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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사람이 있는 풍경

행암포구에서 만난 사람들

by 실비단안개 2009.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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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늦가을 일요일에 우리 동네를 시작으로 해안도로를 담았는데, 그날 해가 져서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잠시 머문 곳이 진해의 가장 오래 된 포구 행암이었습니다.

* 진해 해안도로(황포돛대 노래비 - 행암)

 

행암 포구 

행암(行岩)의 원래 이름은 '갈바위'인데, 녹슨 철로가 마을과 바다를 가르며, 진해에서 일몰이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이 행암입니다.

행암 바닷가에는 사철 잔손맛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과 느긋한 바다를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 행암에서 장천항 방향 - 벌써 담쟁이가 붉게 물이 들고 있습니다.

 

행암은 장천항이 있는 다음 마을, 오래전에 진해의 마지막 마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행암으로 갈 일이 없었으며, 지금 진해시청 아랫길로 아주 가끔 진해 외가와 고모댁으로 갔는데, 당시에는 행암은 몰랐으며, 장천은 알았습니다.

 

우리가 다니던 버스길, 국도 2호선인 그 길에는 검문소가 있었으며, 검문소에서 웅동쪽으로 조금 더 오면 산길(국도 2호선이지만 구비구비 산길)에서 숲에 분뇨를 바로 부어 처리를 했고, 장천의 하늘은 언제나 뿌얬습니다. 

67년 준공 된 4비료공장(진해화학)이 장천에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없어진 80년대 비료공장의 폐수로 오염됐던 바다를 슬퍼했던 이월춘 시인의 '행암 행암 에헤야' 시에 행암 마을이 있습니다. 이 시는 진해 가수 김성관이 노래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김성관과 이월춘 시인은 이 블로그에 몇 번 올렸는데, 아래는 흑백다방에서 VJ특공대 촬영때의 김성관의 모습인데, 당시 촬영은 하였지만, 방송국측과 코드가 맞지않아 방송을 불허했습니다.

 

 

 

    행암 행암 에헤야 / 이월춘

 

   행암행암 에헤야 죽은 바람만 불어 온다

   행암행암 에헤야 죽은 물만 떠내려 온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쟁반같이 둥근 달아

   죽은 아들 넋 비는 늙은 애비 비춰 주라

   처녀혼 매달아 총각혼이나 건져볼까

   썩은 나무 매달아 썩은 구두나 건져볼까

   풀이끼 매달아 앞바다 섬이나 건져볼까

   모진 세상 등져 버린 인심 한뿌리 건져볼까

   내 손가락 뚝 잘라 미친놈 고래나 던져줄까

   깨진 내 안경살에 걸려 취한 달도 흥청망청

   징 때려 부르던 굿소리도 간데 없고

   설운 바위 매치는 파도소리만 야속타

   철둑에 나자빠져 뽑힌 나무 끄잡아 땡겨

   흥 - 배 띄우고 콧노래나 불러보세

   독수공방 문지방에 달빛 손님 땡그랑

   계집아이 속가슴만 파고드는 어허상사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아이야 너도 가자꾸나

   세상 아픔 씹으면서 행암길로 나는 간다

   행암행암 에헤야 죽은 물만 떠내려 온다

 

김성관 씨는 충무동 북원로터리 인근, 일본식 건물에 ‘촌돼지와 쏘주’라는 주점을 열어 손님들에게 직접 노래선물을 하고 있으며, 이월춘 시인은 진해중앙고등학교에 근무합니다.

 

        ▲ 행암 마을

 

비료공장이 떠나고 행암의 바다는 조금씩 기능을 회복하였지만, 인근에 STX가 있으며, 포구에서 선박수리를 하기에 바닷물이 그리 맑은 편은 아니지만, 낚시를 하기에 무리가 없는지 계절 내내 낚시꾼이 있으며, 바지락 양식장도 있습니다.

 

        ▲ 행암 전망 테크 - 길이 145m의 목재 테크로드는 전망대 역할을 하며, 진해만과 시루봉,

행암마을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전망 테크에서 '노인과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지만, 노인과 바다는 지금 영업 중지 상태인데, 하루 빨리 정상적인 영업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 노인과 바다 내부 풍경 : 진해 해안도로(황포돛대 노래비 - 행암)

 

마을앞을 지나는 철로는 수변 테크로드 뒤에서 사라지는데, 군부대와 진해역간을 이동하는 화물선으로, 당시 코레일 담당자가 점검 중이었는데, 운행 횟수 등은 기밀이라고 하더군요. 이 철길이 해넘이 구경이 좋습니다.

 

        ▲ 군부대로 사라지는 철길과 노천 카페겸 횟집 

 

긴머리의 1인 시위자 정성용

15일 광복절 오후, 행암에서 가장 먼저 들어 온 풍경은 버스정류장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긴머리의 남자였습니다.

나사랑 님, 진해사랑 님과 시내에서 국밥을 먹고 오니 그때까지 그 자리에서 불편한 몸으로 혼자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누구도 귀를 기울이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나사랑 님은 거리가 멀기에 먼저 보내고 버스정류소의 1인 시위자에게 다가갔습니다.

