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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삼랑진,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by 실비단안개 2009.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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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길이 이상하네.

(왼편을 가르키며)저쪽이 철교고, 저건 대구 부산간 고속도로고, 이 길은 새로 생겼네."

"저게 경전선 철교? 나, 여기 지지난해에 기차여행 했는데, 우리 저 철교쪽으로 가자, 그럼 내가 길을 모두 알거덩, 좀만 가면 낙동강역이 있고 반대편으로 삼랑진역이 있고, 둑을 넘으면 낙동강물이 흐르거든…."

 

"돌아갈 수는 없고, 이 길 끝에서 좌회전 내지 우회전이 가능할테니 철교로 갈 수 있습니다."

"빨리 가고 싶다…."

 

이 굴다리, 삼랑진교, 맞다 - 콰이강의 다리. 무지개다리도 - 무지개 다리가 완공되었네.

나 여기다 내려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주차하소!

 

먼곳에서 / 조병화

 

이젠 먼 곳들이 그리워집니다
먼 곳에 있는 것들이 그리워집니다

 

하늘 먼 별들이 정답듯이
먼 지구 끝에 매달려 있는 섬들이 정답듯이
먼 강가에 있는 당신이
아무런 까닭없이 그리워집니다

 

철새들이 날아드는 그 곳
그곳 강가에서 소리 없이 살아가는
당신이 그리운것 없이 그리워집니다

 

먼먼 곳이 날로 그리워집니다
먼 하늘을 도는 별처럼

 

삼랑진교가 그대로이며, 콰이강의 다리 안내판도 그대로였습니다.

2년 전, 이 자리에서 커피가 고팠는데, 그 자리에 서니 또 커피가 고팠습니다.

그때 자판기 커피를 뽑아 이 점방에서 아마 제크를 샀을 겁니다. 작업시에 먹는 과자는 초콜렛과 제크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런데 자판기는 기능이 가능한데 점방이 쉽니다. 건너편으로 두 개의 점방이 더 있기도 한데, 역시 그곳도 한 곳은 문이 잠겼습니다. 도시의 점포만 문을 닫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주차를 하고 왔습니다.

 

이게 삼랑진교야, 저건 경전선 철교고.

삼랑진역에서 경전선을 타면 낙동강역은 경전선의 첫 역이고, 철교는 국가기밀이라 어느 지역의 철교든 사진으로 찍으면 안된다고 했거든.

 

삼랑진교에서 보면 경전선 철교와 그 너머의 우리가 방금 달려온 도로, 또 그 너머에는 대구 부산간 고속도로, 반대편에는 신항 배후 철도가 낙동강에 걸쳐 있습니다.

 

이태전 신항 배후 철도는 강의 중간쯤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완공이 되었으며, 마을 뒷쪽 산을 관통하는 터널 공사 중이었습니다. 이 철도는 김해 평야를 갈라 진해 용원을 살짝 거쳐 신항이 종착역이 될 겁니다.

 

삼랑진의 낙동강 위로 8개의 다리가 있다고 했는데, 2년이 지났으니 더 추가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07년 1월 중순 어느날, 나는 종일 낙동강가에서 서성거렸습니다.

 

        ▲ 경전선 철교                                 ▲ 삼랑진교                                    ▲ 신항 배후 철도(2010년 완공 예정)

 

강물 좀 볼래?

철교를 지나면 모래밭이 있는데, 그 모래밭이 또 예전같지가 않아요.

 

우리 부산 살 때, 아기가 몇 살 때였을까, 그때 아기가 꽃분홍 티셔츠를 입었어. 경은이는 반바지에 노란 티셔츠를 입고 청조끼를 입고….

