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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봄날,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싶은 길

by 실비단안개 2009.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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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으로 이사를 했을 때, 작은늠이 일곱살이었습니다.

1월 중순, 한겨울이었는데, 아이들은 한동안 바닷물과 개울물에 옷을 적셔오고, 친구자전거를 타다가 논뒷고랑에 빠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혼날거라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른 열매가 달린 오리나무와 꽃가루마져 날아간 억새를 꺾어 선물이라며 내밀었습니다.

언 땅에서 배추를 뽑아도 밭 가득 웃음이었고 녹아 질펀한 길에서 미끄러져도 들길 가득 함박이었습니다.

그리곤 새봄이 되고, 아이들은 개구리소리와 개울물 소리를 듣겠다고 밤에 논둑길을 걷거나 개울가로 손을 잡고 나갔습니다.

 

큰아이는 조조할인 영화를 본다며 7시 버스로 부산으로 갔으며, 작은늠은 책을 파고 있습니다.

오가피잎과 고사리를 뜯지 못하더라도 오늘만큼은 들길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김달진문학관이 있는 소사동입니다. 우리는 소사동보다 소사리가 익습니다.

진해 시내에서 온 아이가 아래의 풍경을 만난다면, 여자아이라면 "이게 무슨 꽃이에요?"하며 묻겠지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엄마 아빠라면 무슨 꽃인지 선뜻 답을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문학관과 꽁뜨를 지나 소사리 뒷산으로 걸어 보겠습니다. 흑송과 적송이 있는 길이 아닌 다른 길입니다.

담쟁이 새옷 입은 담장이 아이들 만큼 신이 났습니다.

 

 

비어 있는 땅이 많지만, 부분은 꼼꼼한 손길에 행복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윗쪽의 고추밭은 지지대를 엑스자로 했기에 바람이 덜 탈듯 합니다.

고추가 빨개질 때까지 몇 번의 손길이 가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손가락을 꼽아 주세요.^^

 

 

산으로 갈 때는 벌레에 물릴 것을 예상해야 하기에 물파스 등을 준비해야 합니다. 낮은 들이라도 날벌레 등이 많거든요.

20여분 걸었으니 결코 높은 곳이 아닙니다.

오르는 길을 버리고 내려오는 길의 무덤가에서 멀리 있는 수원지를 봤습니다. 웅동수원지의 좀 더 완전한 풍경은 새터로 가는 길에 있는 행군로에서 봐야 잘 보이지만, 오늘 걷는 길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저수지 풍경입니다.

먼 거리지만, 저수량과 저수지의 크기가 짐작이 됩니다.

 

이 물은 군용으로 저수지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기에 아이들과 저수지를 만난다면, 부분이나마 우리 역사를 이야기 해 주면 좋겠습니다.

남양동(3개 마을)중 영길마을에서 소사수원지로 가는 길은 예전부터 길이 좋았습니다. 촌동네에 이만한 길은 일찍 없었다 할 정도였는데, 그길은 일제 때 수원지로 석탄을 나르던 길이었습니다.

 

  ▲ 4월 16일 풍경 - 우리는 굴다리라고 하며, 굴다리 위의 길이 국도 2호선이고, 다리 아래로 석탄을 날랐던 것 같습니다.

가끔 가는 밥집 - 시인과 농부, 추어탕집 등으로 가려면 굴다리 아래로 가거나 표지판의 왼쪽으로 올라가 갈 수 있습니다.

 

웅동수원지는 1905년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을 하면서  저수지의 터에 있던 심동, 용잠, 뒤꼴, 댕뱅이,더머이, 들마을 , 안몰의 일곱 마을이 없어졌다고 하며, 수원지는 일제 강점기 때 진해 주민들의 용수원이 됐고, 이후 우리 해군의 식수로 사용하는데, 저수지의 물은 구천동(아흔아홉내)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가둔 것입니다.

 

더보기

시골은 아직까지 옛지명이 많이 사용되는데, 소사동의 부분 이름은 아래를 참고하면 됩니다.

* 고장의 땅 이름 - 소사동 : http://ungdong.es.kr/default.asp?board_mode=view&menu_no=53&bno=8&issearch=&keyword=&keyfield=&page=4

 

 

 

걸어, 웅동수원지(저수지엔 못 들어 가니 벚꽃장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에 더 가까이 가 보겠습니다.

서툰길을 걸어 들판으로 왔습니다. 멀리 보이는 소나무와 대나무 너머가 저수지같습니다. 산림요원이 계셨기에 인사를 하고 돌아 들판을 걸었습니다.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지않고 그저 걷기만 해도 흙과 풀의 감촉이 동심을 일으킵니다.

이런 길을 걸을 때면 하던 짓이 있지요.

풀과 풀을 묶어 누군가가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겁니다. 숨어서 지켜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우며 재미있는 일입니다.^^

 

 

보리밭입니다. 깜부기를 찾고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면 어떨까요, 마침 종다리도 장단을 맞춥니다.

