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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 나들이, 부모님과 통영 한 바퀴

by 실비단안개 2012.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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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해맞이를 하고 우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역사와 예술의 고장 통영으로 갔습니다.

통영은 몇 번을 가도 구경을 못 다하고 오는 곳으로 많은 예술인을 배출했으며, 특산물 또한 많은 고장입니다.

 

통영의 많은 특산물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나전칠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칠기는 멀리 낙랑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고려시대에 그 틀이 잡혔고, 통제영 시대에 12공방에 상하칠방을 두어 발전시킴으로써 비로소 나전칠기 공예의 화려한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특히 통영 지역에서 나는 전복, 소라, 조개껍질은 그 문양과 색깔이 현란하여 '통영자개'라면 품질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 통영옻칠미술관 http://www.ottchil.org/

 

누비는 통영의 전통공예품으로 두겹의 천 속에 솜을 넣고 누빈 것으로 색상이 아름답고 기하하적인 누비 문양이 정교하여 '통영누비' 라면 전국에서 최상품으로 인정해 주는데, 가까이 장유 롯데아울렛 옆의 하나로 마트에서도 판매를 하더군요.

 

사진은 충렬사 주차장과 붙은 통영 특산물 판매점에서 담았습니다.

통영 특산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기에 양해를 구해 찍었는데, 통영 연(鳶)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연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신라 진덕여왕 때 사용했다고 하나, 하지만 누구보다 연을 잘 알고 활용한 인물로는 조선 선조 때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며, 임진왜란 당시 육지에서 범선으로 또는 범선과 범선, 섬과섬, 섬과 육지 간에 긴급히 연락을 취하는 통신수단으로 연을 사용했다고 전해져 옵니다.(참고 : http://bucheon.grandculture.net/Contents/Index?contents_id=GC01601538)

 

일제강점기때 동피랑, 당산(서피랑), 중앙동 만화정, 배수지 등 언덕 위에서는 겨울철 연날리기가 성행하였으며 1948년부터 남망산 공원에서 시민연날리기 대회가 열리기 시작하여 1960년 제1회 전국연날리기대회를 개최 하였다고 합니다.

동피랑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릴 때 통영 출신 시인은 동피랑에서 연 날린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통영연은 해안지역의 강한 바닷바람으로 인해 연의 크기가 대형이며, 문양은 기본 문양과 그 변형 및 색깔 그리고 눈박이 까지 무려 50여종에 이르며 다른 지역의 연에 비해 문양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 동피랑 벽화

 

통영 사람은 통영을 '토영'이라 한다지요.

우린 통영 사람이 아니니 통영이라고 하겠습니다. 통영, 슬슬 돌아 보겠습니다.^^

 

▲ 초록색으로 이동한 곳 표시(출처 : 통영관광 http://www.utour.go.kr/main/)

 

통영 여객선터미널에 주차를 한 후 평소에 다니던 엔젤식당을 모른척하고 뒷쪽의 수정식당으로 갔습니다.

엄마께서 복국을 드시고 싶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수정식당의 복국 상차림은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요, 양은냄비에 복국이 나왔으며, 파래무침, 풋마늘무침, 콩나물 등 나물류와 복국은 참복 두 도막과 졸복 대여섯마리에 무를 넣어 끓여 미나리로 마무리 했는데 이늠의 졸복이 건져 먹어도 나오고 또 건져 먹어도 나오더군요.

가족인듯 한 분들이 운영했는데 아버지되시는 분은 큰대야같은 솥에 연신 복국 거품을 걷어 냈으며, 식당은 깨끗하며 주방은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거제와 통영에서 해맞이 한 관광객으로 아침부터 수정식당 뿐 아니라 통영 전체는 만원이었는데 지난해도 그랬으니 언제나 그러한 듯 합니다.

- 수정식당 : 통영시 항남도 239-49번지

  전화번호 055-644-0396

 

아침 식사 후 미륵도 관광특구로 갔습니다.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인데, 나 혼자나 우리 식구들만이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을 텐데 엄마께서 케이블카를 타고 싶다니 어쩝니까.

 

통영 케이블카는 경상남도 통영시 통영관광개발공사가 해발 461m의 미륵산에서 운영하는 관광용 케이블카로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긴 1,975m의 케이블카로 정식 명칭은 '통영 미륵산 한려수도 조망케이블카'입니다.

