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에 숲으로 가자는 늠이 개기일식이 있으니 눈이 상할 수 있다며 거부를 합니다.
"해 봤는기요?"
아기아빠에게서 몇 번 전화가 옵니다.
"그냥 보면 안되니, 공구함에 %$@#$%~"
디카시대이니 필름도 귀합니다. 작은늠이 선그라스를 챙겨가라고 합니다.
또 한 마디 합니다.
"시력 잃어도 우린 쌀 삼백석 없고, 난 (심)청이 안될거고, 설사 삼백석 있다고 하더라도 순진하게 공양은 않을 거고 - 폰은 챙겨 가는기요?"
"해는 안보고 숲을 걸을 건데 뭐."
해를 안보면 되니까, 난 다만 숲이 궁금할 뿐이니까, 하며, 작은늠의 생각을 빌려 운치가 있는 듯 한 개울길을 따라 숲으로 갔습니다.
개울물은 오늘도 힘차게 흐릅니다.
어제, 연수원 길로 텃밭에 가자고 하니 운치가 없으니 개울길로 가자고 했으니 혼자라도 개울길을 따라 둘래둘래 살피며 걸었습니다. 사위질빵이 피었습니다. 칡꽃도 피었습니다.
칡꽃을 담을 때 가장 어두웠나 봅니다. 해가 얼마나 가려졌을까, 오후 8시쯤의 어둠인가, 그러나 시계는 보지않았습니다.
밤 시간에 숲을 걸을 일은 없습니다. 걷는다면 식구중 누군가가 들일이 늦었을 때 마중을 가는 일입니다. 그때는 카메라질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얼마나 더 어두워질까.
칡꽃을 담은 후 잠시 비슷한 감을 느꼈지만 더는 어둠이 짙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늘의 해는 보면 안되겠지….
숲으로 가는 길이 풍성합니다.
오늘 가장 큰 수확은 술패랭이를 만난 일입니다. 해안도로에서도 만났습니다. 평지를 두고 위태로운 곳에만 피어 있다는 건, 누군가가 평지의 꽃을 채취를 해 갔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 흰돌(해안도로)로 가는 길에 지천이던 술패랭이는 안골로 넘어가는 산길에서 만나고 오늘이 처음입니다.
때죽나무 열매가 제법 꼴을 갖추었으며, 사과는 장마가 끝나면 따 먹어도 될 듯 합니다.
대밭집을 벗어나니 어두운 숲이 긴장하게 했지만, 여긴 내 구역인데 - 하며 씩씩하게 걸었습니다.
보통 땅에 붙어 자생하는 질경이가 흙이 패여 뿌리가 드러나기도 했으며, 고라니의 흔적이 많고, 숲에서 후다닥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뱀이 귀한데, 오늘은 두 마리를 만났습니다. 징그러운 꼬리가 풀섶으로 사라집니다.
대밭집 뒷쪽부터의 임도는 나무를 대어 계단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좁은 길일 때도 다닐만 했는데, 시에서 흰돌메공원과 등산로를 연계한다고 나무를 베어내기는 했지만,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이 길은 오래전에 동네의 언니와 오빠들이 나무를 하러 가던 길이었으며, 근래엔 드문드문 있는 묘지로 가는 길이었고, 아주 가끔은 나같은 얼치기들이 산보삼아 걷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길이 제대로 없던 갈래 길에서 이제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상이 가까워지면 길 양쪽으로 차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내린 비에 차나무가 심어진 자리가 더러 패였습니다.
시루봉 가는 길에도 차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시내에 있는 친구는 봄이면 찻잎을 딴다고 했습니다. 그리곤 덖어 우려 마신다고.
어린잎이 있지만 찻잎을 따는 일보다 숲을 걷는 일이 더 좋기에 걷습니다. 맑은 숲을 마십니다.
장마철에는 잡초와 함께 버섯도 잘 자랍니다. 그러나 흔한 식용버섯외에는 이름을 모릅니다.
이상하게 생긴늠일세 - 이늠은 땀을 흘리네, 지가 분화군가 - 어떤 늠은 지름이 5센티가 넘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나무에는 이끼도 가득합니다. 숲은 원래 어둡고 맑으며 습기가 많고 조용합니다.
나무에 가려진 하늘과 해가 궁금했습니다. 볼까 말까, 딱 한 번만 봐야지 - 숲을 벗어난 정상에서 흐린 하늘을 봤습니다. 흐리지만 눈이 부셨다는 것 - 그것 뿐이었습니다. 솔바람 가득한 숲은 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숲이 그럽니다. 개기일식이 뭐에요?
▲ 미국자리공
능선을 걷다보면 미국자리공을 많이 만납니다.
웃기는 늠이네, 어떻게 여기에 자리를 잡았을까.
평지와 들에서 미국자리공을 만나면 그러려니 하는데, 능선을 걸을 때는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않습니다. 아무리 북아메리카가 원산이라도 이름을 달리했다면 분명 관심을 가질텐데, '미국자리공'이니 완전 밉상입니다.
꽃의 생김이 마음에 차지않습니다. 꽃은 그저 꽃으로 봐야 하는데, 이늠의 꽃은 수족관에서 꺼낸 수초처럼 똑똑 꽂히거나 뚝뚝 떨어질 것 같다며 시비를 걸고 싶습니다.