 

 

소사리의 들판은 생각보다 넓습니다. 그동안 다닌 논둑길이 작은 부분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사진 가운데 소사천이 공사중입니다. 수원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소사천으로 흐르는데, 성흥사 계곡과 함께 자연석이 좋은 시내인데, 농로확장이 이유라지만, 다른 무엇이 있지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 공사중인 윗쪽의 짙은 초록띠는 저수지 둑 아래의 벚꽃나무입니다.

 

 

족히 200년은 됨직한 소나무인데, 뿌리가 드러나 있으며, 부분은 잘렸기에 나무 뿌리 사이로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 그랬습니다. 친구들과 놀다가 소나기를 만나면 큰바위 아래나 작은 굴 등에서 비를 피했습니다. 이 나무도 비를 피하기에 좋은 자리입니다.

사진은 부분인데, 뿌리 사이로 통과가 가능합니다.

 

이제 제법 길 다운 길입니다. 흙길이면 더 좋겠지요.

 

 

 

저수지까지 왔습니다. 얼마간 내린 비 덕택으로 물이 조금 흐르고 있으며, 둑 위로 초소가 보입니다. 이 사진이 군사시설보호법 위반이 될까요?

 

여러 종류의 풀들이 자라며, 벚꽃장은 철조망이 있습니다.

 

 

요즘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살갈퀴(콩과)입니다.

 

 

벚꽃장 앞으로 어린 감나무가 있었으며, 멀리서 봤을 때 비치파라솔이 보였기에 사유지 같아 그곳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철조망에 전선이 있었는데, 설마 고압선은 아니겠지요?

 

 

그 망 사이로 렌즈를 넣어 담았습니다. 우리 어릴 때 소풍에서 만난 아름드리 벚꽃나무가 아니었습니다.

군항제 때면 벚꽃이 일제의 잔흔이라고 일침들을 하니, 베어내고 다시 심은 듯 한데, 그래도 나이가 대충 보입니다.

 

 

                  ▲ 국민학교 3학년 때 봄소풍 사진입니다. 동생네 반의 아이들과 엄마들이 함께인 사진인데 나와 내 친구도 함께 있습니다.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엄마며, 앞줄의 약간 비켜 하얀치마를 입고 머리를 뒤로 반묶음 한 여자 아이가 접니다. 지금 머리 모양과 같으네요.(사진의 인물 뒤로 저수지둑에서 썰매를 타는 모습이 보입니다.)

 

엄마들이 모두 한복을 입었습니다.

친구 엄마와 우리 엄마를 보니 미장원을 다녀오신 듯 합니다.

 

모두가 열심히 바쁘게 살아야 했던 날들이었습니다.

50대라면 많은 이들이 웅동벚꽃장의 꽃놀이를 기억할 것이고, 당시 엄마들은 해치라고 하여 꽃놀이 장소에서 음식을 만들어 장구 장단과 막걸리에 취했는데, 일과 가정, 식구들에게서 해방 된 하루였습니다.

신기루였을까요.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엄마의 날들 중, 어느 빛 좋은 날 단 하루만이라도 그런 풍경을 만나고 싶은데, (웅동벚꽃장을)해군이 언제나 시민의 품으로 돌려줄런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처녀가 됐지만, 우리 아이들과도 꽃눈 날리는 웅동벚꽃장에 가서, "엄마가 그때 여기쯤에서 '퐁당퐁당'을 불렀거든, 그때 소풍 간다고 노할머니께서 5원을 주셨어, 아마 5원이 맞을거야, 은색에 50이라고 씌여 있었는데….

 

아슴아슴한 가슴으로 짧은 거리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아이들과 동행이라면 지칠 시간입니다.

이제 돌아와야 겠습니다. 1시간 넘게 걸었나 봅니다.

 

어머나 미나리네~

할아버지 한 분이 경운기를 타고 지나다 멈추었습니다.

"할아버니 미나리 좀 캐어 갈까요?"

미나리밭의 주인이 할아버지란 보장이 없지만, 마을 어른이시니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논 주인이 부산사람인데, 마을의 사람이 미나리를 심었는데 조금만 캐라 - 하시더니 할아버지께서 경운기에서 내려 함께 미나리를 캐 주었습니다.

미나리꽝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했으며, 돌미나리라고 하기에도 부족한 그런 미나리였는데, 연하며 향이 좋았습니다.

(엄마에게 드리니 아주 좋아 하셨음.)

 

아가들아, 미나리는 물에서도 자라지만, 흙에서 그냥 자라기도 한단다, 물이 약간 있음 더 좋고.^^

 

 

 

뒤돌아 보았습니다.

나를 위해 걸은 길이지만, 아이들과 꼭 함께 걷고 싶은 길입니다.

 

 

 

아' 우리 문학관이다 - ^^

성흥사 마을과 소사리는 돌담장이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며, 걷다보면 생각외로 큰 마을이기에 언제나 미로같습니다. 문학관을 드나든지 3년이 넘었지만, 안내표지가 없는 골목골목으로 가면 하늘에 있는 큰나무를 확인하여 문학관을 찾아 갑니다.

 

 

김달진 문학관 동네, 소사리의 새로운 길을 걸었습니다.

김씨아저씨가 정보를 많이 가진 이기에 논둑길과 골목에 이름표를 달아 주며 함께 걸었는데, 내일이나 모레 다시 걸을 예정입니다.(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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