=> 통영관광개발공사 http://www.ttdc.kr/main.php

 

오전 10시 10분경이었지만 케이블카 주차장이 만차라 안내를 받아 도로변에 주차를 했습니다.

우리가 내려올 때는 도착했을 때 보다 더 많은 차량들이 도로 양쪽으로 아주 길게 주차가 되어 있었는데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동안 몇 차례 멈춘 케이블카지만 언제나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곳으로 관계자들이 더 잘 알테니 주차시설을 늘려 관광객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이야 몇 걸음 걸으면 되지만 어르신들은 비탈길을 걷는 일이 힘든데, 엄마는 할머니다보니 그 길을 오르며 몇 번 쉬었습니다.

 

 

매표소 주변은 통영 특산물 판매점이 있었으며, '통영관광 사진공모전' 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사진의 통영은 푸른 바다와 하늘이었지만 1월 1일 통영은 전체적으로 흐렸기에 전시회 사진같은 풍경은 기대할 수 없었기에 케이블카 요금만 날릴게 뻔하지만 부모님을 위해 기꺼이 표를 구입했습니다.

사전 예약제는 없으며, 어른 1인 9000원이었는데 부모님은 경로우대표였기에 각 8000원이었습니다.

케이블카라고 하지만, 우리가 덕유산에서 탄 곤돌라와 같았는데 요금은 통영 케이블카가 1000원 더 비쌌습니다.

 

우리가 볼 때 케이블카와 곤돌라는 같았는데 이름을 정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 검색을 했습니다.

 

케이블카와 곤도라의 차이점

운행 방식(케이블카 = 왕복식, 곤도라, 리프트 = 순환식)의 차이도 있지만, 가장 쉬운 구별법들은 항상 위 아래가 고정되 있는 것은 케이블카, 고정시키지 않은 것을 곤도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이블카는 아랫쪽에서 출발한 케이블카가 윗쪽에서 출발한 케이블카는 출발과 도착이 같습니다.

위에서 출발하면 아랫쪽도 출발하고, 위에서 도착하면 아랫쪽도 도착을 합니다.

케이블카 자체가 밧줄에 서로 고정되어 있기에 어느 한쪽에 사람이 전부 탑승을 한 상태에서 출발 한다면 반대편의 케이블카에서 비어있더라도 그 상태로 출발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한쪽이 당기는데 서로 발목이 묶였으니 고개 푹 숙이고 빈 케이블카가 끌려가는 겁니다.

 

곤도라와 리프트는 그 형태가 밀폐형인가 개방형인가에 따라서 구분되는 방식인데요, 리프트는 케이블카처럼 자체를 밧줄로 고정시켜 끊임없이 순환하는 고정순환식이 대부분입니다.

곤도라는 케이블에 연결시키는 부분이 분리되어서 일정한 승객을 탑승시켜, 출발을 시키기 위해 다시 끌어주는 밧줄에 연결시켜주는 방식이다 보니 케이블카처럼 아무도 탑승하지 않은 빈 상태로 무작정 끌려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드뭅니다.(출처 : 다음 지식 http://k.daum.net/qna/view.html?category_id=QFA&qid=4JEbu&q=%C4%C9%C0%CC%BA%ED%C4%AB%BF%CD+%B0%EF%B5%B9%B6%F3%C0%C7+%C2%F7%C0%CC&srchid=NKS4JEbu


거금을 들여 미륵산에 올랐지만 흐렸기에 바로 앞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미륵산 정상까지 오르겠다고 하니, 올라봐야 앞이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라며 내려가자기에 휴게소에서 음료수 하나 마시고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내려왔습니다.

그래도 케이블카를 타고 싶다는 엄마는 바람을 이뤄 좋으신지 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다음은 미륵산의 유명한 사찰 용화사로 갔습니다.

지난해 용화사와 전혁림 미술관 등을 다녀왔지만 당시 몸이 시원찮아 포스트로 이어지지 못했는데요, 부모님 시중으로 찬찬히 구경은 못하겠지만, 용화사에 이어 전혁림 미술관에 이어 점심은 정원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이른 봄날 얼레지가 좋다는 용화사는 미륵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으며, 경내에는 절의 중심 건물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용화전 등의 법당이 있고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채와 해월루라는 누각이 있으며, 보광전은 경남 유형문화재 249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보광전 앞의 연등은 초파일이 훨씬 지났음에도 걸려 있는데 1년등인가 봅니다.

