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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욕지도 새에덴동산 모녀님 땡큐땡큐~

by 실비단안개 2011.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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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오전 5시, 통영 욕지도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거가대교를 달려 거제에 닿으니 비가 나리다말다를 거듭하더군요.

비옷은 준비를 했지만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섬의 날씨가 걱정이 되었지만, 통영 삼덕항에서도 우산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6시 45분 욕지도로 가는 첫배에 탔습니다.

첫배였지만 관광버스를 비롯 많은 차와 승객이 탔습니다.

4년만에 욕지도로 갑니다.

 

 

내리다마다 하는 비 때문에 해맞이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내리다마다하는 비가 싫지는 않았습니다.

미숫가루 한잔을 마시고 출발했으며, 흐리고 비가 내리며 바닷바람으로 약간의 한기를 느꼈지만 선실은 갑갑하여 선상에서 지나가는 섬 구경을 했습니다.

삼덕항에서 출발하여 방파제 하나 넘으면 곤리도인데 4월에 곤리도로 갈 때는 '웃어라 섬'을 들고 갔지만 욕지도는 두번째 길이기에 빈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선상에서 식사를 합니다.

바로 옆의 승객이 라면을 끓였기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바람소리와 기계소리에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등산을 가는지 많은 일행은 충무김밥을 준비하여 식사를 하기도 했으며, 해가 살풋 비칠 때 승객들은 구름과 바다안개에 어렴풋한 섬과 바다를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나도 스마트폰으로 두어번 소식을 전했습니다.

 

 

삼덕항에서 욕지도까지는 배로 50여분 걸립니다.

벌써 4년이 흘렀기에 섬 모양도 생각나지 않는 욕지도가 구름을 가득 이고 있습니다.

 

 

욕지도(欲知島)는 한려수도의 끝자락에 흩어진 39개의 섬을 아우르는 욕지면의 본섬으로 통영항에서 직선거리로 27㎞, 뱃길로는 32㎞쯤 떨어진 망망대해에서 연화도·상노대도·하노대도·두미도·초도 등과 함께 연화열도(蓮花列島)를 이루고 있으며, 면적이 14.5㎢에 해안선의 길이가 31km나 되고,  연화열도에서도 가장 큰 섬인데도 외지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새에덴동산의 최숙자 ·윤지영 모녀가 언론을 타다보니 새롭게 부각된 섬입니다. 

섬 전체는 커다란 바위산을 이루고 있으며, 섬 안에서의 교통편이 미흡한 것과는 달리 욕지도까지 가는 배편은  통영의 어느 섬보다도 편리합니다.  운항편수와 출항지도 여럿일 뿐더러 뱃길의 풍광 또한 여심(旅心)을 절로 불러 일으킬 만큼 서정적인데 그래서 80리의  짧지 않은 뱃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먼저 한려수도의 수려하고도 서정 넘치는 풍광에 매료되고 맙니다.

 

4년전 욕지도에 처음갔을 때, 여객터미널에서 야포쪽을 택해 걸었습니다.

비탈밭에서 그때도 지금처럼 고구마가 자라고 있었으며, 많이 더운 날씨였지만 혼자 용감하게 걷고, 다시 터미널쪽으로 와 차편으로 야포 반대편을 구경했습니다.

 

2011년 7월 15일.

몸이 예전같지 않기에 새에덴동산만 둘러 보기로 했습니다.

여객터미널에 내려  동태찌개로 아침식사를 하고 새에덴동산이 있는 유동으로 갔습니다.

새에덴동산이 거북바위 위쪽에 있다기에 바다쪽만 바라보며 달리다보니 유동을 지나쳐 덕동까지 가 되돌아 왔는데, 새에덴동산 안내표지판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한참 걸어가니 갈림길에 조그많게 있었습니다.

 

 

새에덴동산 안내표지판입니다.

