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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부산 용두산공원 새로웠다

by 실비단안개 2012.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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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늠 출근시키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재봉틀 수리를 위해 부산진시장으로 가야 했거든요.

브라더미싱인데 진해엔 수리하는 곳이 없다나요. 참고로 저는 재봉질을 못하며 아이들이 매일 재봉질을 하다시피 합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었기에 진시장과 자성대부근을 돌았지만 수리점마다 휴무였습니다.

아이들이 들기엔 무게가 있기에 지 아빠 손을 빌려야 하니 국제시장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국제시장에 포목점이 있으니 재봉틀 수리점도 있을거야. 그런데 국제시장의 재봉틀판매점도 휴무였기에 두리번 거리다 가방수리 등을 하는 분에게 재봉틀 수리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선뜻 주인을 부러 주었기에 재봉틀을 맡겼습니다.

 

우리 나온김에 용두산 공원에 갈까?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재봉틀을 맡기고 구덕골장터만 구경하려고 맨발에 꽃신을 신었거든요.

 

3개월에 한번씩 부산에 가지만 용두산공원엔 아주 어쩌다 가는데 근래엔 그마져도 포기하고 친구 만나 겨우 밥 먹고 돌아옵니다.

대망의 2000년 시작을 맞는 타종식 구경을 하러 얼라아부지와 밤중에 용두산공원으로 갔으며, 몇 해전 큰늠과 잠시 놀기도 했지만 식구들과 정말 오랜만입니다.

우리가 영주동 살 땐 걸어 다녔으며 국제시장 등에 갈 때 필수코스처럼 다녔던 공원이건만 진해시민이되니 부산에서 즐기는 일이 갈수록 줄어 듭니다.

부산, 계단에서 시작하여 계단으로 마무리되는 동네가 부산이며, 용두산공원도 좋은 길이 있긴 하지만 계단을 이용해야 진짜 용두산 공원에 가는 거거든요.

광복동에서 에스컬레이트(194계단)를 이용할 수 있지만, 우리는 주차후 대청동 중앙성당에서 올라 갔습니다.

 

공원내도 그랬지만 가는 가는 길 양쪽의 은행나무가 수려했습니다.

큰늠 나이가 29세며 그늠 태어나기전부터 있던 나무들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참 새로웠습니다.

구덕골장터 맞은편과 대신공원에도 詩碑 여럿 있는데 은행나무길을 따라 詩碑가 있습니다.

 

 

詩碑는 유치환 '그리움', 최계락 '외갓길', 장하보 '원', 홍두표 '나는 곰이로소이다', 조향 '에피소드', 손중행 '세월', 김태홍 '잊을래도', 박태문 '봄이 오면', 원광 '촛불' 등입니다.
유치환 선생(1908~1967)은 유명한 시인이지만 친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분이지만 여러 지역에 시비가 있으며, 최계락 선생(1930~1970)은 시인 겸 아동문학가로 꽃씨, 꼬가신 등이 있으며, 부산 동래 금강공원에<꽃씨> 시비가 있고, 대신공원에 <해변>, 부산 용호동 이기대공원에 <봄이 오는 길>, 진주시 신안동 녹지공원에 <해저문 남강>, 용두산 공원에 <외가길> 시비가 있습니다.

 

 

외갓길 /최계락

 

복사꽃 발갛게
피고 있는 길
파아라니 오랑캐가
피어 있는 길
엄마한테 손목 잡혀
나서 첨으로
하늘하늘 아가의
외갓집 가는길은
나비가 앞장서는
붉은 언덕길
바람이 앞장서는
파아란 들길

부산 용두산공원은 용두산으로 옛부터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현산, 초량소산이라고도 하였으며, 산의 형세가 용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가는 용의 머리에 해당한다하여 용두산(龍頭山)이라고 불렀습니다. 광복 후 한국전쟁기에는 국립국악원, 중앙정부기관 일부와 피난민들의 판잣집들이 있었으나 1954년 12월 용두산 대화재로 불타고, 그 후 녹화사업이 이루어져 1957년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서 우남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60년 4.19혁명 후 1966년 용두산공원으로 환원되었습니다.

1972년 지방문화재 제25호 지정되었으나 1993년 지방문화재 제25호 해제되기도 한 부산과 함께 파란만장한 사연을 간직한 부산의 대표공원입니다.

 

시비와 함께 대표시설로는 부산타워와 팔각정, 백산안희제 흉상, 꽃시계, 이순신장군 동상, 시민헌장비, 용탑, 초량왜관비 등이 있는데 용두산에는 조선후기 초량왜관(1678~1876년)이 있었으나, 1876년 개항이후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조성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부산부의 중심지이자 항일독립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1973년 설치된 부산타워는 부산을 상징하는 탑으로 해발 69m, 높이 120m로 세워졌으며, 부산타워 꼭대기의 전망대는 경주 불국사 다보탑 지붕에 얹혀 있는 보개(寶蓋)를 본떠 만든 것으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부산시는 장관이며 현재 페인트 작업중이었습니다.

 

용두산공원의 유명한 꽃시계입니다.

부산 용두산공원의 꽃시계는 전국적으로 18개소에 설치되어 있는 꽃시계 중 유일하게 초침이 있는 것으로 꽃밭의 큰시계가 경쾌하게 움직이기에 관광객들은 꽃시계를 배경으로 풍경이 되기를 서슴치 않습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은 진해 북원로타리에 세워졌으며, 용두산공원에는1956년 3월 20일 세워졌는데, 설치자는 경상남도 도지사 이상용입니다.

1963년 경남에서 분리되기전까지 부산은 경상남도였기때문입니다.

