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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만의 해갑도와 거북등대 다시 만나다/전쟁의 시작, 한산도대첩

by 실비단안개 201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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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2일 토요일 약간흐림

전쟁의 시작, 한산도대첩 5 - 해갑도와 거북등대 / 길 위의 인문학(마산도서관)

 

하룻길에 이렇게 여러편의 글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산도서관의 [길 위의 인문학] '전쟁의 시작, 한산도대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톱할아버지를 만나고 버스에 올라 제승당으로 가기위해 여객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여러사람이다보니 승선시 시간이 걸리기에 여유롭게 여객터미널에 도착했음에도 세월호 참사후 여객선 승선이 까다로워졌기에 주민등록증을 꺼냈으며, 승선권에는 연락처까지 기재되어 있었을 정도며, 승선후 배는 바로 출항했습니다.

왜 소를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는척 하는지 답답하고 슬픈 우리나라입니다.

 

오후 2시 20분즘 통영과 한산도 제승당을 오가는 시·파라다이스호는 한산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대략 30분즘 걸리는 거리니 멀지않은 거리인데 그동안 통영에 많이 오갔으면서 한산도는 성인이 된 후 처음갑니다.

거가대교 개통 이전에는 안골에서 거제로 가는 배를 탔었는데, 거가대교 개통후 풍양아일랜드호가 없어졌기에 오랜만이라 한산도길이 막 설레었는데, 일행이 많았고 얼라아부지까지 있었다보니 좋아하는 카푸치노도 한 잔 마시지 못 했지만 그래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한산도 가는 길에 있는 거북등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한산도와 충무로 갔었는데 태어나 처음 본 거북등대는 꿈에서 본 듯 아련했는데 이제 볼 수 있는 길에 섰습니다.

당시 우리는 군함을 타고 수학여행을 갔으며 제승당에도 갔었는데 워낙 어릴 때 기억이라 가물합니다만, 2011년 3월 우리 동창들은 초등학교 졸업 40주년 기념여행으로 통영으로 1박 2일 여행을 했지만 추억여행시 제승당에는 가지 못 했기에 추억의 거북등대도 만나지 못 했는데 이렇게 만날 기회가 주어지네요.

- 동창들과 40년만의 1박 2일 추억여행

 

시·파라다이스호가 오가는 통영만과 한산만 바닷길과 한산대첩지입니다.

 

 

 한산도 대첩(閑山島大捷)은 1592년 8월 14일(음력 7월 8일) 선조 25년 한산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육전에서 사용하던 포위 섬멸 전술 형태인 학익진(鶴翼陣)을 처음으로 해전에서 펼쳐 큰승리를 거둔 해전입니다.

 

한산대첩이 있기 하루 전날인 1592년 8월 13일(음력 7월 7일)조선함대는 동풍이 크게 불어 항해하지 못하다가, 저물 무렵 고성 땅 당포에 이르러 머물렀는데, 이때 미륵도의 목동 김천손(金千孫)이 와서 '일본군선 70여 척이 오늘 오후 2시쯤 영등포 앞 바다를 지나 고성과 거제도의 경계인 견내량에 머물고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었으니 김천손은 한산대첩의 숨은 인물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 무의공 이순신, 어영담, 김완, 배흥립, 이영남, 송희립 등이 전투에 참가했으며, 한산해전의 결과를 종합하면 조선함대는 일본의 대선 35척, 중선 17척, 소선 7척 등 59척을 격침 또는 나포하였고, 나머지 14척 만이 겨우 탈출해 돌아갔습니다. 이 해전에서 일본함대를 지휘한 와키자카는 구사일생으로 도주하였습니다.

 

한산만을 헤쳐 한산도 제승당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섬입니다.

저 섬에서 한일주일만 쉬고싶다는 생각이 든 섬은 상하죽도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성지역도 그렇지만, 상하죽도도 당시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서 그 대나무(해죽海竹--시누대)를 베어 활로 썼다 합니다.

마치 무인도 같았던 섬은 시·파라다이스호가 한산도에 가까워질수록 정체를 드러냈는데 이미 사람의 손은 탄 섬이었습니다.

 

한려수도 중심지인 경남 통영의 7개 섬이 각각 입지적 잠재력을 통한 차별화된 일곱빛깔 '관광 섬'으로 재탄생하는데, 경남도는 경남 미래 50년 사업의 하나로 올해부터 2018년까지 968억원을 투입, 통영의 7개 섬을 자연치유·창작예술·생명 등 특색 있는 섬으로 조성한다고 밝혔는데, 7개 섬은 봉도, 납도, 내초도, 수우도, 용초도, 상하죽도, 송도입니다.

