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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사람이 있는 풍경

곡성의 어린블로거 진해를 방문하다

by 실비단안개 2009.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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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인줄 알았는데 3년전이었군요.

곡성의 누리와 수인이가 진해에 왔습니다.

 

한누리는 박규화 언니의 고명딸이며, 배수인은 누리보다 한 살 어리며, 박규화 언니의 선교원 제자로, 3년전에도 동행이었으며, 지난 가을 하동 악양에서도 우리는 함께 만났었기에 낯설지않은 사이입니다.

2년전인가, 석곡초등학교를 급방문하여 만나기도 했었네요.

한누리는 실비단안개가 즐겨찾는 가장 어린 블로그(거)입니다. 

 

누리는 초등학교 6학년이며 수인이는 5학년입니다. 그런데 처음 아이들을 만나는 이라면 수인이가 언니라고 착각할만큼 수인이가 키가 훌쩍 큽니다.

 

         ▲ 006년 9월 웅천찻사발에서                                       ▲ 009년 8월 탑산 전망대에서 

 

오전 6시 30분 곡성의 석곡을 출발한 이들은 오전 10시에 우리집에 도착했으며, 잠시 숨고르기를 한 후 김달진문학관으로 갔습니다. 문학관은 3년전 그때도 방문했지만, 규화언니가 문학관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인데, 사실 나도 문학관의 김달진문학제 관계로 새로운 풍경이 필요했기에 잘됐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학예사님께서는 문학제 관계로 출근이 늦었기에 집사님과 함께 일을 하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문학관 방문 후 생가로 갔습니다. 그 사이 열무가 새로 파종되어 있었는데, 문학제때 꽃을 피우면 좋겠습니다.

 

* 김달진문학관 : http://www.daljin.or.kr/

 

 

아이들은 그 시절을 모르지만 타임머신을 탄 듯 한 시간입니다. 김씨박물관 자체가 고물이며, 꽁뜨에서 이름도 모르는 가수들의 LP판 표지를 구경하고, 낯선 음악을 듣고, 보통의 시골과는 다른 골목을 걸어 김씨를 만나러 갔습니다.

 

문학관 옆의 꽁뜨를  빠뜨릴수 없기에 김씨박문관에 들려 꽁뜨로 가니, 김씨는 전교조 소속의 교사가 이사를 할 집을 손보고 있었는데, 가을이면 담쟁이가 이쁜 집으로 오래전에 수아와 함께 걸어 구경을 한 옛날집이며 우물과 텃밭이 있기에 손질을 잘 하면 아주 괜찮은 풍경이 나올것 같은 집입니다.

 

요즘은 시골도 수도시설이 되어 있기에 우물의 중요성을 모르는데, 규화언니가 두레박질을 하고 아이들도 돌아가며 두레박질을 합니다. 길어올린 시원한 물에 손도 씻었습니다.

 

 

           ▲ 잠깐만 돌아보세요 - 하니, 가다가 모두 멈추었습니다.^^ 수인, 누리, 규화언니, 김씨 김현철

 

우리는 꽁뜨에서 찬음료를 대접받고 헝겊으로 만든 이쁜 가방도 선물로 받아 개나리가 필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국도 2호선을 타고 진해 시내로 갔습니다.

* '꽁뜨(conte)'

 

 

 

시청이 가까웠을 때 비행기(순찰기)가 낮게 비행을 했습니다. 진해에는 수시로 순찰기가 비행을 하는데, 누리는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답니다.

규화언니가, "전투기는 전투시에 전사를 할 수 있다"고 하니, 누리 왈, "이 한 목숨 바쳐 나라를 구할 수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당찬 소녀입니다. 그리고 해군을 제대한 친척이야기를 하며, 해군사관학교에 관심을 가지며 해사생이 되고 싶답니다.

해군사관학교가 진해에 있다고 하니 해군사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군항제 기간이 아니면 개방이 되지않기에 지난핸가, 문학관 행사에서 해사 교수님의 명함을 받은 생각이 났지만, 개인적인 일로 해사를 방문하고 싶다고 연락을 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진해시청, 경화역을 지나고 이쁜집 진해역을 지나 북원로타리를 돌아 중원로타리쪽의 흑백앞에 주차를 했습니다.

흑백의 경아씨와는 어제 약속을 해 두었기에 경아씨가 레슨 시간을 조정해 두었습니다.

우리는 잠시 인사를 나누고 선학곰탕집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선학곰탕집은 갈때마다 헤매는 집입니다. 진해 중원로타리 근처의 도로가 모두 비슷하기에 근처의 다른 점포 간판을 확인해야 찾아가는 집입니다.