 

 행암동에 거주하는 50대의 정성용 씨입니다. 지게차에 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한데, 목과 허리 등에 쇠를 박았다고 하더군요. 그의 주장은 토지사기를 당했으며, 검찰 등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아무런 답을 받지못하여, 검찰, 국회 앞 등에서 1인 시위를 했으며, 몸이 불편하여 지속적으로는 하지 못하지만, 정신과 몸이 맑을 때면 하루에 두어 시간씩 이렇게 도로변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 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주장에 믿음을 갖지 못하더라도 그의 하소연에 귀는 기울여 주어야 할 것 같아 둘이서 도로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일방적인 하소연이 더 많은 시간을 차지했지만, 개인인 내가 해 줄수 있는 일은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 뿐이었기에 안타까웠습니다.

 

그가 목에 걸고, 손에 든 자료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봤지만, 단 한 건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좀 힘있는 분들 - 기관들이 허탕치는 셈 치고 그의 하소연을 좀 들어주면 고맙겠습니다.

 

 

그는 혼자 생활을 한다고 했으며, 거주지가 행암이었기에 거주지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원하지 않는 눈치였기에 행암 가, 나, 다길 중에 가운데길을 택해 걸었습니다.

 

소라를 딴 아저씨

광복절이라 많은 가구에서 태극기를 달았으며, 경치가 좋은 마을이다보니 신식 다세대가구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주택은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올 여름중 가장 더운 날이었습니다. 덕분에 빨래가 잘 말려지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삼을 삼던 모시풀입니다. 저마치 남자의 뒷모습이 보이기에 크게 부르며 다가가니 큰개가 뛰쳐나왔기에 아저씨께서 나오셨습니다.

 

"아저씨 모시 삼나요?"

"아이고 어머니때부터 심어져 있었는데, 베어 내도 자꾸 자라네요. 여긴 우짠 일입니꺼?"

"네, 진해 풍경을 이것저것 담는데, 오늘은 행암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행암 주민들과 행암 풍경을 담는 중입니다."

"방금 소라를 따 왔구마는, 옷이 젖어 씻어 널고 들어가던 참이었소."

"소라요? 좀 보여주세요."

 

  

 아저씨께서 방금 딴 소라를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에 많나요?

가끔 나가면 그냥저냥 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삶아서 같이 먹자 - 고는 할 수 없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행암은 150여 가구며, 지금은 외지인이 많지만, 오래전부터 동래 鄭씨의 집성촌이었는데, 지금도 정씨가 많으며, 모두가 가족처럼 그렇게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작은 텃밭에는 노각과 방울토마토 등이 있었고, 까만 마늘이 있기에 흑마늘이냐고 여쭈니, 보통 마늘인데, 쪄서 말리면 흑마늘이 되니 굳이 흑마늘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까운 땅(텃밭 부분)은 왜 놀리나요 하니, 김장 배추와 무를 파종할 자리기에 지금은 비어 있다고 합니다.

 

커다란통에 부레옥잠이 촘촘하게 있기에 생장에 어려움이 있을까봐, 아무래도 통이 작은데 왜 이렇게 많이 키우냐고 물었습니다.

궁금한게 많으며 참견도 많은 여자입니다.^^

 

"달라는 사람들에게 주고 남은거요."

"그럼 제게도 주셔요, 아저씨 봉지에 담아 물이 흐르지 않도록 주세요."

 

아저씨께서 봉지에 넘치도록 솎아 주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 한 분이 빨간고추를 지게에 지고 오셨습니다.

"할배가 여기 토박이구만, 우리 어릴 때부터 계셨으니, 동네 이야기는 할배가 더 많이 안께 할배하고 이야기 해 보소." 

 

70대의 할아버지 지게에 고추를 가득지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혼자 고추를 땄나요?"

"어데 혼자 따, 어제 따 둔거 지고 온다."

 

"네, 저의 아버지도 지게를 집니다. 고추도 따고 배추도 져 나르고, 아버지는 70대 중반인데 할아버지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할아버지는 72세며, 고향은 STX조선소 근처의 수치라고 했습니다.

 

 

혼인을 하여 분가를 한 할아버지는 현재 90여평의 땅에 고추를 심었는데, 30여근을 땄으며 앞으로 20여근은 더 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농사를 제법 지었는데, 한동안 땅을 놀리다가 근래에 다시 채소 등을 심는데, 논농사는 없으며, 노는 땅을 시내의 사람들이 더러 거루기도 한답니다.

 

노인과 바다 아래에서 선로를 타고 올라 온 배를 수리중이었기에 요즘도 고기잡이가 좋으냐고 여쭈니, 요즘은 괴기가 예전처럼 없기에 낚시손님을 태운답니다.

행암에는 낚시점과 횟집이 많습니다.

 

할아버지와 헤어져 행암마을의 들을 둘러봤습니다.

역시 여느 시골의 들과 같았습니다.

참깨가 여물고 고추가 익고….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인 풍경입니다.

 

어릴 때 고향 친구가 잘 부르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아침 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 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 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 저어가요….

 

풍어제 굿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요즘이지만, 행암마을이 지금의 풍경이라도 오래 간직하기를 바람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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