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마음 나누기/낙동江과 팸투어·답사

지율 스님, 오늘도 맨발로 낙동강을 걷습니다

by 실비단안개 2010. 10. 26.
728x90

 

3년간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우여곡절을 겪었던 천성산 원효터널 공사가 완공되어 서울~부산 간 주행시간을 기존 2시간 40분에서 2시간 18분으로 22분 단축시키는 경부고속철 연장노선이 다음달 1일 개통될 예정입니다.

 
지율 스님과 환경운동가들은 13㎞의 터널이 지하수맥(水脈)을 건드려 20여개 습지가 말라붙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환경영향평가 등에서 천성산 습지는 터널에서 수직으로 300m 이상 떨어져 있어 환경에 영향이 없다는 결론이 나와 터널 공사는 완공되었습니다.

 

최근 조사에서 가재·개구리·끈끈이주걱 등 습지 동식물이 풍부하게 확인됐고, 올 봄엔 웅덩이마다 도룡뇽 알이 가득했다는 주민들의 목격담이 있었다며 터널완공과 함께 잠시 묻혀졌던 천성산 터널과 지율 스님이 언론 기사에 다시 오르고 있는 요즘입니다.
생태계는 하루 아침에 확 변하는 게 아니니 천성산의 환경·생태는 두고 보면 알겠지요.

  

10월 22일은 경남낙사모에서 경남수목원에서 낙동강 사진 전시회를 하기로 한 날이었는데, 낙동강 사업 34공구 경천대의 남아 있는 풍경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지율 스님의 부름으로 경북 상주로 갔습니다.

상주 경천대로 가는 길은 멀었고, 중간중간 스님이 전화로 길 안내를 하여 무슨 다리 건너고, 교회가 있고, 제재소가 있고….

가던 길에서 되돌리기도 하며 상주의 스님댁 가까운  한적한 길에서 마중나온 스님을 만났습니다.

 

지율 스님은 몸집이 작았습니다. 마른 깻단같습니다.

요즘도 이런 집이 있을까 싶은 푸른색 모기장이 쳐진 농가의 안방으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그 방은 스님이 지난해 11월부터 생활한 스님의 휴식처입니다.

 

낙동강 작은 풍경이 있는 벽에 모자를 걸고 우리에게 양파즙을 주며 스님은 커피를 탔습니다.

스님은 커피를 즐기시는 듯 했습니다.

어쩌면 천성산과 낙동강을 지키려고 잠을 쫒느라 중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양파즙을 좋아하지 않지만 스님에게 토를 달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 인터넷에 접속했습니다.

인터넷 접속은 원활했지만 마우스패드는 옷 소매를 잘라 사용하더군요.

물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스님은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감에 숙명이라기에는 천상산이 그러했듯 4대강도 스님에게는 너무나 큰 짐 같은데, 스님의 눈빛은 모든 것을 비운 듯 채운 듯 고요하고 맑았습니다.

 

스님은 빈농가를 얻어 생활합니다.

정지에 걸린 가마솥은 난방용으로 이용하는 듯 했으며, 과수원의 열매를 싼 봉지들이 모아져 큰봉지에 가득 있었는데 땔감이었습니다. 

옆으로 조촐한 양념통들과 휴대용 가스버너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강과 스님을 찾는 이들을 위해 홑이불이 쌓인 방이 있습니다.

누가 꽂아 두었는지 지금은 비어 있는 그곳에 '강은 강처럼 흐르게 하라' 깃발이 강물처럼 아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강물은 거슬러 오르지 않습니다.

 

스님과 우리 일행은 낙동강으로 갔습니다.

"모래가 들어 가서…."

스님은 신발에 모래가 들어 간다며 맨발에 조리를 신었습니다.

 

지난해 트라피스트 수녀원을 방문했을 때 수녀님께서 배낭은 이동사무실이라고 했습니다.

지율 스님도 배낭을 멘 가녀린 어깨에 카메라까지 멨으며 손에는 캠코드를 들고 있습니다. 

수도에 정진해야 하는 수녀님과 스님이 세상을 걱정하며 직접 나서야 하는 '시대'입니다. 나서야 하는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경남낙사모는 지율 스님의 배려로 낙동강 사진전을 하며, 지율 스님은 사진들을 얻기 위해 지난 봄부터 겨울까지, 총길이 300여km에 이르는 낙동강 본류와 지류를 다섯 번 답사했다고 합니다.

지율스님은 4대강 사업을 하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말없이 낙동강의 현장을 보여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4대강 사업 착공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고 기록하며 낙동강 사업을 감시합니다.

