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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돌섬 망산도, 강탈당한 기분이다

by 실비단안개 2009.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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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원에 가면  가끔 망산도를 찾습니다.

망산도는 섬이지만 뭍과 몇 미터 거리이기에 배를 타지않아도 되기에 쉬이 찾을 수 있는 섬으로 가락국 수로왕의 비 허황후가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건너와서 내린 돌섬입니다.

망산도와 뗄 수 없는 문화재로 유주암과 유주비각이 있는데, 좀 길지만 이 페이지에 모두 기록합니다.

 

진해시청 홈페이지에 기록 된 설명 부분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망산도/유주암/유주비각

 

망산도, 유주암, 유주비각의 유래를 살펴보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되어 있는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아유타국의 허황옥공주와 관련되어 있다.

 

가락국기의 내용을 보면, 건무 24년 무신년 7월 27일에 구간등이 아뢰기를 대왕께서 강림하신 이래로 좋은 배필을 얻지 못하시었으니 신등이 처녀중에 절묘한 자를 궁중에 뽑아 들여 배필을 삼으소서 라고 하니 왕께서 이르기를 내가 여기 내려온 것은 하늘의 뜻이요. 나의 배필로 왕비가 되는것 또한 하늘의 뜻이니 그대들은 염려하지 말라 이르고는 드디어 유천간에서 명하여 경주와 준마를 가지고 망산도에 가서 기다리게 하는 한편 신귀간에게 명하여 승점으로 가게 하였다. 홀연히 바다 남서쪽에서 붉은색의 돛을 달고 붉은 기를 휘날리며 북쪽을 향해서 오는 배가 있었다.

 

유천등이 먼저 망산도에서 횃불을 드니 앞을 다투어 하륙하려 하였다. 신귀가 바라보고는 대궐로 달려와서 왕께 아뢰니 왕이 듣고 기뻐하였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하여 용원의 부인당을 공주가 도래한 곳으로, 말무섬을 유천간이 기다린 망산도로, 쪽박섬에서 공주가 타고온 돌배가 뒤집힌 것으로 보아 이를 기념하는 유주각을 세웠다. 유주각은 융희(융희(隆熙)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의 연호(1907~1910), 1909년에 세움.) 2년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로 건축하였다. 비각안의 유주비는 비신이 높이 1.75M, 폭 0.765M, 두께 0.35M의 석비로 '대가락국 태조왕비 보주태후허씨유주지지'라 새겼다.(출처 : 진해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 http://tour.jinhae.go.kr/02heritage/02_06.asp)

 

 

망산도

지난달 하순 용원에 갔을 때 역시 망산도를 찾았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안내문이기에 그동안 읽지않다가 그날은 시간이 넉넉하여 안내판을 읽는 데, 경남 지방기념물이 아닌 부산 지방기념물로 등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녹산공단이 만들어지면서 용원 앞바다가 부산시 강서구에 편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도로와 겨우 3~4m정도의 거리인 섬이 바다에 있다는 이유로 경남 문화재가 부산 문화재가 된 겁니다.

 

        ▲ 망산도 표지석 앞면 - 유천간이 허황옥을 기다린 자리가 아닐까?

 

진해시 홈페이지를 찾아 '망산도'를 확인을 하니, 현재까지 진해시 홈페이지에 있으며, 부산 강서구 홈페이지에는 등록이 되어 있지않았습니다. 해서 진해시청 홈페이지에 답글을 요하는 질문을 올렸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답변이 오르지않고 있습니다.

 

용원은 우리 지역과 마찬가지로 웅동이며, 창원시가 생기면서 함께 의창군이 되었고, 후에 진해시에 편입이 되어 웅동면은 웅동 1, 2동으로 나누어졌습니다. 문화재 안내문에 주소는 달랐겠지만 그동안은 경남 지방문화재였는데, 이제 부산 지방문화재가 된 겁니다.

 

지역민이라고 그 지역의 모든것을 아는 것은 아닐겁니다.