유동마을 버스정류장 약간 못미쳐 '유동어촌체험마을' 표지판이 있으며,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버스 정류장을 사이에 두고 길은 양쪽에 있으며 어느 길을 택해도 유동마을과 새에덴동산으로 갈 수 있습니다.

유동어촌체험마을쪽에 있는 길을 택해 가니 갈림길에 '새에덴동산' 안내판이 있었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스치기 쉽상입니다.

이렇게 자세히 쓰는 까닭은 1km가 넘는 덕동까지 가 되돌아 왔기에 그럽니다.^^

 

 

작은 안내판을 보고 걸으면 오른편으로 폐교를 리모델링한 파라다이스 민박과 유동교회가 나오고, 유동교회가 있는 언덕을 오르면 팔각정이 나오며 팔각정 기둥에 아래처럼 '새에덴동산' 안내판이 붙어 있습니다.

팔각정에서 800m라고 하지만 걸어보니 더 이상 되는 듯 했습니다.

첫길이며 비가 내렸고 어두운 숲길이라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우산은 얻어 들었지만 두 모녀를 위한 간식거리와 카메라를 들었기에 새에덴동산으로 가는 길은 참 멀었습니다.

가는 길에 두 번 큰비를 만났으며 비가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큰나무 아래를 지날때는 빗방울이 후둑거렸습니다.

들짐승이나 괴한이 뛰쳐나올 것 같은 숲길을 한참 걸으니 또 새에덴동산 안내판이 나왔습니다.

이제 70m만 걸으면 됩니다.

 

마지막 안내판은 나무에 못질을 하여 고정을 시켰는데, 새에덴동산은 전국적인 관광지며, 욕지도 지도에도 당당하게 나와 있으니 통영시에서 (욕지일주도로)입구부터 눈에 띄는 안내판을 중간중간에 세워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새해가 되면 일출을 보기위해 전국에서 몇 백명이 몰리며, 15일 그날 오전만 해도 경기도에서 혼자 오신 분, 관광버스로 오신 분, 창녕의 산악회에서 오신 20여명 등이었으며, 새에덴동산의 윤지영씨가 위암과 싸워 완치되었기에 전국에서 많은 환우들이 새에덴동산을 찾는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길눈이 밝지만은 않을 테니 통영시에서 안내판을 세워주기를 바람해 봅니다.^^

 

 

첫번째 안내판이 있는 곳에서 보면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민박을 하고 있습니다.

운동장 가득 기생초가 화려하며 강아지털을 다듬는 부부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분교가 아닌 본교였다고 하며, 어떻게 학교인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느 학교나 독서하는 소녀상이 있는데 계단옆 풀섶에 독서하는 소녀상이 있어 학교인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학교 담장을 끼고 걸으니 지붕 색이 고운 집들이 나오며, 유동교회가 있었습니다.

시골 교회도 요즘은 제법 권력이 있어 보이는데 유동교회는 아직 시골교회 티를 벗지 못했습니다.

 

혼자 우산을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1km정도를 걸었습니다.

마지막 안내표지판에서 70m는 더 멀게 느껴지더군요.

더 이상 자동차 진입이 불가하며 길은 자갈과 흙길이었습니다.

 

새에덴동산의 첫풍경입니다.

생각만큼 너른터가 아니었습니다.

이때 비가 또 쏟아졌습니다.

 

 

 

 만리장성길을 따라 새에덴동산으로 갔습니다.

작품과 길이 구분 되지 않았기에 걷는 일이 참으로 조심스러웠습니다.

아치형의 비닐문이  두 모녀가 거주하는 출입구입니다.

발자국 소리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비가 오는데 누가 왔네. 땡큐땡큐~"

잠시 안을 기웃거리니 식사를 준비할 듯 했기에 우산을 벽에 세워두고 밖으로 나오니, 지영씨가 어머니와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첩을 들고 나왔습니다.

 

 

 

모녀의 젊은 날 모습입니다.

여느 여행객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제주도 여행시 코스같은 말을 타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앨범의 사진마다 설명이 있었습니다.

글씨는 아름답고 강했습니다.