그때 금요일이면 낚시를 갔잖아, 그럼 난 아이들과 나들이 하고. 우리가 중리에 살 땐가 - 아마 그럴거야. 기차여행을 하고 싶었기에 김밥으로 도시락을 준비하고, 중리에서 부산역이 많이 멀었지만, 우리는 부산역으로 갔지요.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를 탄 건 대구 작은댁이나 기준이네 집에 갈 때 뿐이었기에 아기들과 우리들만을 위한 그런 기차를 타고 싶었거든.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네. 그 더운 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

 

우리가 대구에 갈 때면 도시락을 먹었잖아, 부산역에서 도시락을 사면 그 도시락을 비우면 동대구역이었는데, 우리 아이들은 기차를 타면 도시락을 먹어야 한다 - 는 공식이 있기에, 나도 기차하면 도시락 생각이 나고 - 하하.

암튼 그래서 김밥으로 도시락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낙동강역에 내려 먹으면 더 좋겠더라고. 이름에 낭만이 가득하잖아, '낙동강역!'

 

무궁화호는 이제 언제 올지 몰라, 그래도 우리는 강가로 갔는데, 가기전에 이 시골길을 걸었어요. 그때 접시꽃이 얼마나 덥게 보였는지, 꽈리도 익고 있었네. 주인 몰래 땄어요. 아마 아이들 사진을 보면 아기가 들고 있을거야.

모래밭은 맨발로 걸어야 하는데, 8월 햇살에 달궈질대로 달궈진 모래라 맨발로 걸을 수가 없었어. 해서, 아이들은 물가에서 겨우 신발을 벗었지. 에나, 신발을 벗더니 강물로 들어가는 거야 - 하하.

 

난 그때 너무 무지했고, 아이들은 너무 어렸고. 그래서 우리가 더 순수했는지도 모르지.

짱짱한 햇빛에서 몇 시간을 놀다보니 지치더라고.

그런데 무궁화호는 정말 늦게늦게 왔거든. 그래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지요.

 

이제 낙동강역은 나들이객 외에는 거의 찾지않는 역이 되었는데, 신항 배후 철도가 운행을 하게되면 증축이 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손님이 없는 역이 쓸쓸하지만, 증축이 된 역은 또 다른 이질감을 낳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낙동강역과 삼랑진역

 

커피를 한 잔 뽑고 생수와 과자를 샀습니다.

생수만 한 병 사려고 했는데, 지폐가 만원권이었기에, 시골에서 거스름 내어 줄 돈이 있을까 싶더군요. 점방 할머니께서 잠시 웃었습니다. 새우깡이 먹고 싶어 새우깡과 샌드야. 자 물~

 

참 오래 된 다리제? 여기서 좀만 가면 콰이강의 다린데, 2년전에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주인이 노트북을 꺼내주었기에 잠시 인터넷에 접속을 했는데, 내가 노트북을 다룰줄 몰라 주인에게 미안하기도 했거든. 콰이강의 다리에서 보면 신항 배후 철도 공사현장이 보였는데, 이제 완공 됐네. 우리 좀 더 걸어보자.

 

* 신항 배후 철도 비교 : 11시 40분, 커피가 고팠다

 

 

신항 배후 철도가 완공되었습니다. 분홍색과 보라색의 중간색인데 참 이쁩니다. 콰이강의 다리로 가는 길에는 수세미꽃이 피었고, 그때도 이런 화단이 있었는지 기억에 없지만, 카누같은 것을 화단으로 꾸며 놓았습니다.

 

        ▲ 삼랑진교와 신항 배후 철도가 보입니다.

 

아래의 집은 2년전 그때도 담았습니다.

 

집이 일본식이야. 일본늠들이 진해뿐 아니라 여기에서도 진을 친 모양이네. 삼랑진역 때문일까, 이쪽 길이 국도 58호였는데, 국도 58호는 어디에서 어디까지일까, 우리는 목포 부산간의 국도 2호인데. 암튼 도로까지 일본의 흔적이야.

 

국도 58호선을 검색하니, '진해 <->청도'간이라고 합니다.

난 일본을 절대 좋아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 집은 대문도 우리나라식이 아니며, 삼랑진역으로 가는 길 주변으로 비슷한 건축물을 더러 만날 수 있습니다. 낡은 2층집들.

