보니 의장대 연습만 하기에 먹을 것을 기웃거리니 엄마가 지갑을 꺼냅니다.

 

 

 

"마이 무라, 머든지 무라, 묵고 싶은 거 다 무라."

우리 올케 신이나서 옥수수 3개를 들고 다시 단밤인지 군밤인지를 두 봉지 듭니다.

나는 옆의 풀빵 한 봉지를 샀는데, 아버지께서도 드셨으며, 딸 돈으로 풀빵을 구입한게 못내 편치않은 엄마는 나중에 경화시장에서 풀빵을 가득 사 주셨습니다.

 

우리 올케 아기마냥 옥수수를 먹으며 아버지 뒤를 졸래졸래 따릅니다.^^

 

 

  ▲ 경화시장에서

지치기에 경화역은 가지않고 경화시장에 들려 찬거리를 장만했으며, 올케는 미니장미를 구입했습니다.

 

야, 어디로 가노?

"행님 거기 아이고, 수치에 진달래가 억수로 붉데, 행님 보여 줄라꼬."

며칠전부터 시루봉으로 진달래 만나러 가고 싶다고 조르는데, 어제 친구들과 수치에서 진달래를 만났으니 우선 허기부터 채우라나요. 하하

 

 

엄마께서 얼마전에 한 치아가 이상하다며 칫과에 가야겠다시기에 칫과에 들렸다가 부모님을 모셔드렸습니다.

"아버지 고생많으셨습니다. 약 드시고 쉬셔요!"

 

사람은, 자식도 언제나 제 욕심부터 채웁니다. 그렇게 벚꽃 나들이를 하면서 부모님과는 첫 길이었으니까요.

어쩌면 마지막 벚꽃 나들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함께일지 알 수 없지만 두 분이 지금의 건강만이라도 지켜주시면 좋겠습니다.

 

 

                 ▲ 국민학교 3학년 봄소풍

 

집에 오니 친구 어머니의 부고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친구를 만나고 왔는데, 내일 오후에 다시 병원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랬습니다.

"부모님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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