 

어머니 최숙자 씨는 서예국전작가였으며, 전도사, 시인, 의상디자이너였습니다.

 

부족함 없이 살던 어느 날, 윤지영씨는 대학 4년 때 위암 말기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목에 물이 안 넘어가고 살이 35kg까지 빠졌습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 딸을 위해 40일 금식기도 중 40일째 되던 마지막 날 어머니는 기도 중에 "통영 욕지도 양지촌으로 가라"는 음성과 함께 환상 중에 한 장소를 보게 되었는데 딸을 데리고 그 장소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가정만 알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집을 떠나 듣도 보도 못한 섬으로 들어간다 하니 아버지께서 미쳤다고 펄쩍 뛰셨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가지지도 못하고 모녀는 맨몸으로 욕지도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환상 중에 보신 그 곳은 욕지도 남쪽 끝단에 위치한 아주 외딴 곳으로 물이 귀하고 바람도 세고 교통도 불편하여 욕지 주민들이 사람 못 사는 땅이라고 버려두고 발걸음도 하지 않는 아주 황폐한 곳이었습니다.
풀과 잡목으로 뒤덮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에 당장 잘 방이 없어서 방 한 칸 만들 동안 맨 땅에 포장 치고 8개월간 생활했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아랫마을에 내려가 종자고구마에서 줄만 잘라 옮겨 심고 영양가 다 빠져 버리는 무광고구마를 주워 와 3년 쯤 그것만 먹고 지냈더니 모녀는 영양실조에 걸려 이가 다 빠졌습니다.

무광을 주워 먹는 모녀를 보고 욕지주민들은 또라이라느니, 거지라느니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었고, 어떤 이들은 어머니께서 고아원에서 아이 하나를 데려와 공부도 안 시키고 도망 못 가도록 이를 다 뽑아 잡아 두고 노동착취를 하고 있다고 소문을 내 파출소장님이 민원이 들어왔다며 조사를 하러 오기도 했기에 어이가 없어 부산 집에 가서 지영씨가 태어날 때부터 자라온 모든 과정이 담긴 두꺼운 앨범을 갖다 놓았다고 합니다.

윤지영씨는 욕지도에 온지 13년만인 지난해 서울대 병원에서 위암 완치판결을 받았습니다.

 

지영씨 아침부터 작업을 하다 비를 만나 샤워를 했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니 그을음이 날려 요즘은 전기장판을 사용하기에 샤워는 찬물에 한답니다.

전기장판만을 사용하니 방에 습기가 많으며, 입구격인 마루도 아주 습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밝으며 하늘이 보이는 방이 있습니다.

이곳은 습기가 많지않아 장마철 빨래말리기와 겨울 한파를 피하기 좋다고 하며 밤엔 마당에 서지 않아도 별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영씨가 자랑하듯 엽서를 들고 나왔습니다.

일본인 사진작가가 찍어 엽서로 만들어 주었답니다.

작품을 만드는 일은 돌맹이를 부숴 시멘트와 버무려 하는데 시멘트 살 돈이 없다보니 시멘트를 얻어 작업을 했기에 새에덴동산을 찾는 이들에게 판매를 하여 시멘트를 구입하라고 했답니다. 하여 요즘은 시멘트를 얻지않고 엽서를 팔아 시멘트를 산다고 하며 윗니가 없는 지영씨 방그레 웃는데 아기같았습니다.

 

▲ 작업도구들

 

만리장성길을 걷다보면 기둥에 고리가 있는 게 보입니다.

기둥뿐 아니라 지붕에도 철사고리가 있으며, 벽은 배수시설이 잘 되어 있습니다.

배수시설이야 알지만 기둥과 지붕의 고리 용도를 알 수 없었기에 지영씨에게 물었더니, 고리는 천막을 칠 때, 등 달 때, 빨래줄을 만들 때 등 다양한 용도며 기둥에 못 박기가 힘들기 때문에 처음부터 고리를 만들어 작품을 만든다고 합니다.