그래도 지역에 무관심했던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일주일 동안 용원의 망산도를 세 번 찾아 용원 출생의 어르신들을 상대로 망산도, 유주암, 유주비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3 번을 다니며 담은 풍경이기에 이니셜의 달이 8, 9월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 현재 안내문 :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57호 망산도 유주암

 

아래는 2005년 12월 초에 담은 안내문인데, 경남 지방기념물 제 89호로 되어 있으며, 유주비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현재 진해시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경남 도지정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 유주정이 보이게 담은 망산도(망산도의 뒷모습) - 바다는 부산시며 뭍(풍경에 보이는 건물들)은 진해시입니다.

 

        ▲ 유주정에서 담은 망산도와 녹산공단

 

망산도의 바위는 대부분 거북의 등처럼 갈라져 있으며, 고목은 뿌리는 연리근처럼 연결되어 드러나 있는데, 바위인지 나무인지 구분이 되지않을 정도로 바위와 나무 모두가 수수께끼같습니다.

 

        ▲ 망산도와 주위에 흩어져있는 바위는 대부분 거북 등처럼 갈라져 있습니다.

 

         ▲ 고목이 몇 그루 있는데 뿌리는 하나로 연결된 듯 하며, 땅위로 드러나 있고, 고목을 누르는 바위와 함께 화석이 된 듯 하여 바위인지 나무기둥인지 분간이 되지않는 고목이 있습니다.

 

        ▲ 붉은 열매가 달린 나무는 모감주나무인데, 붉은풍선안에 씨앗이 있으며, 가운데 넓은 터는 오래전에 제사를 지낸 터라고 합니다. 

 

검색을 해 보면 알겠지만, 망산도에 서식하는 식물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데, 전문가와 관계처에서 망산도에 대해 정리를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망산도는 현재 전혀 관리가 되지않는 듯 한데, 생활쓰레기와 음식물 찌꺼기 등이 버려져 있기에 쥐의 서식처였습니다.

 

유주암

망산도와 유주암은 문화재 지정 번호가 같으니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57호로, 망산도에서 70여미터 떨어진 바다 가운데 있는데, 허황옥 일행을 내려 준 돌배가 뒤집혀 바위가 디었다는 유주암입니다.

망산도에서 녹산공단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보입니다.

 

 

        ▲ 유주암

 

유주비각

유주비각은 망산도에서 남서 방향으로 약 100여 미터 떨어진 주택가에 있는데, 용원초등학교 근처며, 용원노인회관이 있는 주택가에 외로이 있습니다. 허황후 일행이 이곳으로 도래한 것을 기념하여 허황후의 후손들이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하여 세운 것으로, 안내문에는 허황후가 이 곳으로 와 가락국의 왕비가 되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 유주비각

 

유주비각은 융희(융희(隆熙)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의 연호(1907~1910), 1909년에 세움.) 2년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로 건축하였으며, 비각안의 유주비는 비신이 높이 1.75M, 폭 0.765M, 두께 0.35M의 석비로 대가락국 태조왕비 보주태후 허씨 유주지지라 새겼습니다.

 

* 수로왕비와 파사석탑, 구지봉 이야기 : http://blog.daum.net/mylovemay/9256800

 

 

                           ▲ 유주비 : 비각 안의 유주비는 비신과 높이 1.75m. 폭 0.765m.두께 0.35m의 석비로 '대가락국 태조왕비 보주태후 허씨 유주지지(大駕洛國 太祖王妃 普州太后 許氏 維舟之地)'라 새겨져 있습니다.

 