 

 

용화사에서 내려오는 길, 왼편 골목안에 전혁림 미술관이 있습니다.

1월 1일은 대부분 공휴일인데 전혁림 미술관은 관람이 가능하긴 했지만, 전혁림 화가와 미술관에 대한 설명은 관장님의 부재로 들을 수 없었는데, 다행히 아버지께서 김춘수 시인의 시를 아시는 듯 해 화가의 기사 등과 깊지는 못하지만 작품 등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전혁림은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며 미술관 외벽은 세라믹타일로 되어 있는게 특징이며, 마당의 매화는 벌써 봉오리를 맺었더군요.

전혁림 미술관에서 가져 온 미술관의 연혁입니다.

"통영의 미륵도의 미륵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백이 1975년부터 30년 가까이 생활하던 집을 헐고 새로운 창조의 공간으로 신축한 건물로써 2003년 5월 11일 개관하였다. 건물의 외벽은 전화백의 작품 다섯점과 아들 영근의 작품 다섯점을 선택하여 20x20cm 의 세라믹타일로 제작, 7,500여장의 조합으로, 통영의 이미지와 화백의 예술적 이미지를 표현하였으며, 3층 전면의 벽은 화백의 1992년의 작품, 창(Window)을 타일조합으로 재구성한 가로10X세로3 미터의 대형 벽화로 구성되었다."

=> 전혁림 미술관: http://www.jeonhyucklim.org/

 

 

나무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갔는데 2층 내부에 변화를 주었는데,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지난 해 4월에 내가 앉았던 의자에 엄마가 앉았는데 마치 다른 장소같습니다.

 

 

전혁림 미술관을 나온 시간은 정오였습니다.

근처 정원에서 점심식사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늦은 아침식사였기에 점심시간으론 일렀습니다.

지난해 4월, '정원'의 마당에서 참 많은 꽃을 담았지만 당시 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수 있을까... 하는 복잡한 생각들로 그날 찍은 음식과 꽃 사진을 버렸는데 아래는 다행히 남아 있는 사진입니다.

괜찮은 맛집이니 통영 걸음시 가 보셔요.

- 정원 : 경남 통영시 봉평동 201-7번지
  전화번호 055-646-0812

 

 

엄마는 통영 해저터널을 아직 한 번도 못 가 봤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걸을 수 있겠소? 하니, 몬 걷소 합니다.

옛날옛날에 우리가 아기때 부모님은 거제로 어망일을 하러 다녔습니다.

당시 통영도 다녔는데 연필등대 건너편 마을에서도 어망일을 했는데, 지금은 낮에 잠시 주무시지만 당시엔 쉬는 시간에 근처를 둘러 봤기에 거제와 통영은 엔간히 다 아신다고 했는데 해저터널 준공연도까지 알았습니다.

 

해저터널을 왕복으로 걷는 건 부모님께 무리같아 부모님과 나는 해저터널을 걸어 건너며, 얼라아부지는 차로 이동하여 건너편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해저터널 입구에서 처음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통영 해저터널은 통영(도천동)과 미륵도(미수동)를 연결하는 주요 연결로였지만, 충무교와 통영대교가 개통되면서 지금은 사람이 다니는 지하도같은 통로로 이용되는데 우리는 미수동을 출발하여 도천동으로 나왔습니다.

 

 

통영 해저터널은 1년 4개월에 걸쳐 1932년에 건립한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로 길이 483m, 폭 5m, 높이 3.5m 규모입니다.

바다 양쪽을 막는 방파제를 설치하여 생긴 공간에 거푸집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打設)하여 터널을 만든 뒤 다시 방파제를 철거하여 완공했는데 양쪽 터널 입구에 한자로'용문달양(龍門達陽)'이라고 쓰여 있는데 '용문을 거쳐 산양(山陽)에 통하다'라는 뜻입니다. (용문은 중국 고사에 나오는 물살이 센 여울목으로 잉어가 여기를 거슬러 오르면 용이 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산양은 바로 미륵도입니다.

 

 

1월 1일 낮 12시 30분.

미륵도를 나왔으니 통영에서 점심을 먹어야 합니다.

운전한다고 욕보는 하나뿐인 사위에게 생선회를 대접하고 싶다는 부모님을 모시고 서호시장으로 갔습니다.

