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고향 이야기/벚꽃 · 웅천요(熊川窯)

조선웅천 차 사발과 웅천 차 사발의 특별한 만남

by 실비단안개 2010. 7. 25.
728x90

 

7월 17 최웅택의 웅천 차사발 전시 소개를 했습니다.

- 웅천 차사발이 마련한 흔치않은 자리 

 

전시장소는 진해 시민회관이며, 전시 기간은 7월 15일~25일까지입니다.

7월 15일 오후 3시쯤에 시민회관으로 가니 전시회 준비로 분주하기에 개막식을 보고 저녁 식사를 하고 가라고 하였지만, 시민회관에서 3시간을 기다리기에는 긴 시간이라 웅천도요지에서 주운 도편 감정만 하고 왔습니다.

 

7월 22일 경블공(http://cafe.daum.net/GBC119) 블로그 강좌에서 류재동 님께서 23일 오전 11시에 시민회관으로 가신다기에 시간을 맞추어 시민회관으로 갔습니다. 류재동 님은 최웅택 사기장님의 활동을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입니다.

 

 

부산에서 전시회에 오신 분들이 계시며, 뉴스메이커(http://www.newsmaker.or.kr/) 최창윤 편집국장이 인터뷰중이었지만, 우리는 합석을 하여 사기장님께서 주시는 차를 마셨습니다.

 

                          ▲ (왼쪽부터. 존칭생략)최웅택, 류재동, 관람객2, 최창윤

 

                          ▲ 이 차사발로 차를 마셨습니다.

 

전시회는 KNN특별초대전이며, 얼마전에 KNN에서 웅천요를 방송 했습니다.

- 참고 - KNN 생방송n - 진해 웅천 차사발 [ 방송보기] 

 

웅천 차 사발을 이해하려면 차 사발을 탄생시킨 웅천도요지를 알아야 합니다.

웅천 차 사발을 탄생시킨 웅천도요지는 조선시대(15~16세기)분청사기를 생산하던 곳으로 진해 웅천 보개산(점골)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500여 년전 웅천 제포항을 개항하여 일본에 수출한 차 사발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진웅천, 귀웅천, 후웅천으로 구분되며, 우리의 분청사기인 차 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가 차그릇으로 사용되면서 고려차완이라고도 불리우고 있습니다.
-  진해 웅천 보개산 점골은 현재 진해 웅동1동 두동뒷산.

 

일본 국보 26호 이도다완의 원형으로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웅천 차 사발은 임진왜란 당시 웅천사기장들이 왜군에 끌려간 이후 수세기동안 우리에게서 잊혀졌습니다. 그렇게 안타깝게 사라져가던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다시 살려낸 이가 바로 최웅택 사기장입니다.

 

웅천 보개산에 널려있던 조선사발 조각들만을 스승으로 삼은 최 사기장의 끊임없는 연구열정과 전통방식의 발 물레질만을 고집하는 최웅택 사기장님의 땀이 있었기에, 이 시대 우리는 조선사기장들의 혼이 오롯이 담겨있는 차 사발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초대전에는 최 사기장님의 땀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 50여점과 400여 년전 웅천 차 사발의 원형을 느껴볼 수 있는 파편 수십여점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중학교 동창 카페에 웅천 차사발 전시회 소식을 올렸더니, 40여 년전에 두동에서 살았던 친구가 당시를 회상하며 댓글을 주었습니다. 

전골, 우리집인디.^^

어릴적에는 도자기쪼가리 많이주웠다. 귀퉁이 조금 부서진사발은 지금 내가 하나 가지고 있고.

원래 진해일대가 웅천원(현)이였제. 원님이 웅천에, 지금 웅천초등학교자리였다고 했지 아마.

왜, 어릴때 웅천국민학교 강당보수할 때 마루바닥아래서 용머리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아이가~
보배산은 전골뒷산이고, 전골은 전굽는 골짜기여서 전골이름되었다더라. 어릴적에 들은 얘기….

보배산 파 보면 사발이 차곡히 쌓여 있는대로 묻혀부서져 있는 곳도 많았다.
사진으로 보는 고향뒷산, 더구나 새소리 참 좋다.^^

엄마·아버지 안계시니 잘 가지지도 않고 자꾸 멀어지네~
마음속에 아련하고…  왠지…  아픔의 고향이다….

또 다른 친구도 당시를 회상해 주었습니다.

세련되고 우아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조상님들의 소박한 있는 그대로의 사발 모습이 마음에 와 닿는다.
임란때 웅천도예공들이 일본으로 잡혀가서 웅천차사발의 명맥이 끊었졌지만 요즘 다시 복원을 했다니 다행이다.
두동이나 소사에 있는 흙의 종류도 차사발을 만들수 있는 흙이 있다는 것인데, 어릴적 수원지 뒷쪽(웅천을 넘어가는 고개)에 가 보면 사발조각들이 보였고, 패총무덤이 있다고 들었는데, 초등학교때 수업마치고 000선생님과 용원, 안골,수원지뒷산으로 옛날 토기캐려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한 친구는 이어 그랬습니다.

당시 도자기와 금숟가락(동이나 청동일 수도 있음)도 나왔으며, 도편은 아주 많았다고.

 

전시회장 소식입니다.

특별전이라는 이름이 없더라도 웅천 차사발전은 아주 특별한 전시회입니다.

웅천 차사발의 고향인 진해에서의 첫 전시회며 어쩌면 마지막 전시회가 될 수 있습니다.