 

 

삼랑진역까지 걷기에는 좀 멉니다.

흥얼거렸습니다.

내가 놀던 정든 시골길 소달구지 덜컹대던 길, 시냇물이 흘러내리던 시골길은 마음의 고향

눈이 오나 바람 불어도 포근하게 나를…

 

비록 포장이 된 도로지만, 낙동강을 따라 삼랑진으로 가는 길은 옛날의 시골길입니다.

 

하하 장날이다~ 우리 시장에 가자, 어?

삼랑진역은?

아, 맞다, 삼랑진역에 갔다가 시장에 가면 되겠다. 하하

 

이 길로 쭉 가는거야, 그럼 삼랑진 다리 지나 조금만 가면 역이 있거든. 그런데 삼랑진역도 예전같지가 않아요. 예전엔 삼랑진역이 참 큰 역이었는데, 우리나라 어딜가던 삼랑진역을 통했으니까. 경부선과 경전선이 나누어 지는 곳 -

 

고등학생때, 그때 삼랑진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자매가 많았고, 포도밭을 했는데, 엄마가 계시지 않았어. 걔 언니가 참 좋았거든. 언니가 둘이었어.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돈을 벌어 동생들 공부시키고…, 아마 늦여름이었을 거야. 내가 고구마꽃을 처음 본게 여기 낙동강변이었어요. 그 친구가 자기네집에 놀러가자고 했기에 난생 처음으로 삼랑진에 왔었거든. 난 포도를 먹고 싶었는데, 그 친구가 낙동강을 구경시켜 주었어. 그때 내가 기억하는 낙동강은, 아까 우리가 간 둔치도 쯤일까, 작은할아버지,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의 사촌동생이 낙동강의 섬 같은데 살았어요. 그래서 아까 둔치도에 가자고 했고.

 

아버지와… 그때는 녹산보다 시메거리라고 했는데, 지금 녹산수문에서 좌회전하면 강위로 지어진 집 같은 거 - 아마 그쯤일거야, 그곳에서 작은 배를 타고 작은할아버지댁엘 갔어요. 지금, 작은댁의 삼촌들이 성묘때면 우리집엘 오시는데, 먼 그 삼촌들이 우리에겐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어. 해서, 가끔이지만 우리도 김해 작은할아버지댁으로 갔는데, 이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김해삼촌(7촌쯤)들은 모두 타지에 자리를 잡았지만, 선대의 묘가 우리 동네에 있으니 성묘를 오시는 거야. 창녕인가 - 그곳에서 양파즙을 보내주는 삼촌도 김해삼촌 중 한 분이야. 그게 내가 기억하는 낙동강인데, 섬이 아닌 강변에 마을이 있는거야.

 

아는 칫과의사선생님 중 한 분이 사진을 찍는 일이 취미였는데, 내 친구가 참 이뻤어요. 가끔 모델이 되어 주기도 했는데… 내가 이곳으로 이사오기전부터 그 친구 소식이 궁금해서 친구들에게 물으니, 창원 어디에 산다더라, 아이가 셋이라더라, 라는 것 밖에 몰라요. 가장 보고 싶은 친군데, 연락을 할 길이 없네. 엄마가 없었고, 해서 그 친구가 엄마를 그리는 마음으로 좋은 엄마면 좋겠다 - 라는 바람을 해요.

 

그냥 내 생각인데, 엄마가 없는 사람, 아이, 물론 우리는 나이가 들면 모두 고아가 되는데, 그러나, 그래도 내가 가진 엄마니까, 너도 있어야 한다 - 이런 생각인데, 그래서 내가 가진 걸, 엄마나 그 외 어떤 물건이나, 그가 갖지 못했다면, 못한다면 그건 불공평한거고, 불쌍한거고. 그 중에 엄마가 없다는 게 가장 불공평하며 불쌍해. 고아니까. 아빠는 그냥 아빠고 엄마는 모든것이니까.

 

그 친구 고향이 여기 삼랑진이었어. 집 뒤로 낮은 들이 있었고, 동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삼랑진, 여기 강가 어디쯤….

