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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국화꽃이 지지않는 현동 예곡마을

by 실비단안개 2011.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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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한달도 더 됐군요.

부모님과 국화축제장 구경 후 국화 시배지인 현동을 찾았습니다.

김양이 고장이라 스마트폰으로 블로그에 접속하여 예곡마을만 알아 달렸는데, 현동을 지난 듯 한데 올케는 계속 달리더군요.

수정가는 길 버스정류소에서 주민들에게 국화마을을 물으니 근처를 알려줬기에 좁은 시골길을 따라 조심스레 달리니 국화재배 하우스가 나오긴 했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아니었습니다.

 

마산에서 진동으로 가는 길, 조경이 아름다운 산이 있었는데 그곳이 현동 같은데 하며 돌아 나와 지나는 이들에게 물으니, 우리나라 길 가르켜주는 방식대로 좀 더 올라가서 좌회전해서 쭉 가면 됩니다였습니다.^^

정오를 훨씬 넘긴 시간이었기에 부모님 걱정이 되어 중간 어디서라도 요기를 해야 겠는데 밥집은 왜 그렇게 보이지 않는지.

 

그렇게 닿은 곳이 마산 현동 예곡마을입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국화재배지가 있었으며, 국화마을답게 도로변에 국화가 노랗게 피어 있었습니다.

우리(사실은 나 혼자)가 궁금한 건 마을 풍경이었기에 국화재배지를 지나 마을로 가니 과연 소문대로 담장에 국화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벽화는 국화마을답게 국화며, 마을 앞은 트였으며 시내가 흐르고 있습니다.

 

 

 조용한 마을을 우리는 우리동네처럼 돌아 다녔는데, 부모님은 조금 걸어시더니 허리가 아프시다며 차에서 쉬셨습니다.

 

 

마을회관을 지나면 250살먹은 팽나무가 있으며, 옆에 버스정류장이 있었습니다.

1000번, 기억하기 참 좋은 번호며, 진해서 마산으로 가 신세계백화점에서 내려 1000번을 타면 국화마을에 닿습니다.

혹 잊기라고 할까봐 1000번이 쓰여진 정류장 안내표를 크게 찍고 부모님 걱정이 되어 내려오는데 할아버지께서 사진 좀 찍어봐라 하며 부르시더군요.

 

 

사람이 그립던차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예곡마을이 고향이에요?

어, 내가 말이 잘 안 들려, 보청기를 해도 크게 해야 들려.

남의 동네서 내 동네처럼 크게 말을 할 수 없어 할아버지께 간단한게 여쭙고 국화재배지로 향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곡마을에서 태어나 예곡마을에서 쭉 사셨다고 했습니다.

 

마을이 참 단정한데요, 그렇다고 모두 신식건물은 아닙니다.

허름한 집이 있기도 하며, 돌담장이 정다운 예곡마을에 국화 벽화를 그린지는 2년이 되었습니다.

현동 교차로에서 쌀재 터널로 가다보면 오른쪽편에 무학산 자락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예곡마을에 (당시 마산)시가 벽화그리기 사업으로 창신대학 실용디자인과 교수, 학생과 벽화제작봉사단이 40여일에 걸쳐 60개소 1884㎡의 면적에 아름다운 국화꽃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헐어 새로 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잘 보여주는 예곡마을은 국화벽화로 새로워진 마을입니다.

 

 

옛 마산은 우리나라 국화재배의 역사가 담긴 곳으로, 1960년 회원동 일대에서 여섯농가가 전국 최초로 국화 상업재배를 시작한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1976년 국내 처음으로 일본에 국화를 수출했습니다.

일본은 나라꽃이 없습니다만, 일본 황족의 공식 문양이 국화 문양이기에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국화를 수출하였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마산의 국화재배 현황은 현재 전국 재배면적의 13%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간 40만불의 외화를 벌어들인다고 하며, 마산 국화축제시 진동과 창원 북면에서 재배되는 국화와 함께 예곡마을 국화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혼자 다니면 이것저것 구경도 많이 하고 사람을 기다려 궁금한 것들을 묻기도 하는데, 보모님이 여유롭게 하라고 하셨지만 밥 때를 넘겼기에 아버지 당이 걱정되기도 해 빨리빨리 움직였습니다.

 

우리 엄마는 꽃 중독자입니다.