통영 서호시장은 통영 여객선터미널 건너편에 있으며 새벽시장입니다.

 

 

 

서호시장엔 모든해산물이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생선을 비롯 각종 해산물이 그득한데 통영의 유명한 서호시장 시락국집이 시장 입구에 있습니다.

생선회도 좋지만 서호시장에 왔으니 곤 장어국으로 끓인 시락국을 먹어야 할 것 같아 서호시장에서 횟감과 초장을 준비해 시락국집으로 갔습니다.

별관에서 여유롭게 앉아 먹고 싶었는데 별관이 청소중이라 바식의 본관에서 먹었는데, 자리가 좁아 좀 풀편하긴 했지만 우리는 생선회와 개불, 전복 등으로 통영을 먹었습니다.

우렁쉥이는 도시락 하나 가득이었는데 다른 먹을거리로 충분했기에 그대로 남겼으며, 우렁쉥이, 개불, 전복을 사니 생굴 몇 점은 그냥 주더군요.

 

 

벌써 오후 2시입니다.

동피랑은 부모님이 걷기에 불편할 것 같아 충렬사로 갔습니다.

=> 통영 충렬사 http://www.tycr.kr/main.php

 

통영 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영령께 제향을 올리는 위패사당입니다. 경내에는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정당을 위시하여 제향을 준비하는데 쓰이는 동재, 서재와 공의 정신을 교육하였던 경충재와 사당의 사무를 맡아오던 숭무당이 있으며, 외삼문 밖 참배공원 경내에는 영남 유수의 수영누각인 강한루와 유물전시관 그리고 벽용재(어록식)가 있습니다. 소장 문화재로는 충렬사(사적236호) 외 충렬사팔사품(국가보물 제440호)·충렬묘비명(도지정문화재113호)·동백나무(기념물제74호)와 그 외 충렬사제향홀기·수조도병풍·팔사품도병풍·이충무공 전서·정조대왕의 사제문 등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통영의 꽃은 동백입니다.

그런데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동백은 아직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했기에 아쉬웠는데요, 충렬사의 동백나무는 안타깝게 까지 했습니다.

시도 기념물 74호로 지정된 통영 충렬사 동백나무 중 한 그루가 고사했기 때문이었는데요, 그 나무 주변으로 마삭이 자라고 있었기에 혹 마삭줄 때문인가 싶어 관계자에게 물으니 동백나무 고사 후 마삭을 심었다고 했습니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꽃은 붉은색으로 이른봄에 피는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부릅니다.

충렬사 동백나무는 높이가 6.3m, 둘레가 1m이며, 수령은 약 370년으로 추정되며,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꽃이 피는데, 예로부터 꽃이 유난히 붉고 탐스러워 풍어제를 지낼 때 동네 처녀들이 물동이에 동백꽃잎을 띄워 바쳤다고 하며, 통영시는 시목을 동백나무로, 시화를 동백꽃으로 하고 있습니다.

 

 

 

충렬사 문이 닫혔을 때 주련을 읽을 수 있는데요, 주련에 쓰인 『욕일보천지공(浴日補天之功)』은 노량해전 때 우리 수군과 연합함대를 구성했던 명(明)나라 도독 진린(陣璘)이 이충무공의 훈공을 일러 『 해를 깨끗이 씻고 구멍난 하늘을 때운 공(浴日補天之功)』이라고 극찬을 했던 말에서 따왔으며, 『맹산서해(盟山誓海)』는 이충무공의 정성으로 『산에 맹세하니 풀과 나무가 알고, 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감동하더라(警海魚龍動 盟山草木知)』 에서 따온 글귀입니다.

우리는 문이 열렸기에 참배하고 방명록에 기록도 했습니다.

 

▲ 2012년 1월 1일과 2008년 12월

 

오후 3시입니다.

이제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박경리문학관과 청마문학관은 대부분의 미술관과 문학관이 그러하듯 공휴일일듯 해 스치고 마지막으로 간 곳은 이순신 공원입니다.

이순신공원은 청마문학관과 가까운 거리인 정량동에 있으며, 새해 해맞이 행사를 했더군요.