또 기둥 가운데 있는 철근고리는 촛불의 심지가 되어 세상을 밝힌다고 합니다.

 

 

▲ 작품 1호 야곱의 우물

 

야곱의 우물이 작품 1호가 된 건 터를 잡았지만 물이 없어 우물을 만들었다고 하며, 현재 작품은 신의 제단, 최후의 만찬석을 비롯 17호까지 완공되었으며, 남은 700여평은 10년 계획으로 활동을 할 거라고 합니다.

 

이쯤에서 트위터에 전송하기 위해 지영씨에게 어느곳이 사진이 잘 나오느냐고 하니 모닝스타가 보이는 아가판투스꽃 옆에 앉았습니다.

아가판투스는 남아프리카가 원산지로 아프리카의 백합이라고 불리며 보라색 꽃이 탐스럽게 피는데 킹스타라고도 한다네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전송을 하니 트위터에 오르지가 않았습니다.

하여 카메라로 다시 찍었으며, 나중에 새에덴동산을 나와 트위터에 올렸는데 이렇게 썼습니다.

 

'킹스타와 모닝스타와 새에덴동산의 스타입니다'라고.

지영씨 암과 싸워 이겼으니 스타니까요.

 

 

모녀는 머리가 짧습니다.

어머니께 여쭤보니, 처음엔 일반사람들과 같은 모양이었는데 작업을 하다보니 땀을 많이 흘려 머리를 기를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여 가위로 머리카락을 듬성듬성 잘랐는데, KBS에서 촬영을 하며 그 이야기를 듣고 머리깍는 기계를 보내왔는데 너무 편하며 시원하다고 합니다.

 

식사시간입니다.

아침 작업을 하느라 식사가 늦어졌다고 합니다.

뭘 드실까, 언젠가 보니 쑥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 드셨는데….

모녀도 나에게 권하지 않았지만 식량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나도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날 방문객이 국수 한 단을 사오셨다네요.

싸라기죽에 국수를 넣어 끓였으며, 찬은 소금물에 쑥갓을 잘라 띄웠는데 쑥갓물김치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모녀는 천천히 맛나게 식사를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영양면에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모녀의 차림은 허술한데 옷은 얻어 입으며, 쌀 대신 보통 싸라기로 주식을 해결하며 찬은 들에서 나는 것들로 해결한다고 합니다.

작품 사이에 방문객이 선물한 작은 화분과 박하가 있으며, 가지가 열렸고, 마음 비우는 곳 뒤로 가니 고구마가 다른 밭에 비해 순이 더 길게 자라 있었는데 고구마는 가을에 판매를 한다고 합니다.

욕지고구마가 유명하며 방문객이 많으니 판매는 시간 문제일 것 같습니다.

 

 

 

모녀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모든 이야기끝에 땡큐땡큐라고 합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만든 모녀는 만물에 감사하는 마음이 베인 모양입니다.

처음 욕지에 와 받았던 찬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모녀는 욕지사람이 되어 태풍 매미로 마을의 전기가 끊기고 지붕이 날아갈 때의 아팠던 마음을 시로 적고, 욕지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며 부를 수 있는 '욕지도의 찬가'를 노래 '서울의 찬가'곡에 맞춰 부릅니다.

 

 

지영씨가 어디에 접속하면 트위터에 올린 사진과 글을 볼 수 있느냐고 하기에 인터넷이 가능하냐고 하니 그렇다고 하여 블로그 명함을 드렸습니다.

욕지도를 다녀온지 며칠 지났는데 지영씨가 블로그에 접속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녀의 사진은 작품이 완공되는 10년 안에 한번쯤 욕지도 방문이 있을테니 그때 전해 드리마 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와 정성으로 완쾌되신 지영씨

노랫말처럼 첫사랑처럼 아름다운 섬, 정다운 섬, 사랑의 섬 욕지도에서 건강 잘 지키길 바라며,

어머니도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빕니다. 땡큐땡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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