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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벚꽃 · 웅천요(熊川窯)

손원일 제독 동상, 해군사관학교, 진해탑

by 실비단안개 2010.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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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진해를 왕복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진해 시내로 갔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시외버스는 마천에 정차를 하지않거나 많은 차량으로 우회하기를 했는데, 천안함 침몰로 군항제 벚꽃 나들이객이 표가나게 줄긴 준 모양입니다.

 

시내에 들어서자 기사님께서 안내방송을 했으며, 중앙시장이 가까워오니, 여좌천과 통제부(해군기지사령부), 탑산, 해군사관학교 등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진해를 찾은 나들이객들은 여좌천으로 가기 위해 중앙시장(육대앞)에서 하차를 했으며, 시외버스는 중원로타리에 하차를 않고 탑산 아래쪽에 임시정류소를 이용한다는 안내도 했습니다.

 

시외버스 기사님이 관광버스 기사님같아 좋았습니다.

 

암튼 그렇게 하여 다화방으로 가서, 며칠전 미국에 거주하는 교민이 친구를 찾아 달라고 한 일을 해결하여, 그 친구분을 만나 모습을 담아 미국에 거주하는 교민에게 메일로 보냈으며, 잘 받았다는 답장도 왔습니다.

 

어제, 중앙동 주민자치위원장님의 초대로 태백동 여성회에서 이웃을 위한 기금마련 현장인 안민고개로 갔습니다.

안민고개의 벚꽃은 아래에서 볼 때와는 달리 이미 70%이상 피었으며, 나들이객 또한 많았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일방통행이기에 안민고개를 이용하여 창원에서 진해로 통행이 불가하니 이 글을 보는 분들은 참고해 주시고, 안민고개의 벚꽃을 즐기기에 무리가 없으니 혼잡하니 조심하여 즐기십시오.


기지사령부 영내엔 곳곳에 안내를 하는 병사가 있으며, 사진 촬영 또한 허락하에 담아야 하는데, 사령관 본청 입구에도 안내 병사가 있었으며, 본청 출입은 관계자외에는 불가하지만, 본청과 손원일 제독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은 찍을 수 있었습니다.

 

고 손원일 제독은 해군을 창설하신 분으로 그 분의 삶은 해군의 역사이며,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의 할 일이 적혀 있는 문무백관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제독은 음력 1909년 5월 5일 단오날에 평양에서 멀지않은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 오홍리에서 목사이신 아버지 손정도씨와 어머니 박신일씨의 장남으로 태어 났습니다. 이 후 아버지의 항일활동으로 인한 중국 망명으로, 손제독은 부친을 따라 중국에서 25년간 생활을 하였으며, 그 곳에서 성장, 공부 하면서도 나라없는 설움을 통감하고 독립국가 수호에 해군력이 있어야 함을 깨닫고, 광복의 기쁨과 혼란의 와중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던 해상수호에 관심을 갖으시어 1945년 11월 11일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삼가 이몸을 바치나이다"라는 표어로 해군을 창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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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일(1909. 6. 22 평남 강서~1980. 2. 15 서울.)

 

초대 해군 참모총장과 독일(옛 서독) 대사를 역임한 군인·외교관.
일제강점기 상하이 임시정부의 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의 독립운동으로 1921년 만주로 건너간 손원일은 1925년 원광중학교를 졸업하고 상하이로 유학을 떠났다. 의과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하던 그는 어느 날 제복을 입은 해군의 모습을 보고 진로를 바꾸어, 1927년 상하이 중앙대학교 항해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3년 간 외국 선박해사에서 항해사로 근무하다가, 1934년 개성에 있는 누나를 방문하기 위해 잠시 귀국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에 의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상하이 임시정부 비밀 연락원의 임무를 띠고 잠입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2개월 간 혹독하게 고문을 당한 뒤 무혐의로 풀려난 손원일은 다시 중국으로 떠났고, 동화양행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광복과 함께 귀국한 손원일은 혼란한 사회 상황에서도 해군 창설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하였다. 먼저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을 규합하고 미 군정청과 협의한 끝에 1945년 11월 11일 한국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을 창설하였다. 해방병단은 1948년 9월 대한민국 해군으로 정식 발족되었고, 같은 해 12월에 손원일은 초대 해군참모총장의 지위에 올랐다. 손원일은 인재양성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1946년 1월 지금의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군병학교를 창설하여 초대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직접 생도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또 해군 창설 초기 1척의 군함도 보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과 일본에 협상을 시도하여 1948년까지 총 37척의 군함을 인수하였고, 이후 함정건조기금을 모금하여 1949년 10월에는 한국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을 도입하였다.

 

6·25전쟁이 발생하자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여 9·28 서울 수복작전까지 직접 전장에서 진두지휘했으며, 서울 수복작전에서는 국군 최고지휘관으로서 '국군과 유엔군은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는 포고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손원일은 전쟁 이후에도 해군력 증강을 위해 호휘함을 추가로 인수하는 한편, 군종제도의 도입, 전사 편찬실 및 해군 음악대 등을 발족하여 군의 사기 진작과 현대화된 군 조직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1953년 6월 예편 이후 제5대 국방부장관이 되었다. 재임기간중 국방력 증강뿐 아니라, 국립묘지 창설, 국방대학원 창설 등 행정면에서도 공헌하였다. 1958년 8월에 초대 주서독 대사로 임명되어 3년간 외교 일선에서 일하다가 1960년 사임한 후, 1976년까지 재향군인회, 반공연맹 등의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상훈으로는 태극 무공훈장, 자유훈장, 미국 공로훈장 등을 수상하였다.(출처 : 다음 백과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2s2671n9)

 

지난해 가을  '진해기지 사령관 본청'앞을 지나면서 언뜻 담은 손원일 제독 동상과 단풍을 기억하시겠지요?