선학곰탕집 역시 비켜갈 수 없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소사마을과 김씨박물관, 수리중인 옛집과 비슷한 분위기인데, 선학곰탕은 일식이란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전화기와 멈춘듯한 시계, 일본식 소품 등.

 

* 선학 곰탕집

 

           ▲ 수인, 누리, 박규화 언니, 베슈타인 경아

 

식사 후 우리는 선학의 뜰을 거닐었습니다. 거닐었다기보다는 조사과에서 나간 사람마냥 구석구석 조사를 하듯이 살폈습니다. 사진으로 모두 담을 수는 없었지만, 이질풀이 발끝마다 피었으며, 꽃을 떨군 동백이 열매를 맺었고, 뜰이 숲이었기에 모기가 많아 수인이와 나는 모기에게 여러방 물렸습니다.

 

 

경아씨가 커피를 내린다고 먼저 가고 우리는 천천히 걸어 다시 흑백으로 갔습니다. 규화 언니의 신청곡이 흐르고 경아씨가 커피를 내려 줍니다. 경아씨는 아버지 10주기 추모연주회와 독주회를 앞두었으며, 입시생의 레슨 등으로 지금 여유가 없는데, 모쪼록 팔 치료 잘 받고 모든 연주회를 빛나게 마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 때문에 미루어 둔 레슨 시간이 다가오기에 우리는 일어나 모노레일카를 타고 탑산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애물단지 모노레일카가 빛나는 순간입니다.^^

 

           ▲ 흑백 앞에서 누리와 수인

 

* 진해의 흑백다방은 전설이었나 …

 

수인이는 고소공포증이 있기에 모노레일카에서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는데, 한누리양은 신이 났습니다. 수인이가 휴대폰을 누리에게 주며 바다를 담아 달라고 하고, 누리와 언니는 모녀 아니랄까봐 함께 포즈를 취합니다.

 

탑산의 일년계단 마지막 계단에는 365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일년 계단의 마지막 계단임을 알리는 숫자입니다.

 

우리 걸어서 온 거야~

누리와 수인이가 계단에 앉아 숨을 몰아쉽니다.

깜찍한 놈들 -

 

 

탑산의 8층 전망대에서 우리는 날아 진해만으로 떨어질뻔 했습니다. 규화언니는 진짜 날아갈까봐 얼른 내려가자고 합니다. 하하

우리는 다시 2층의 진해박물관으로 올라 이승만대통령의 별장을 영상으로 구경하고 선사시대 유물 등을 봤습니다.

그동안 몇 번 갔지만 아는 것이겠거니하며 스쳤던 도요지와 왜성에 관해 자세히 읽고 자료용으로 사진으로 담아왔습니다.

누리와 수인이 덕분입니다

 

제황산 공원

제황산은 마치 부엉이가 앉은 것과 같다하여 부엉산이라 하였고, 봉우리는 두엄봉으로 불리었으나, 해방후 제황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해발 90m 산 정상에는 1927년 일본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이긴 노일전쟁의 전승기념탑을 전함의 마스터를 본따 세웠으나 해방 후 이를 헐고 1967년에 해군군함을 상징하는 탑을 건립하였다.
 
진해탑은 높이 28m의 9층탑이며, 연건평 928평으로 진해시가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꼭대기에 오르는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다.
중원로타리 방향에서 탑산에 오르는 계단이 365개로 되어 있어 1년계단이라고도 한다.
탑내부 1,2층에는 진해시에서 발굴된 각종유물과 문화재등을 전시한 시립박물관이 있어 진해의 문화유물을 감상할 수 있고 공원동편에는 광장이 있다. 

 

 

사적 291호인 舊 진해우체국을 한바퀴 돌고 우리는 속천을 시작으로 해안도로를 타기로 했습니다. 수인이가 바다를 많이 좋아하였으며, 3년전에 시간이 짧아 아쉬웠던  해양공원을 다시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 舊 진해우체국(문화재청사)  

 

 

우리는 속천부두를 시작으로 진해루에서 잠시 멈추었습니다. 진해루 역시 탑산의 전망대만큼 바람이 많았기에 나들이객이 많았으며, 많은 갈매기들도 나들이를 나왔더군요. 커다란 화분이 배 모양이며, 버스 정류소와 공공화장실건물도 배 모양이었기에 규화언니는, 진해는 모두 배네 - 하였습니다.^^

 

* 진해 해안도로(황포돛대 노래비 - 행암)

 

며칠전에 들린 행암포구의 전망 테크를 걸어 물이 빠졌기에 바닷가로 내려가니 아주머니 한 분이 고동을 따고 있었으며, 낚시꾼들은 세상을 접고 선상낚시를 하더군요. 다시 차를 움직여 지난해 잠시 들린 합계로 갔습니다. 어쩌면 이 길이 아닐 수 있다고 했지만 규화언니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합계는 개인피서지마냥 아주 작은 마을인데, 누리와 수인이가 빈배를 당겨봅니다.