 

그때, 겨울, 1월 중순에 사람들은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삼랑진까지 작업을 다녔습니다. 

그들의 하루 일당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당시에 알았을 수도 있지만, 삶이 녹록치 않구나하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부산에 살때에, 그때 우리 엄마도 가끔 명지파밭으로 일을 가시긴 했지만,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니까, 아버지와 우리들이 있으니까, 힘이 드는 일일지라도 다른 사람들과 달라보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큰대야를 들고 찬도시락을 들고 일을 다니면 참 힘들겠구나 -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을텐데, 우리가 큰 힘이 되어 드리지도 못했는데, 마음으로는 우리 남매들이 만리장성쯤 되는 줄 안 모양입니다.

 

그날, 나는 역전 다방에서 싼 커피를 마셨고, 많이 지쳤을 때 추어탕을 먹기도 했습니다. 약목으로 가는 기차는 느리게 왔습니다.

 

역, 삼랑진역이다 - 빨리 차 세워!!

나 여기다 내려주고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온나, 알았제?

 

배롱나무꽃이 피었습니다.

그 아래로 자전거가 쉬고 어르신들도 쉽니다.

아침에 눈을 뜨기전부터 울던 매미지만, 삼랑진역의 매미는 세상에서 제일 우렁찬 놈입니다.

벚나무에 딱 붙어있습니다.

곤충망이 없어도 너를 잡을거야, 탑산 오르는 계단에서도 너를 잡았으니까. 그래도 오늘은 카메라로만 잡는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내가 봐 준다.

 

 

        ▲ 벚나무에 유독 매미가 많은데 이유가 무얼까요. 그런데 진해시내 도로변의 벚나무에도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많다면 대단한 소음이니 매미잡기 운동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 벚나무에 매미가 많다라는 것이 아닌듯 하기도 합니다.

 

맞이방에는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구포역행 표를 잘못알고 부산역으로 끊었기에 담당자께서 단 몇 푼이지만 교환을 하라고 자상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저기요, 철길 담고 싶거든요, 들어가도 될까요?"

 

기차표가 있더라도 철길로 가려면 차 시간이 되어야 하며, 철길은 원래 사진으로 찍으면 안된다고 어느 역에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여러 역을 승인하에 담았기에 큰용기를 내지않고 작은 소리로 허락을 요했습니다.

"기차가 오면 위험할 수 있으니 철길엔 절대 들어가면 안됩니다?"

"네~"^^

 

전깃줄이 복잡하게 있고, 건너편으로 물통이 있는데, 겨울에 깡마른 물통이었는데, 계절답게 담쟁이가 보기좋게 올라있습니다.

그 앞의 가로등이 담쟁이를 뒤집어쓴 물통이 웃는 듯 했습니다.

나도 웃었습니다.

 

안내표를 확인하고 지하도에서 사진으로 담긴 만어사 등 삼랑진의 볼거리를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폴짝폴짝 철길 건너의 기다림 장소로 갔습니다. 의자가 있으니 앉아봤습니다. 의자는 원래 앉는 자리니까요.

이때 기차가 들어오면 참 좋은데, 기차는 내가 플랫홈을 막 빠져나올때, 빠아~ㅇ 했습니다.

 


 삼랑진역앞과 건너편으로 다방이 있지만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정오가 훨씬 지났기에 밥을 챙겨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하도와 다리를 건너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삼랑진 시장으로 갔습니다. 우리가 주차한 건너편과 바로 옆이 시장이긴 했지만, 우리는 진짜 시장부터 만나기로 했습니다.

 

삼랑진에 가면, 낙동강이있고,

삼랑진에 가면, 철교가 있고,

삼랑진에 가면, 콰이강의 다리가 있고,

삼랑진에 가면, 낡은 커피자판기가 있고,

삼랑진에 가면, 시골길이 있고,

삼랑진에 가면, 친구가 있고,

삼랑진에 가면, 우리 아이들이 있고,

삼랑진에 가면, 삼랑진역이 있고,

또,

삼랑진에 가면, 삼랑진 시장이 있다.