시골집이란게 별 쓸모없이 넓기만 한데, 어수선한 화단, 고추 등을 보관하는 하우스, 마루, 방안 등 온통 식물입니다.

힘이 부친다는 양반이 봄날 장에 가시면 꼭 화분을 들고 오시며, 동네 누구네집에 새로운 꽃이 있으면 어떻게든 얻어 심어야 직성이 풀리며, 또 그걸 나눠심어 이웃을 비롯 우리에게 주고 싶어 안달을 하는 엄마입니다.

 

겨울이니 동백꽃이 당연히 피는데, 엄마가 꽃을 좋아 하는 걸 일깨워주기 위해 아침에도 혼잣말처럼 "벌써 동백이 피었네"했습니다.

아지랑 떨줄 모르는 딸인데 이 나이에 이러고 삽니다.

 

국화 하우스를 기웃거리시더니 콩단을 만지시는 노부부에게 다가가셔서 말을 겁니다.

삽목한 국화는 언제 심어야 하느냐, 거름은 무엇이 좋으냐 등등.

 

 

국화재배 하우스입니다.

삽목한 국화와 꽃을 피울 국화, 꽃을 피운 국화입니다.

엄마를 뒤로 하고 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하우스와 작업농막을 기웃거렸는데, 마침 할머니 한 분이 꽃단을 묶고 계셨기에 할머니~ 하니, 늙은이 찍어 뭐 하게 하며 사양을 하시더군요.

 

 

혼자 타박타박 걸으니 농막앞에서 역시 단을 묶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혼자인 나도 사람이 그리웠지만 아주머닌 더 그리웠는지 반가워 어찌하실 줄 몰라했습니다.

국화축제장에나 가지 여는 뭐 할라꼬 왔는기요?

국화축제장 들려 국화마을이 궁금해 왔습니다.

혼자서?

아니요, 올케차로 부모님과 함께요. 근데 이제 혼자 올 수 있어요, 마을 버스정류장에 보니 신세계백화점앞에서 1000번을 타면 예곡마을에 오더라고요.

마산 사는기요?

아니요, 진해. 진해서 마산버스타고 다시 1000번 타면 여기로 올 수 있어예.

아이고 고마워라, 1000번을 기억하네.

 

손질된 국화는 농민신문에 싸여 있습니다.

보라색옷과 보라색꽃이 잘 어우리는 아주머니는 국화축제때 꽃나누미를 하셨으며, 인터뷰도 했다고 합니다.

말을 몬 해 안 할랍니더 하니, 담당자가 말씀만 잘 하시네요 하며 부추겼기에 인터뷰를 잘 마쳤다고 했습니다.

 

 

국화는 종류에 따라 봉오리와 반쯤 피었을 때, 활짝 피었을 때 작업을 하며, 예곡마을 하우스에선 사계절 국화가 핀다고 합니다.

겨울에도 펴요?

하모, 장례식장에 가야 하거든.

 

아주머니는 성함을 말씀해 주시지 않았으며, 명함도 주시지 않았기에 농장 이름을 모르지만, 우리는 한참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이미 성인이 된 자녀들은 부모님의 고생을 알기에 꽃을 봐도 이쁜줄을 모른다고 하셨을 때 마음이 찡하더군요.

이렇게 좋은 꽃이지만 부모님과 자신들에겐 노동이니까요.

 

 

얼마나 흘렀을까, 올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일어서려는데 아주머니께서 국화단을 장만하여 들려주었습니다.

"꽃 중독자인 어머니께 드려라"고 하시며, 부처님께 올리려고 준비해 둔 송이가 큰 국화 몇 송이까지 끼워서.

 

명함도 없는데 다음에 어떻게 만나지요?

사철 여 있으께 아무때나 오소.

 

 

엄마 선물!

꽃을 샀나?

아니 이야기값.

이렇게 많이, 너그도 좀 갖다 꽂아라, 되기 많네.

한동안 우리집과 엄마집엔 국화향기가 진동을 했으며, 꽃을 받아 미안한 마음에 다음날 엄마는 화단의 국화를 꺾어 신문지에 말아 오셨습니다.

항아리 같은 거 없나?  국화는 그런데 꽂아야 보기 좋다. 사이다나 락스 한방울 떨어 뜨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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