관람객이 이어졌으며, 일본인도 있었습니다.

며칠전 두레헌에 가길 참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두레헌에 가길 잘 했습니다.

두레헌의 사장님께서 지인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이번 전시는 조선웅천 차사발과 최웅택 웅천 차사발의 만남전으로, 400여 년 전 조선시대 웅천도공인 거관(巨關)의 전통과 맥을 잇고 있는 최웅택 사기장님의 땀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 50여점이 전시됩니다.

특히 400여 년전 임진왜란 당시 웅천선조도공들이 왜군에 끌려가기전 만들었던 작품 20여점을 일본에서 찾아와 고향에서 첫선을 보이는 귀향전이기도 합니다. 

 

- 전시작품을 바르게 담는 일은 쉽지않았습니다.

작품은 가격이 있었기에 부분 가격표가 있으며, 차사발의 그림자를 자르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한계인가 봅니다.

그리고 이 페이지는 사진의 차사발에 맞추었기에 사진의 크기가 다릅니다.^^

 

 

최웅택 사기장님이 전하는 웅천 차사발입니다. 

웅천 차 사발은 그릇의 선이 아름답고 허리부분이 깊은 질그릇으로 원형이며, 그릇의 끝부분이 젖혀 있고 그릇안쪽에는 둥근 차앙금 자리가 있어 다른 차 사발과 구별이 되며, 일본 차인들은 그것이 작고 뚜렷하게 있는 것을 중히 여긴다.

 

사발 입시울이 되바라지고 허리에서 몸통에 걸쳐 둥글게 부풀고, 굽은 높고 크게 깍았으며, 굽바닥에서 몸통까지 다소 두껍게 성형되어 있다.

 

소지는 흰색 흙, 붉은 흙을 같이 쓰고 있으나, 흰색 흙을 더 많이 사용했다. 젯물빛은 비파색과 회백색을 기조로 하고 있지만, 산화와 환원의 작용에 따라 사발마다 색의 변화가 많다. 특히 웅천 차 사발에는 그릇의 태토를 숨기지않는 솔직함과 당당함이 느껴지고 덤벙담구는 잿물과정에서 구김살없는 유아적 천진함마져 느끼게 한다.

 

어떤 기교와 장식도 하지 않고 무심으로 빚어 만들어 놓은 차 사발에는 자연미와 격에 맞는 형식이 차 사발에 담겨지며, 자연스런 아름다움이란 오랫동안 숙련된 기술과 체험에서 우러나오며, 도공의 손재주가 아닌 마음으로 빚은 그릇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 (왼편부터)웅천이도차사발, 웅천귀얄차사발, 웅천이도차사발, 웅천차사발

 

최웅택 사기장님의 웅천요를 다니지만 웅천 차 사발의 진가를 아직 모릅니다.

다만, 같은 차 사발은 하나도 없으며, 매화피가 오묘하다는 것입니다.

매화피가 무엇인줄 모르고 다닐 때는 그나마 마음이 편했는데, 한 두가지를 알다보니 그렇게 다니고 이것도 모르나 하실까봐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을 못하는데, 언제쯤이면 사기장님이 편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차 사발 전시장은 도기나 자기를 다루는 이와 차를 다루는 이들이 대부분인 듯 하며 엄숙했습니다.

전시장에는 차 사발과 도편에 손을 대지 말라는 안내가 있지만, 사기장님과 함께 일 경우에 사발을 직접 만져보게 합니다.^^ 

 

 

                           ▲ (왼편부터)웅천이도차사발, 웅천이라보차사발, 웅천이도귀얄차사발

 

 

웅천 차사발전은 400여 년전 임진왜란 당시 웅천선조도공들이 왜군에 끌려가기전 만들었던 작품 20여점을 일본에서 찾아와 고향에서 첫선을 보이는 자리라고 했습니다.

조선웅천 차사발입니다.

 

 

 

 

 

 

 

최웅택 사기장님은 조선웅천 차 사발의 재현과 함께, 망국의 혼이 잠든 일본 히라도 고려비 추모제를 매년 개최하며, 왜군에 끌려간 125명의 조선웅천도공의 원혼추모제를 뱃길따라 개최합니다.

뱃길따라 하는 원혼제는, 부산에서 일본 오사카를 향하는 정기여객선을 타고 17시간동안 약 640㎞의 항로를 따라가면서 웅천막사발 재료인 보개산 한백토와 가루향을 뿌리며, 대마도를 지날 때는 도공들을 위령하는 뱃고동을 울리며 헌다례를 올리는 행사입니다.

 

또 보개산 도요지 웅천선조 도공추모제 및 웅천 차 사발 축제도 매년 개최합니다.

언젠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우리 도공들의 혼이 잠든 공원묘지에 우리의 무궁화 몇 주를  심었는데 잘 자라고 있다고 했습니다.

 

 

최웅택 사기장님의 스승은 웅천 보개산에 널려있던 조선사발 조각들만이라고 했습니다.

위와 아래의 사진은 보면 500여 년전의 웅천 차 사발 도편과 이를 스승삼아 재현한 사기장님의 작품들입니다.

 

 

오늘이 전시 마지막날입니다.

흔치않은 전시회니 가까이 계시는 분들은 전시장을 찾으면 좋겠고, 사정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가주동의 웅천요를 방문해도 좋습니다. 

 

 

블로그 강좌 안내

 

- 갱블 주최 : 7월 SNS 강좌 (7월 27일 오후 7시 경남도민일보 강당)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