 

강의 모래를 퍼올리니 너럭바위들이 나왔습니다.

스님은 어쩌면 문화재거나, 공사장 부근에 고대 유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공사를 중단시켜두었기에 낙동강 사업 34공구 현장에는 현장 관계자와 문화재 관계자들이 있었습니다.

질문들이 반복되었지만 서로 듣고 싶은 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떠나기전에 지율 스님의 행동을 담으라고 했으며, 지율 스님 또한 그 현장을 담았고,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들의 공사지연 책임을 강조하던 협박에 가까운 눈빛과 서멀거리던 미소, 말투를 오래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공사관계자와 문화재 전문가들이 떠났습니다.

우리는 각자 낙동강과 맑은하늘, 그 안의 생명을 담았습니다.

 

겨우 걸쳐진 조리를 벗고 스님이 강으로 갔습니다.

강물에는 모래알갱이가 바다로의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래알갱이는 구미보, 달성보, 함안보 공사 현장을 만날 것이며, 더러는 그곳에 닿기전에 기계소리와 함께 원하지 않는 곳으로 실려갈 수 있고, 운이 좋은 모래는 밀양강을 살짝 구경하고 아래로 흘러 낙동강 하구언을 통과하여 다대포와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맨발로 땅을 밟은지가 언제인지 기억에도 없습니다.

시원한 강물과 고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힐 때는 아이가 된 듯 기분이 좋았습니다.

작은 풀포기, 잠자리는 여기까지 왜 왔을까 싶을 정도로, 늘상 걷는 들길에서 만나는 그것들이 참으로 고맙고 위대해 보였습니다. 잠자리를 따라 하늘을 향해 동그라미를 그리자 눈이 시렸습니다.

 

 

 

 

 

스님이 맨손으로 모래를 살금살금 헤집습니다.

새끼손톱만한 혹은 더 작은 재첩이 낙동강에서 나왔습니다.

서로에게 확인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 재첩을 처음 캤을 겁니다.

재첩의 숨구멍은 물속에서도 훤합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없을 겁니다. 이곳은 낙동강사업 34공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곳의 모래와 재첩뿐 아니라 경천대를 타고 깊이 뿌리를 내린 절벽바위와 그곳을 물들이는 단풍을 만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낙동강 유람선을 타고 좀은 달라진 풍경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풍경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강변의 회상들판에 벼가 황금빛으로 익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난해 떨어진 나락이 다문드문 열매를 맺어 지난해와는 달라진 풍경을 만들어 냈듯이요.

 

 

  

스님이 벌에 쏘였습니다.

딱히 응급처치법을 몰랐습니다. 김훤주 대표가 "예전에… " 하며 침을 빼내야 한다며 스님의 발을 꾹꾹 눌렀습니다.

 

회상 모래사장에서 보는 경천대와 상도 촬영장입니다.

 

 

  

우리는 신발과 발에 묻은 모래를 털고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밥집으로 가는 길가 집집에 곶감이 얌전하게 익고 있으며, 사람들의 일상은 정다웠습니다.

 

 

자전거 조형물이 있는 경천교는 회상나루터였습니다.

낙동강뿐 아니라 강에 다리가 있는 자리는 나루터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회상나루는 회곡진(回谷津)이라고도 하며 풍양에서 상주로, 상주에서 안동으로 왕래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 경천교와 거북바위

 

경천대 입구는 유원지며, 우리는 경천대 전망대로 갔습니다.

 

▲ 낙동강에서 본 경천대 전망대

 

전망대에 오르면 낙동강과 회상들판이 확 트였으며, 상류는 공사중입니다. 

한 컷에 담지 못해 세 컷을 이은 회상들판과 낙동강입니다.

소문대로 강에 배를 띄울 모양인지 바닥을 7m 깊이가 되도록 파며 강폭을 넓힌다고 하니 강가의 들판은 반달모양으로 잘려 나갈 것입니다.

 

▲ 낙동강과 회상들판

 

사진의 공사 인부들도 아마 힘들겁니다.

처자식이 웬수로 생각될 때도 있을 겁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 아닌 서민의 숨구멍을 죄고 있습니다.

 

 

정부는 어제도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생명 살리기'라며 4대강 사업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는데,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농지를 갈아엎고 주민을 내쫒는 이것이 진정 생명 살리기라고 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영남의 젖줄 1300리 낙동강의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이지만, 낙동강 700리를 말할 때 상주는 낙동강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원도 태백 황지, 문경과 영주 소백산에서 나온 물줄기가 상주에서 합쳐지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낙동강의 모습을 갖추기 때문입니다.