        ▲ 유주각 보호문의 신어문양 : 바깥 원에 16 호국나한상(護國羅漢像)을 상징하는 톱니바퀴 모양에 햇살무늬가 있고 그 안에 두 마리의 신어(神魚)가 여의주를 마주하고 있으며, 신어(神魚)는 수로왕릉 숭신전 납릉 정문에 장식판 의장(意匠)에 남방식 불탑을 그린 양편에 마주보는 두 마리의 물고기인데, 이러한 장식은 허황후의 본국인 아유타국 전승의 신어임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두 마리의 신어는 허황후의 오라비 장유화상에 의해 창건 된 은하사와 장유사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인류학자 김병모(金秉模) 선생이 쓴 <김수로 왕비 허황옥: 쌍어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가라'는 '물고기, 물'이라는 뜻이라 하며,  김 선생은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조상인 김수로왕과 허황옥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기 위하여 전설상의 아유타국을 찾아 세계 지도를 뒤져 '아유타, 아유다, 아요디아, 어유타, 어유다' 등으로 표기된 곳들을 탐사했는데, 놀랍게도 '아유타'라는 지역마다 두 마리의 물고기 무늬를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김해에 있는 김수로 왕의 능에는 두 마리 물고기가 조각되어 있고, 그 뒤 편 신어산의 '신어사(神魚寺)'에서도 두 마리의 물고기 무늬가 있으며, 허황옥이 왔다고 전하는 인도의 아유타, 태국의 아유타, 중국 양자강 유역의 '보주(普州: 지금의 사천성 안악현: 허 황후는 보주태후로 기록되어 있는데, 김 교수가 가보니, 이곳엔 지금도 허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고 한다.)'에서도 두 마리의 물고기 무늬를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김 선생은 언어학자 강길운(姜吉云) 교수의 '가야어와 드라비다어의 비교'라는 논문에서 '가락(Karak)'은 옛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뜻하는 것이고, '가야(Kaya)'는 지금의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라는 뜻을 알았다고 합니다.(참고 : http://www.newstown.co.kr/newsbuilder/service/article/mess_main.asp?P_Index=58138)

 

장유사는 불모산 장유 계곡 위에 있으며, 절 뒤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31호인 장유화상의 사리탑이 있습니다.

어떤 자료에는 허황후와 김수로왕이 첫날밤을 보낸 곳이라고 하는데, 가락국(駕洛國) 질지왕이 동왕 2년(452)에 시조비 허왕후(許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왕후사(王后寺)를 세웠으며, 5백년 뒤 그 자리에 창건된 절이 장유사라는 설과 가락국 수로왕 7년(48)에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이자 승려인 장유(長遊)가 허왕후를 따라 이 곳에 와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두 설로 보아 허황후가 첫날밤을 보낸 장소라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 보수를 하여 현재는 완공이 된 상태지만, 장유사로 오르는 길은 승용차로 오르기에 쉬운 길이 아니지만, 불모산 등산객에게는 익은 사찰입니다. 은하사는 김해시내에 있습니다.

 

유주각은 암반 아래에 건립이 되어 있는데, 높은 담장과 굳게 닫힌 문으로 출입이 불가능한데, 오래전에는 담장이 없었기에 마을 어린이들(현재 60세 이상)이 유주각 아래에서 놀았으며, 유주각 담장 양옆으로 모과나무가 있는데, 55년 전에 마을 어린이가 학교에서 얻어 심은 묘목이 자란 것이랍니다.(우리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도 묘목을 나눠주었음)

 

유주각 관리는 1년에 한 두차례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 종친에서 방문하여 관리를 하지만, 제사나 그외 다른 형식은 취하지않는다고 합니다. 마을 주민들의 바람은 주변의 수선스런 식물을 정리하고 담장을 없애거나 낮춘다면 지나는 사람들에게 잘 띄지않을까 하며, 다순 기념물로 전락한 유주각을 아쉬워 했습니다.

 

망산도에 내린 허황후 일행은 보개(배)산(용원 골프장이 있는 산)을 넘어 김해 명월산 계곡을 걸어 김해의 신어산 혹은 궁궐로 갔을 겁니다. 김해 명월산 계곡에는 흥국사가 있는데, 흥국사 아래의 마을 길 이름이 '허황후길'입니다. 

 

         ▲ 명월산 계곡과 흥국사 대웅전(2009년 4월)

 

         ▲ 김수로왕릉과 허황후릉(2006년 7월)

 

수로왕릉과는 달리 허황후릉은 곡장(곡담)이 없는데, 왕과 비의 차이인지 자연의 지형 훼손 예방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뉴욕에서 온 남자 도쿄에서 온 여자(씨네21)'에 보면, 78페이지에 조선 경종과 선의왕후 릉인 '의릉'도 경종의 능침에만 곡장이 둘러져 있다고 했는데, 이 책에서는 지형을 훼손하지 않으려한 우리 선조의 자연관이 아닐까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 피라밋 돌무덤 : 가락국 마지막왕 구형왕릉(仇衡王陵) 2007-05-07

 

요즘 교육은 유치원에서 이루어진다지만 우리가 어릴 때는 밥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길을 가다 돌맹이를 차면 '아야'하며 돌아보는 이가 김씨라고 할 만큼 우리나라 최대의 성씨가 김씨인데, 제가 김가며,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물 때, 방위, 생활예절과 함께 자주 들려 준 이야기가 허황후 이야기였습니다.