열매는 더 밉상입니다. 짙은 자주색의 열매는 한알만 으깨어도 자색인듯 보라색인듯한 색의 즙은 위의 모든것을 토하게 할 듯 합니다. 보래색의 액체에 유독 비위가 약해 포도쥬스와 갓물김치 등도 먹지 못하며, 밥집에 갔을 때 그런 색이 나오면 옆으로 치우기까지 하는데, 여기가 어디라고 건너와서 능선에 자리를 잡았는지 당최 그 속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쁠 때가 있는데, 그때는 비가 내린 후 방울들이 맺혀있을 때입니다. 담을 때 물론 실패를 하지만, 총상꽃차례의 특징상 줄줄이 맺혀있는 모습을 만나면 잠시 머뭅니다. 지난해보다 자리가 더 넓어졌습니다.
반대편에서 산행중인 두 사람이 옵니다. 그들은 라디오를 들으며 걷습니다.
산에서 사람을 만나면 그럽니다. 대부분, "안녕하세요?"하고.
배웠습니다.
들꽃을 만나러 가면 산행중인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왔거든요. 만나는 이들마다 그랬습니다. "안녕하세요?"
친구는 뭘 할까.
2시간 이상의 나들이나 작업을 나설 때 이어폰을 챙겨 노래를 듣거나 친구와 통화를 합니다.
5월에 휴대폰을 바꾸고 음악을 저장하지 않았으며, 아무하고도 말을 주고 받기가 싫었거든요. 그런데 다른이가 라디오를 듣으며 걷는 모습을 보니 갑짜기 음악이 듣고 싶고 친구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아니야, 꾹 참아야지, 하나씩 하나씩.
솔바람이 시원합니다. 혼자인 산속인데 시끄럽습니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매미입니다. 탑산을 오를 때 일년계단에서는 매미를 잡기 쉬웠는데, 산속에는 어느 나무에서 소리가 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개기일식이 끝났는지 저마치서 빛이 스멀거립니다. 그러나 솔바람 덕택에 덥지않습니다.
해군땅이라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철조망 같은 건 없습니다. 소쿠리섬도 해군땅이라고 했지만 민간인의 출입이 가능하니, 이제 해군도 기가 많이 죽었나 봅니다. 아니면 '우리 땅'하며 말뚝만 박아 두었는지.
그래도 가끔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친구들에게 말했듯이, 우리 진해가 이만큼 푸름을 간직하는 게 해군으로 인한 개발제한 때문일거라고. 친구들도 동의를 했습니다.
이제 내리막 길입니다. 높은 산이 아니기에 그저 들길 걷기 정도지만, 막상 내리막길이 되니 시원섭섭했습니다. 더군다나 햇살까지 비치니. 숲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앞과 뒤, 옆에서 끝임없이 오늘을 속살거립니다.
계단식길은 때로는 지그재그로 되어 있습니다. 가파른 부분입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오르더라도 숨이 차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남쪽으로 향한 그 계단의 옆으로 묘지가 제법 있습니다.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그 할머니의 산소는 해안도로가 생기기전에 꼭 요즘처럼 질펀거리는 계절에 이장을 했습니다. 그때는 이곳을 공개라고 했습니다.
한겨울에도 작은 꽃을 만나는 기쁨이 있는 곳, 봄이 먼저 오는 곳, 사람냄새가 나서 따뜻한 곳이 묘지주변인데, 묘지의 꽃은 할미꽃이 대명사 같은데, 요즘은 솜방망이와 각시붓꽃이 많습니다. 자손이 게으르면 엉컹퀴와 억새가 많습니다. 그래도 그 틈에 계절을 알리는 꽃 두어송이는 피어 있습니다.
커피도 한 잔 마시지 못했는데, 소나무 사이로 신항 공사 현장이 보입니다. 숲에는 평상과 긴의자가 곳곳에 있으며, 쓰레기 푸대도 걸려있습니다. 친구와 통화중이었다면 바위나 숲길 가운데서 커피를 한 잔 정도 마셨을텐데, 혼자 열심히 걸었다보니 커피를 마시지 못했는데 이제 아기가 챙겨준 간식과 커피를 마셔주어야 합니다. 흰돌메공원입니다. 꽃잎과 나뭇잎 사이로 햇살과 함께 노래가 흐릅니다. 모자를 벗고 벌개미취와 눈맞춤을 했습니다.
흰돌메공원은 객지같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없었던 해안도로며 결코 원래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들꽃이 하늘거립니다. 잎에 윤기가 자르르합니다.
사람들은 망원경으로 둑과 갯벌, 바다, 섬을 봅니다. 진해의 미래와. 진해의 우울한 오늘도 보아주면 좋겠습니다.
흰돌메공원에서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숲이 끝났습니다. 갱물이 조용합니다.
"낮에 해 봤는기요?"
"어, 한쪽눈으로 살짝 - "
"블로그 하는 사람이 평생 한 번 보는 개기일식인데, 전화로 알려주면 고마워해야지 성을 내면 우야노 - "
"아~ 시끄러, 눈이 왜 이리 아프지 - 한쪽 눈이 아픈게 아까 해를 봐서 그런 모양이네,
칫, 촛불집회를 이제야 연락하면 우짜노 - "
"어데서 왔는기요?"
"어, 언소주 - 카페요, 부산 쥬디스 앞에서 한다네, 늦어서 몬가는데."
"미디어법 때문에 그라는가베 - 봉하는 언제 가요?
작은비석보러 가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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