 

'낙동(洛東)'이란 가락의 동쪽에 있어 낙동이라고 한다는 설과 상주의 옛이름인 낙양의 동쪽에 있다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습니다.

 

'경천대(擎天臺)'는 그 자태가 아름다워 '하늘이 만들었다'는 뜻의 '자천대(自天臺)'로도 불리며, '낙동강길'은 경천대가 출발점입니다.
* 擎 들 경

 

경천대(하늘을 받들고 있는 절벽)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조선시대 학자 우담 채득기선생입니다.

우담선생은 충주에서 상주로 이사하여 낙동강가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병자호란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로 볼모로 잡혀갈 때 세자를 호송하는 관료로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우담선생께서는 나라의 부름을 받자 상주를 떠나면서 '천대별곡(봉산별곡)'이라는 한글가사를 지었는데, 그 천대별곡속에 경천대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합니다. 

천대별곡의 첫 구절이 '가노라 옥주봉아, 잘있거라 경천대야'라고 합니다.

 

경천대는 낙동강 700리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워 낙동 1경으로 통하는데, 국토해양부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는 (신)낙동강 12경을 발표했습니다.

 

(신)낙동강 12경은, 1경(철새의 낙원)은 부산 을숙도 철새도래지며, 2경(갈대의 노래)은 최치원 선생이 극찬한 경남 양산시 오봉산 임경대, 3경(은빛 물결의 일렁임)은 김해·밀양시의 삼랑 하중도, 4경(산과 들의 갈대 향연)은 창녕군 화왕산 억새 숲,  5경(들꽃의 향연)은 합천군 합천보 주변, 6경(상생의 노래)은 강정보가 있는 고령·달성군의 달성습지 등입니다.

물줄기와 함께 강과 강변의 모든것을 바꿀 모양입니다.

 

경천대에는 소나무와 죽은 향나무가 있습니다.

소나무 한 그루는 바위 아래로 뿌리가 드러나 있으며 한 그루는 바위에서 솟은 듯이 있고, 낙동강을 향한 향나무는 죽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낙동강 살리기 홍보 동영상에는 낙동강물이 죽어 향나무가 죽었다는 듯이 홍보를 합니다.


(▶) 사진만 보면 정말 낙동강이 나무도 죽게하는 끔찍한 죽은 강처럼 보입니다.


사진의 장소는 낙동강 제 1경인 경천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사진으로 경천대 전망대의 죽은 향나무로, 고사목 자체가 낙동강의 풍치를 더해 주기에 베어내지 않고 있는데 강을 살려야 한다면서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피디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에서 확인했듯이, 정부의 홍보 영상에는 경남 고성 삼덕저수지의 갈라진 바닥을 보여주며,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4대강 살리기의 의미중 하나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삼덕저수지는 낙동강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기에 낙동강 살리기와 전혀 상관없는 저수지였습니다.

포장과 거짓의 끝은 어딜까, 연구대상감도 되지 못하는 정부가 원망스럽습니다.

 

▲ 낙동강을 바라보는 지율 스님과 경천대(가운데는 죽은 향나무) 

 

겨우 경천대와 건너의 모래밭을 걸었을 뿐인데 하루해가 다 갔습니다.

이제 언제 스님을 뵐지, 낙동강을 걸을지 기약이 없습니다.

 

경천대에서 만난 가을입니다.

경천대 전망대로 가는 길에는 구절초가 흐드러졌으며, 단풍은 풍경만큼 잘 익었습니다.

우리는 기록을 위한 순례시간이었지만, 경천대는 낙동 1경인 만큼 그 아름다움을 말과 글로 다 표현을 못하니 가을 여행 목록에 추가하고 낙동강의 현주소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경남낙사모의 10월 29일 낙동강 사진전은 함양 상림숲에서 있습니다.

단풍놀이를 겸한 전시회니 뜻있는 분들은 연락주세요.^^

 

 

- 창원민예총 가을 공연 - 강 이야기

일시 : 2010년 10월 30일(토) 저녁7시

장소 : 마산회원구 중성동 <시와 자작나무> 카페

본 행사는 시민 누구나 무료로 관람이 가능합니다.(문의 010-4801-2206)

 

- 생명평화결사(http://lifepeace.org/)와 한겨레 공동진행 '무소유의 길을 묻는다' 

즉문즉설(卽問卽設) 안내(참가비 없음.)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