"누리야, 배가 부딪치면 안돼~"

아이들의 귀에 엄마의 주의가 들릴리가 없습니다. 규화언니도 방파제에 앉아 먼 바다를 봅니다.

 

 

합계, 수치, 죽곡을 달려 해양공원으로 갔습니다. 주차장이 새로 단장이 되었으며, 3년전에는 밖에 주차를 했는데, 어제는 당당하게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차도 바다가 보이는 곳에 주차를 하자네요.

 

아이들과 헤어졌습니다. 우리는 군함 위에서 따로 또 같이 둘러보고 예전의 팥빙수 생각이 나서 선상카페로 가니, 카페는 군함휴게소가 되어 자판기만 있었지만, 노천 카페의 역할은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팥빙수 생각이 날텐데 - 하는데, 아이들이 선상으로 오른 모습이 보였습니다.

 

점심식사를 한지 서너시간이 되었나 -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여러곳을 다녔기에 배가 고팠습니다. 아이들도 배가 고프답니다.^^

해양공원의 2층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진해의 먹을거리다 하는 건 사실 없었으며, 누리는 고기종류를 먹고 수인이와 나는 김치우동을 먹었습니다.

물론 모두 나누어 먹었지요.

깡마른 수인이가 우동을 먹는 모습입니다.

어떤 여자처럼 암팡지게 먹습니다.^^

 

 

 

 해양공원에서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아이들은 그래도 못본게 있답니다. 수인이가 군함에서 컴퓨터를 할 때 누리가 본 풍경인데, 해군의 숙소로 시간이 촉박하여 다른 전시관을 보자고 했습니다.

 

전시관 3층인가 - 바다와 무관한 동물의 박제가 있더군요. 의외로 아이들이 좋아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과 악수를 했으니 이제 우리는 삼포로 갑니다.

 

 

 

 

* 숨어 있는 포구 삼포

 

삼포로 가는 길과 다른 노래 한 곡을 듣는 사이 누리는 복숭아를 먹고 수인이는 꽃댕강나무의 향기를 맡습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해가 살풋 나옵니다.

 

누리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오래전에 섬마을 선생님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규화언니에게 어릴적 추억을 떠올려라고 수도분교로 갔습니다.

수도는 섬 입구에서 주차비를 받는데 어제는 징수원이 없었기에 우리는 여유롭게 주차장에 주차를 했습니다.

다른 날 같았으며, 수도분교에 잠시 다녀올게요 - 하며 아주 잠시 주차를 하거나 마을 밖의 매립지 길에 주차를 했거든요.

 

아이들이 신나게 그네를 탔습니다. 우리만 있는 작은 학교, 누리가 교장선생님이 되고 언니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 수도분교

 

 

뭐 하니, 가자~

아이들은 모래위에 방명록을 씁니다. 수인이가 맨발입니다. 조금 있으면 해넘이가 아름답지만 누리 일행은 갈길이 멀기에 수도를 벗어나 흰돌메공원의 남명휴게소에 잠시 들렸습니다.

 

 

 

이 얼라들을 데꼬 먼길을 또 어떻게 가실까 - 그렇다고 동행을 할 수도 없고 -

우리집앞에 나를 내려주고 언니는 얼라들을 데꼬 떠났습니다. 김양이 안내를 잘 해 주겠지만 길이 너무 멉니다.

 

아기아빠가 묻습니다.(전에 함평에서 만나 순천으로 동행을 했기에 언니를 압니다.)

잘 갔는기요?

내가 집에 왔을 때 6시 40분이었으니 아마 지금 길 위에 있을걸요… 전에는 장유로 왔었는데, 이번엔 가락으로 왔기에 3시간 30분이나 걸렸네 - 얼라들 데꼬 밤길에 우짜까 -

 

규화언니, 한누리, 배수인 -

먼길 고생많았고, 고맙습니다.

석곡 식구들 모두 건강하시길 바라고요, 언제나 열려있는 길이니 주저마시고 또 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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