당시는 어린 나이였기에 무심코 들어 넘겼는데, 우리 지역을 중심으로 다니다보니 알게 모르게 허황후와 관련 된 곳을 많이 다녔습니다.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성이 다르지만 본이 같기에 혼인이 불가하다고 했는데, 법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합니다. 제가 30년전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첫사랑과 헤어지지 않았을텐데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행정구역 개편과 통합은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것이고, 현재 마산, 창원, 진해, 함안의 통합이 진행 중인데, 망산도 등을 둘러보며, 창원시가 탄생할 때, 당시 현재의 웅동 1,2동(웅동면)과 가덕도(창원군 천가면)를 신생도시 창원시가 안았더라면 가덕도와 웅동이 신항의 몸살에서 자유로울 것이며, 경상남도에도 훨씬 이익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망산도가 있는 송정은 당시 김해군이었으며, 창원시가 생기면서 창원시내를 제외한 창원군 지역이 의창군이 되었는데, 의창군은 결국 면 단위로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에 편입이 된 후 없어졌습니다.

관계자들의 깊은 고민없는 지역구 개편과 통합으로 문화재는 부평초같고 주민이 겪는 정신적 고통 또한 생각보다 깊은 것 같습니다.

입양을 하여 호적에 올린다고 진정한 내 자식이 되는 게 아닙니다. 사랑과 관심으로 마음으로 안아야 내 자식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지역의 경우 양자보다 못한 (외관상 자식이지만, 속으로는 아주 귀찮은)의붓자식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는데, 만약 4개 지역이 통합이 된다면 우리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며, 통합 이야기가 나오니 불안하며 불편합니다.

 

 

"창원·진해 통합, 속보이는 정치적 야합"

  

바쁜 시장님에게 답장 받다.

진해시청에서 문자 알림이 왔습니다.

시장에게 바란다 답변이 완료되었다고요. 일주일만에 답을 받았군요.^^

 

  010-9661-3071 2009-09-01 오후 4:10:16
망산도에 대하여

시정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용원의 망산도에 대하여 궁금해서 올립니다.
망산도는 경남도지정 문화재였는데, 2007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산시 소속 문화재가 되었더군요.
그런데 현재, 진해시 홈페이지에는 망산도 소개가 있는데, 부산 강서구청 홈페이지에는 망산도 소개가 없었습니다.

- 망산도는 바다에 위치하는데, 매립이 되지 않아도 행정구역개편으로 부산시 소속이 될 수 있는지요?

- 우리가 개인적으로 무엇인가를 주고 받을 때는 금전이나 기타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는데, 문화재인 경우에는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궁금합니다.

성실한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작성일
2009-09-08 오후 2:48:07
망산도에 대하여
우리시 홈페이지를 통해 시정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하께서 문의하신 사항에 대하여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행정구역이란 국가가 원활하게 행정을 수행하기 위해
만든 지역구분을 말하며, 이것은 육지 뿐 아니라 공유수면까지 적용이 됩니다. 또한 망산도는 진해시 용원동
산222번지(현재는
부산시 강서구 송정동 산188번지)로 위치가 바다가 아닙니다.


망산도는 국가소유(재정경제부)이며, 행정구역이 개편됨에 따라 2008년 4월 2일 부산시 기념물 제57호로 부산시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진해시에 남겨진 “유주비각”만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89호로 되어있습니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문화재의 관리권이 해당 지방자치단체로 이동을 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문화유적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해시장 이재복 드림

(문의처 : 문화관광과 문화예술담당 담당자 이병선 ☎ 548-4064)

 

최종 수정 - 9월 8일 오후 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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