 

 

 

삼랑진 시장은 처음입니다. 그전에도 물론 있었지만 그날은 장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삼랑진우체국은 시장 안에 있습니다. 그때, 이태전 그때 1월에 삼랑진우체국에서 인터넷에 접속을 했기에 압니다.

 

달콤한 포도가 종이에 싸여 있습니다. 알이 굵은 복숭아도 있습니다.

어머나, 할머니 이 게 바다 게잖아요?

간장게장도 있었습니다.

 

민물장어와 가물치, 붕어는 낯설지 않은데, 고등어와 갈치가 있으니 낯설었습니다.

서울에 바다가 없지만, 서울은 서울이니까 모든 것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여기 삼랑진은 시골이기에 산지에서 생산되는 것만이 있어야 하는 것 같거든요.

 

건너편에서 흐르는 트롯은 시장 전체에 흘렀습니다.

우리는 국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돼지국밥 주까예 선지국밥 주까예?"

우리, 선지국밥 묵자?

 

경화시장에 가야 선지를 구할 수 있기에 우리가 선지국을 끓이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기에 선지국밥으로 주문을 했습니다.

 

우리집처럼 고사리나 토란대가 없었지만, 국물이 얼큰 시원했습니다.

국밥 삼분의 일쯤을 덜어주고 나머지를 국물까지 알뜰히 먹어주면서, 1박 2일 재방송을 봤을 때, 김종민이 컵라면 국물까지 해치우느라 기차를 놓친 장면이 떠올라 막 웃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마지막 국물까지 알뜰히 먹는 내 모습이 김종민과 닮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차가 떠나거나 말거나, 아니지 우리는 기차여행 중이 아니지. 숟가락을 놓으면서, 내가 꼭 그 김종민 같네 - 하며 둘이서 또 웃었습니다.

 

얼마에요?

네, 두 그릇에 8천원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배가 부르면 잘 먹은 내가 기특해서 흐뭇합니다.

이제 천리는 거뜬히 걸을 듯 합니다.

 

시골살이는 다 비슷해 그치?

그렇지 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미디어법이 왜 필요하고 저작권이 뭔 필요가 있노.

모든 법은 있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 그래도 시골살이가 편해요, 욕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어, 삼랑진 장날이 4일이야, 4일 9일, 경화장날이 3, 8일이고, 우리 마천장이 5, 10일이고, 삼랑진은 4, 9일….

 

 

예정에 없었던 길이기에 다시 생수와 간식을 준비했습니다.

옛날과자를 먹고 싶은늠으로 골랐습니다.

 

만어사로 가기로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태안호를 지나 산을 기어올라 여여정사에 들었습니다.

여여정사의 사천왕은 갇혀있지않고 길 양옆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여여정사로 가는 길에는 석등이 많았습니다.

석등이 어디 밤길만 비추겠습니까.

그 등 옆에 아래의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냥 읽어 보세요!

 

이곳은 공부하는 수도 도량입니다.

우리 함께 고요한 마음으로 자연의 소리

들어 보세요. 물소리… 새소리… 솔바람소리

마음도 맑아지고 몸도 맑아지고 신심이

향기로워 집니다. 우리 함께 자연을 지켜요.

버리지 말고 떠들지 말고

꺾어 버리지 마세요.

 

물처럼… 하늘처럼… 우리 그렇게 살아요.

 

- 남촌 여여정사 우리 모두 함께 함장 -

 

멀리 대웅보전이 보이는 곳에서 볼과 배가 볼록하지 않은 달마를 만나고, 약사전에서 꽃배를 띄웠습니다.

 

 

        ▲ 약사전

 

엄마의 기도는 모든 엄마가 같습니다.

 

우리,

이제 내년 봄에 오자, 그때 만어사 갔다가 이 길 쭉 따라가면 원동이거든, 그때 우리 와서 만어사 들려 원동 매화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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