손원일 제독 동상 뒤의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194호로 '구 진해 요항부 사령부 '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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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 진해방비대 사령부'는 1912년에 건립된 건물로, 미군정청에서 사용하다 1949년부터는 재무부 산하 관재처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해군작전사령부 사무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적벽돌 조적조로, 화강석으로 만든 창문 상하 인방석, 필라스터, 높은 페데스탈 등을 입면에 적극 사용하여 건물형태가 화려하고 조형성이 뛰어나며, 원형 또한 잘 보존되어 있는 진해 해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로 건축적, 역사적 가치가 높으며, 제196호 '舊 진해방비대 사령부 별관', 등록문화재 제194호 '舊 진해요항부 사령부'와 같은 번지에 있으며, 사령관 본청 옆의 해군병원은 등록문화재 제197호 '舊 진해요항부 병원'이었습니다.

 

등록문화재 제193호 '舊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은 군부대 외부에 있는데, 1930년대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진해 해군통제부의 병원장이 거처하던 집으로, 근대기 일식 목조가옥으로 내․외부가 비교적 잘 보존․관리되고 있어 건축적, 역사적 가치가 있으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는 음식점입니다. 

 

 

 

진해의 문화재 현황 (2006. 12. 31 현재) 

 구분  지정번호  문화재명  소재지  지정일자  보구역
 국가지정  보물 제859호  중완구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86.3.14  
 국가지정  사적 제291호  진해우체국  통신동 1  81.9.26  3,996㎡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179호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  용원동 앞바다 일대  66.7.13  
 등록문화재  제192호  진해역사(진해역)  여좌동 761  05.9.14  338.76㎡
 등록문화재  제193호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선학곰탕)
 근화동 16-1, 18  05.9.14  99.93㎡
 등록문화재  제194호  구 진해요항부 사령부  현동 33  05.9.14  1,566.38㎡
 등록문화재  제195호  구 진해방비대 사령부  현동 33  05.9.14  1,869㎡
 등록문화재  제196호  구 진해방비대
사령부 별관
 현동 33  05.9.14  1,928.33㎡
 등록문화재 제197호   구 진해요항부 병원  현동 33  05.9.14  2,387.22㎡

 

동상 주변으로 바다사진전을 하며, 나들이객들은 자유롭게 사진과 벚꽃 감상을 합니다. 

해군기지사령관 영내의 손원일 제독 동상을 여러 방향에서 담았습니다.

 

 

  

 

                 

                          ▲ 통제부에 활짝 핀 벚꽃

 

                          ▲ 안중근 의사의 爲國獻身軍人本分(나라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손원일 제독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을 방문하면 됩니다.

 

해군사관학교입니다.

해군사관학교는 버스나 승용차로 출입이 가능하며, 도보는 불가능합니다.

또 예년과는 달리 해군사관학교 내에서 식사나 음주가 불가능했습니다.

현재 진해시(군항제 행사)는 천안함 침몰 사고로 전체적으로 음주를 자제하고 있으니 협조부탁드립니다.

 

 

                          ▲ 해사졸업생 전사자 순직비

 

                          ▲  해사반도의 백두산함(PC-701) 마스트(돛대)와 필사즉생 필생즉사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난중일기 중)

 

 

                          ▲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제황산공원과 진해탑

진해탑을 소개하려니 적당한 사진이 없더군요.

하여 중원로타리 근처의 5층 건물 옥상에서 담았습니다.

 

제황산은 마치 부엉이가 앉은 것과 같다하여 부엉산이라 하였고, 봉우리는 두엄봉으로 불리었으나, 해방후 제황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해발 90m 산 정상에는 1927년 일본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이긴 노일전쟁의 전승기념탑을 전함의 마스트를 본따 세웠으나 해방 후 이를 헐고 1967년에 해군군함을 상징하는 탑을 건립하였습니다.
 
진해탑은 높이 28m의 9층탑이며, 연건평 928평으로 진해시가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꼭대기에 오르는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중원로타리 방향에서 탑산에 오르는 계단이 365개로 되어 있어 1년계단이라고도 하며, 2009년부터 모노레일카가 운행됩니다.
탑내부 1,2층에는 진해시에서 발굴된 각종유물과 문화재등을 전시한 시립박물관이 있어 진해의 문화유물을 감상할 수 있고 공원동편에는 광장이 있습니다. 

 

 

 

 

                          ▲ 중원로타리 커피마시는 집 앞에서 가로수 벚꽃나무와 진해탑

 

 

 

- 벚꽃축제 군항제 자세히 알기 : http://gunhang.jinhae.go.kr/main/(진해시 문화관광과 055 - 548 - 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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