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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가 돋보이는 남해 이락사 첨망대

by 실비단안개 2012.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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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진해탐방13팀 틈새답사 남해편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중 하나인  남해대교를 지나 남해읍을 향해 4Km 달리다보면 오른편에 남해 제 5경인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사적 제232호)'가 있습니다.

이락사앞의 영상관이 휴관일이라 아쉬웠는데요, 2008년 12월에 개관한 이순신 영상관은 국내 유일의 이순신 관련 복합미디어 전문전시관으로 666.86㎡의 전시공간을 갖추어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순국한 관음포만 일대는 우리 나라 최고의 호국성지입니다.

이곳은 몽고의 침략을 불력으로 물리치기 위한 고려대장경의 목재를 들여왔던 곳이며, 관음포대첩과 노량해전이라는 두 번의 해전이 치뤄졌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락사 앞 뜰에는 유언비(戰方急 愼勿言我死. 1988년 해군참모총장 류삼남 씀)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 있고, 이락사가 순국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장군이 전사한지 234년이 지난 1832년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8대손으로 통제사가 된 이항권이 이곳에 나라를 지켰던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와 비각을 세웠으며, 이곳에는 육송이 많게는 10개에서 적게는 4개의 가지가 땅에서 바로 가지를 벌린 채 4~50미터의 오솔길을 이루고 있습니다.

 

 

▲ 거북바위위의 유언비

 

 

'이락사' 현판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大星隕海'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린 비각이 있는데, '大星隕海'란 "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는 뜻이며, 비각에서 첨망대까지 연결된 솔밭길은 500m에 이릅니다.

 

 

 

500m에 이르는 솔밭엔 리기다소나무와 육송 등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으며, 누군가 풀꽃으로 하트모양을 만들어 뒀기에 잠시 쉬었습니다.

하트 아래부분을 보면 바다와 설천면이 보였기에 고성의 기생 월이 이야기가 이어졌으며, 이어 남해도 월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데 기생이라는 말이 전해지기도 하지만 인물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듯 하지만 두류문화연구원 최헌섭원장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월이는 당시 무기정 가까이에 있던 술집에 속한 기생이랍니다. 월이는 임진왜란 전에 이곳 해안 일대를 정찰하던 일본의 첩자가 술집에 들렀을 때, 그가 작성하여 휴대하고 있던 지도를 빼내어 당항포 일원의 바다를 수남동과 이어지게 표시하여 지금의 고성군 동해면과 거류면, 통영을 섬으로 둔갑시켜 버렸습니다.

다만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남해의 관음포에도 전해지고 있어 살펴봅니다. 바로 유성룡의 바보 아제(아저씨)인 유치숙(柳稚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유치숙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바보 행세를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몇 해 전에 남해 일원의 지형을 정찰하기 위해 조선에 온 일본의 첩자가 남해에 들렀을 때, 그를 술에 취하게 한 뒤 지도를 몰래 빼내어 관음포에서 그 너머의 설천면 비란리 해안을 바다로 표시하여 설천면과 고현을 섬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뒤에 이 지도를 바탕으로 작전을 펴던 일본 수군은 관음포와 가칭이고개 아래서 궤멸되니 이것이 바로 노량해전입니다. 가칭이고개는 일본 수군이 여기 갇혀서 궤멸된 곳이라 그렇게 불린다고 전해진답니다."(출처 : http://www.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53463)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첨망대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순국하신 옛자리를 보면서 장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원진 첨망대는 2층 팔작지붕으로 1991년 2월 16일 건립했습니다.

 

 

첨망대에 오르면 관음포와 광양과 여수가 바로 보이는데 여기서 배려를 볼 수 있습니다.

첨망대 아래의 큰소나무 두 그루가 베어져 있는데 상식에 가까운 일이지만 조망권을 존중해주는 듯 했기에 좋았습니다.

 

 

 

6월 7일 진해탐방팀은 웅천왜성 답사시간을 가졌는데 웅천왜성은 웅천 남문동의 남산(해발184m) 산봉우리에서 능선을 따라 산기슭까지 뻗친 석성으로  임진왜란 때인 1593년 소서행장이 구축하여 수비하던 곳으로 정유재란에 재침하여 다시 구축하였다고 하며, 1985년 1월 14일 경상남도기념물 제7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진해의 대다수 문화재는 관리가 되지 않는데 웅천왜성도 예외가 아닙니다.

웅천왜성 정상에서 바라보면 수도 등 진해의 섬과 거제가 보이며 신항 매립현장이 보이는데 웅천왜성 아래의 잡목으로 조망권을 박탈당한 기분입니다.

이 나무가 보호수 정도 된다면 잘라라 마라 않겠지만 잡목이기에 과감하게 잘라 웅천왜성을 찾는이들이에 앞바다를 보도록 해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첨망대의 소나무를 보니 배려가 돋보여 인상깊었습니다.

 

▲ 웅천왜성(경상남도기념물 제79호)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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