 

이순신 장군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중 하나인 한산도대첩이 치뤄졌던 곳이 통영인데요, 망일봉 자락에 조성된 이순신공원은 아름다운 통영 바다가 펼쳐진 풍광이 아름다운 공원입니다. 통영의 아름다운 바다와 산을 최대한 활용한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공원내에는 이순신장군동상, 전망데크, 산책로, 전통문화관, 정자(학익정), 잔디광장, 넓은 주차장이 있으며, 이순신 동상 앞으로 전망데크에서 푸른 통영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공원으로 오르는 길엔 메타쉐콰이어 나무가 있는데 봄이 되면 통영 바다와 함께 싱그러워지겠지요.

 

 

동상아래에 필사즉생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 ] 라고 젹혀있는데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는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는 장군의 각오가 서린 명언으로 진해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해사반도의 백두산함(PC-701) 마스트(돛대)앞에 같은 글이 있기도 합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앞 바다위의 '천자총통'은 임진왜란 당시 천자총통에 대장군전을 장착하여 쏘아 적함을 부수는 큰 전과를 거둔 무기라고 합니다.

날씨가 흐려 뚜렷하지 않은데 절벽아래로 바다와 섬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순신공원은 산을 공원으로 만들었지만 바다로 내려갈 수 있으며,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으며 포토존 따위도 있지만, 바람이 불었기에 우리는 짧은 시간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 공원관리사업소 055-650-6560 관광안내소 055-650-4582~6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다시 거가대교를 달려야 했기에 거가대교와 멀지않은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와 기록전시관으로 갔습니다. 오후 4시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 http://www.kysarchives.or.kr/

거제시 옥포대첩로 743

전화번호 055-634-0303

 

전화번호가 0303이네요.

김영삼 대통령 생가는 기록전시관이 건립되기전에 두 번인가 다녀왔으며, 전시관은 이른 시간에 갔기에 관람을 못한적이 있고, 지난 해 봄인가... 그때는 관광버스가 도로에 너무 많아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 오기도 했습니다.

거가대교 개통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와 전시관은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데요, 생가앞으로 노점 할머니들이 이것저것들을 팔았었는데 그 모습대신 건물들이 세워져 거제 특산품 등을 팔고 있었는데, 어느 동네나 유명 인사 한 사람이 나오면 마을 전체를 먹여 살린다더니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습니다.

 

기념관은 2층으로 되어 있으며 김영삼 대통령 일생을 잘 표현해 두었지만, 민주화 운동 부분은 스스로 물거품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투표용지 외부유출이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만, 대통령 당선때 투표용지도 가득 있었으며, 바닥에 막을 쳐 보이겠금 전시를 해 뒀기에 걸음을 옮길 때 바닥이 깨어질까 염려되어 관람객들은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습니다.

 

기록전시관의 내용물은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외포리 대계마을이 김영삼 대통령의 고향인데요, 외포는 바닷가로 멸치와 대구가 유명합니다.

우리는 대계마을 나와 외포항으로 갔습니다.

지난해 봄날 외포항에서 한참 놀았지만 역시 포스트로 이어지지 못했는데요, 봄날 그때는 멸치배가 들어 와 한창 작업중이었었는데, 이번엔 대구와 물매기가 늘어져 있었습니다. 비릿한 바다내음보다는 참 열심히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어촌인데요, 바람이 불고 해 국화빵을 기다리며 사 먹었습니다.

3개 1000원이었는데 비싼편이죠? 그래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습니다.

 

일요일이라 경매가 없기에 대구와 물매기 구입이 가능했는데 대구의 경우 큰늠이 한쌍 6~7만원이었습니다.

알이 있는 암놈보다 고니가 있는 숫놈이 귀하기에 값이 더 비쌌습니다.

 

 

▲ 봄날 외포항 풍경

 

 

오후 5시가 가까웠습니다.

거가대교는 새벽과 달리 차량으로 밀렸으며, 아침에 맞은 그 해는 꼭 그 모양으로 서쪽 하늘에 걸렸더군요.

우리는 밀린 차량들 덕분에 아주 천천히 거가대교를 건넜는데 녹산공단에 접어드니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엄마는 근처에서 국수를 먹자고 했지만, 새벽에 끓인 전복죽이 그대로였기에 우리집에서 전복죽과 낮에 남긴 우렁쉥이로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케익에 촛불을 밝히지 못한 엄마의 팔순생신이지만 모두들 흡족한 하루가 되었는데 무엇보다 고마운 건 포근한 날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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