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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자꾸 보고싶은 눈 내린 고향풍경

by 실비단안개 2010.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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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눈이 내렸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오후 2시까지 미친듯이 다녔습니다.

언제 매화에 핀 눈꽃을 만날 것이며, 생강나무, 동백에 핀 눈꽃을 볼 수 있겠습니까.

 

스치듯이 한 약속, '눈 내리면 김달진 문학관 가야지'를 지키기 위하여 김달진문학관도 다녀왔습니다.

마침 장날이라 눈 내린날의 시장풍경도 만났습니다.

환장하게 좋더군요.

 

어린시절에는 이곳에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장독대에 눈이 소복히 쌓여있었으며, 눈이 내린 바닷가(우리집앞이 바로 바다^^)를 걷기도 했습니다.

눈은 때묻지않은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지 어른이 되니 그런 눈이 내리지 않아, 어릴때의 고향은 동화의 한장면으로 기억될 정도였습니다.

밤새 내려 쌓인 눈 위로 눈이 계속 내렸습니다.

 

식구들이 출근을 한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마을을 지나 들로 갔습니다.

우리 동네가 그림보다 아름답습니다.

 

제법 큰개가 카메라질이 낯선지 자꾸 봤습니다.

내가 보면 딴청을 피우고, 고개를 돌리면 울에 발을 걸쳐 쳐다보곤 하기에 조심스레 건진 풍경입니다.

 

눈은 사철나무잎을 모양 그대로 드러나게 했으며, 매화는 하얀모자를 쓴 듯 했습니다. 

언 꽃잎을 따서 먹었습니다.

매화향 대신 풋내가 살짝 났습니다만, 매화밭을 걸으니 매화향이 솔솔 날아 들었습니다. 매화 향기는 은은합니다.

 

하얀눈은 돌담장에도 쌓여 한폭의 그림을 만듭니다. 참 오랜만에 만나는 눈 쌓인 돌담장입니다. 

  

아무도 건너지 않았기에 나도 건너지 않았습니다.

다음 사람도 하얀 나무다리를 건너지 못했을 겁니다. 

호수같은 바다를 안은 마을이 보입니다.  

 동네 삼춘은 먼길을 걸어 닭모이를 주러 가고, 나는 오른쪽길을 걸어 유자밭으로 갔습니다.

고요한 유자밭을 깡충거릴 수가 없어서 주변만 맴돌았습니다.

유자나무 잎이 겨울에도 푸르다는 걸 알았는데, 새삼 아~ 했습니다. 눈이 참 많이 내렸습니다.

대나무잎에도 눈이 쌓였습니다.

후두둑 무너질까봐 대숲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역시 주변만 걸었습니다.

혼자이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내 발자국 위를 갔다왔다했습니다.

눈속에 웅크리고 앉아 뜨거운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후후 불며 마시고 싶었습니다만, 나는 아주 간단하게 우산과 카메라만 들고 갔습니다.

산속 벤치에도 눈이 소복히 쌓였으며, 산인들이 쌓은 작은 돌탑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비탈진 산길이라 미끄러웠기에 간혹 우산은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카메라창으로 만났을 때는 새의 눈이 또롱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아닙니다. 사진은 실제 풍경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다는 걸 또 느낍니다.

우리가 조심스레 쫒고 쫒기는 데, 한무리의 친구들이 푸드득 날았습니다.

먹이라도 조금 준비해 갔어야 했는데 잘못했습니다.

그나마 숲에 열매와 씨앗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눈이 내려 낯설어졌지만 우리 밭이 보입니다.

개울을 따라 집으로 갑니다. 

귀한 아이들이 눈과 함께 내렸는지 운동장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눈싸움을 합니다. 

참 오랜만에 만나는 그림입니다.^^ 

 

12시 마을버스를 놓쳤는지 눈이 내려 운행을 않는지 시간이 지나도 버스가 보이지않기에 택시로 김달진 문학관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풍경을 만났습니다.

진해 부산간 시외버스가 우리 동네로 다니는 겁니다.

뒤에 들은 이야긴데, 차가 고개를 넘지 못해 해안도로로 다녔다네요.

서울 기사님과 강원도 기사님들은 대단하셔요.

 

또 들은 이야긴데, 아침에 큰아이가 출근하는 시간에 105번 버스에 승객이 만원이라 다음 버스를 타라고 했다네요.

그때 낯선 남자가 버스정류소에서 "롯데마트 방향 승객이 있으면 타세요"하여 우리 아이를 비롯 학생2명 총 4명을 태워 우리집 앞으로 하여 시내로 갔답니다.

고마운 분을 만나 좋은 길을 택했는데도, 20여분의 거리가 2시간이 걸렸기에 아이가 지각을 했답니다.

버스는 stx까지 3시간 걸렸다고 하더군요. 

윗지방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오지 냄새가 나서 좋은 동네입니다.

 

김달진 시인의 생가입니다.

얼마전에 지붕을 다시 올렸는데 그동안 방문을 못했기에 새지붕은 처음입니다.

초가위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참 좋습니다.^^

 

학예사님과 김씨 아저씨께서 그렇잖아도 전화를 할까 했답니다. 

 

눈 / 김달진

 

하이얗게 쌓인 눈 위에

빨간 피 한 방울 떨어뜨려 보고 싶다

―속속들이 스미어드는 마음이 보고 싶다.

 

시집<청시(靑枾)>
 

장독대에 쌓인 눈이 어린 시절을 그립게 했습니다. 할머니도 그립고. 

생가의 텃밭에도 동양화 한폭이 그려져 있습니다.

커피를 타주셨지만 카메라질을 하느라 마루에 두었더니 학예사님께서 계속 들고 다녔습니다.

이래서 문학관이 좋은가 봅니다.

 

문학관에서 몰래 돌아서면 김씨 아저씨께서 서운해 하실 것 같아 김씨 아저씨댁으로 갔습니다.

커피를 마셨다고 하니 얼라도 아닌데 코코아를 주었습니다.

따듯한 마음이 괘씸하여 마지막 한방울까지 알뜰하게 마셔주었습니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풀꽃과 시장 풍경을 만나야 하기에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 보리밭처럼 보이는 정구지밭

 

아침에 해가 쨍났더라면 봄까치꽃이 꽃잎을 활짝 열었을 텐데, 오전까지 눈이 내렸기에 오후가 되어도 봄까치꽃이 꽃잎을 열지 못했지만, 눈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봄까치꽃이 더 없이 귀한 풍경이 되어 주었으며, 광대나물은 꽃잎을 피웠습니다. 고향의 봄입니다.

 

 

이미 파장시간입니다.

눈사람은 파장시간까지 우직하게 장터를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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