1896년 8월4일(고종 33년 건양원년) 경상남도 관찰부 수부 소재지를 진주부에 설치

1925년 4월1일 일제강점하 진주에서 부산 부민동으로 이전

1963년 1월1일 부산의 직할시 승격으로 경남에서 분리

 

동상수록 내용입니다.

"여기 서 계신 어른은 우리 겨레와 함께 영원히 가시는 거룩한 지도자 충무공이시다. 그는 오색 찬란한 꺼지지 않는 민족의 태 양이니 진실로 우리들의 자랑이요 영광이요 또 힘이요 생명이시다. 일찍이 이조 인종(서기1545)삼월 초팔일 서울에서 나시어 오십 사년간 누리시고 선조삼십일년(서기 1598)십일월 십구일 새벽 노량 바다에서 적탄 아래 돌아가셨으나 그 무렵 무너지는 나라를 한 손으로 떠 받으신 위대한 은공을 강산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 것이요 동포를 위하여 뿌리신 피는 자자손손 만대의 혈관속에 흘러 드신 것이다.

그의 동상을 구태여 이 곳에 세우는 뜻은 저 임진란때 왜적이 이 땅에 첫발을 올려 놓은 곳이 바로 여기였기로 그날의 고난을 뼈저리 게 기억하자 함이요 또 여기가 이 나라의관문이라 예서부터 인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국토수호의 피어린 정신을 안팎으로 나타내자 함이니 겨레여 가슴마다 임은 살아 계시니이다. 강산에 서리신 뜻은 천수만대 푸르리이다.

단기사천이백 팔십오년 십이월 이십이일. 김경승은 조각하고 이은상은 글을 짓고 동명서예원 오제봉은 글씨를 쓰고 경상남도 지사 이상룡은 도민 전체에 힘과 정성을 모아 여기에 삼가 이 동상을 모셔 세우다.
"

 

 

시민의 종앞에서 공연이 있는듯 우리가락이 흐르더군요. 

부산시민의 종은 100,733명의 부산시민의 참여로 1,280백만원의 기부금을 모아 종무게 25톤, 종높이 3.8m 구경 2.3m, 종각 165㎡의 규모로 1996년 12월 31일에 부산의 상징인 '부산시민의 종'을 1996년 건립하였으며, 매년 3ㆍ1절, 광복절과 매년 1월 1일 0시에 서울 보신각종처럼 부산의 각계 인사와 시민들이 모여서 제야에 타종식을 거행합니다.

2000년 1월 1일 0시 대망의 2000년 맞아 크게 타종식을 했는데 한때 부산시민이었다보니 우리는 늦은 밤 부산으로 가 여객선터미널에 주차를 하고 용두산공원까지 걸어 현장에 있었습니다.

 

 

백산안희제 선생 흉상입니다.

백산 안희제(1885~1943) 선생은 3 ·1 운동 직전 기미육성회를 설립, 동아일보 창간주제 중외일보발간 등의 일제의 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상황에서 민족교육, 민족기업육성, 항일언론 등 다방면에 걸쳐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활동한 민족독립 운동가입니다.

현재 백산기념관이 있는 자리에 백산상회를 설립·운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였으며, 백산상회를 백산무역 주식회사로 확장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외 독립운동 단체에 활동자금을 지원하였습니다.
현재 기념관은 95년 8월 15일 개관하여 부산. 경남지역 독립운동의 교육장이 되고 있으며, 전시장에는 선생의 유품과 당시 구국운동 자료 등 80여 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 독립운동 자금 조달의 젖줄, '백산상회(白山商會)'와 안희제 선생

 

용탑이 보이며 관광버스가 주차되어 있는데요, 용두산공원은 우리나라 관광객도 많지만 중국과 일본 단체관광객이 많기에 승용차는 진입금지지만 관광버스는 진입이 가능합니다.

 

 

▲ 용탑 : 1973. 10. 9 설치. 용탑을 설치하여 부산시민의 기상을 널리 알리고자 위함임.

 

편의점입니다.

입구에 부산항 변천사가 있으며, 우리나라 민속품 등을 판매하는데 이용고객은 주로 일본인 듯 우리가 들어서니 일본말로 어서오세요 하더군요.

 

 

 

팔각정은 북카페 및 휴게실(1층) 및 세계민속악기박물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산의 과거모습입니다.

마치 다른 나라의 풍경을 보는 듯 하더군요.

 

 

사진으로 봐선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 곳인데요, 부산역과 자갈치시장입니다.

1926년 부산역과 1920년대 남빈(자갈치)해수욕장으로 사진은 김한근 부경근대연구소장이 제공했으며, 우리나라 근대건축물은 대부분 일본에 의해 지어졌기에 다양이지만 한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시관엔 그림전이 있으며, 세계모형배전시관엔 세계의범선, 한선, 상선, 어선, 군함 등 80여점이 전시중이며, 세계악기 박물관에는 총90개여국 400여점(현악기,관악기,타악기)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체험코너입니다.

입구에 부산관광홍보대사 최지우 상과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고호가 그린 내 모습과 연필스케치 등을 컴퓨터로 그려주며 액자로 구입이 가능합니다.

 

 

더운 날이었기에 지쳤지만 우리는 계단을 걸어 내려왔는데 예나 무료급식소앞은 일요일임에도 급식을 하고자 하는 다양한 연령층이 줄을 서기도 하고 모여있기도 했기에 조금전까지 누렸던 부산여행의 감흥이 깨졌지만, 돌아 와 돌아보니 괜찮은 시간이었기에 우리는 국제시장과 용두산 공원의 오래전 이야기를 했습니다.

- http://yongdusanpark.bisco.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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