홍준표 지사도 통영시 순방시 "통영을 국제적인 해양문화 관광도시로 육성하기 위해, 테마가 있는 관광 섬 개발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힐링공간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통영시는 지난해 12월말 개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수립 용역을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인간의 손을 타면 그때부터 힐링이란 말은 멀어지게 되는데, 테마가 있는 관광 섬 개발이 통영의 섬을 망가뜨리는 데 일조를 하지 싶습니다.

아무튼 그 일곱개의 섬 중 하나가 상하죽도인데 간조 시 상죽도와 하죽도가 연결되는 상하죽도는 '해양체험의 섬'으로 개발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요트에서 손을 흔들기에 저도 힘껏 흔들어 주었는데 이 버릇은 어릴때 등하교시 가끔 다녔던 차량을 향해 손을 흔들었던 데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이곳은 사람이 귀해 그리웠던 그런 시골이었거든요.

 

 

이어 만나는 섬은 해갑도(解甲島)입니다.

해갑도를 처음 만났을 때 마치 녹 슨 철모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군생활을 한 경험이 없음에도 비목이 쓰고 있는 그 철모가 생각났습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 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뜬금없는 생각을 쏟아 옆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데는 정말 뭐가 있는데요, 돌아오는 길에 본 해갑도는 또 다른 모습이었으며, 녹 슨 철모 모습은 한산도로 가는 길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해갑도(解甲島)는 상하죽도와 마주보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최초로 올라 갑옷을 벗고 땀을 씻은 섬이라고 합니다. 

섬의 모양이 게의 등처럼 생겼다고 이 고장 사람들은 '게딱까리섬'이라고도 하는데, 蟹는 게해자로 씸벙개딱지처럼 생긴 섬인데,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최초로 올라 갑옷을 벗었다고 하여 풀어 헤칠 解로 변하여 갑옷을 벗었다라고 변했다고 합니다.

지명이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지명은 가급적 옛 우리말지명 그대로 이어지면 좋지않을까 생각합니다.

 

 

한산도에 곧 닿을텐데 거북등대가 나타났습니다.

어릴때 봤던 그 거북등대지만 생각보다 훨씬 작은 거북등대는 한산대첩지 바다 암초위에 1963년 12월에 세운 것으로서 한산대첩지가 여기임을 알려주고 있으며, 항해하는 선박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성금으로 건립된 거북등대의 거북의 머리는 일본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격전현장이었기에 수많은 영혼들이 이 바다에 잠들어 있기도 합니다. 묵념!

 

2009년 가덕도 등대방문시 알아 본 등대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자의가 아닌 타국의 힘에 부쳐 등대를 세웠지만, 설사 그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후에 우리의 필요에 의해 등대를 건립했을 테지만, 우리나라 등대의 역사는 우리 근대사와 맞물려 있는 슬픈 역사입니다.

 등대의 역사
1876년에 이루어진 강화도조약은 우리나라를 쇄국주의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한 사건이었다.
그뒤 개항장을 드나드는 제국주의 침략세력은 이권을 먼저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용기를 얻은 일본은 개항장을 통하여 한일 양국간의 선박 왕래가 날이 갈수록 빈번해졌는데 한국 연해의 요소에 등대나 초표가 설치되지 않아 불편한 점이 많다며 등대건립을 촉구하는 외교문서를 보내온다.

또한 등대건설위치선정을 위한 측량선의 인천 도착 날짜를 통보하니 협조원을 보내라는 독촉도 하였으며 각 항구에 출입하는 상선으로부터 징수하는 관세를 등대건설에 충용하라는 제의도 하였다. 또한 러시아 영국으로부터도 비슷한 요구가 있었다.등대의 효용성을 알고 있었지만 극심한 재정난으로 난감해 오던 우리 정부는 결국 열강의 강권에 못 이겨 1902년 인천에 해관등대국(海關 燈臺局)을 설치하고 그 해 5월부터 팔미도, 소월미도, 북장자(北長子) 등대와 백암(白岩) 등표(燈標) 건설에 착수해 1903년 6월에 이를 각각 완공하였다. 이것이 우리 나라 등대의 효시이다. 결국 우리 나라를 넘보던 열강들의 이양선(異樣船) 길잡이 역할을 해 주기 위한 바다의 이정표(里程標)로 등대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출처 : 등대와 바다 http://www.lighthouselove.com/index.jsp)

 

거북등대뒤로 두억리의 한산대첩비가 있지만 일정에 없었기에 답사를 하지 못 했는데, 두고두고 그리운 풍경이 될테니 시간내어 하루 빨리 한산대첩비를 만나러 가야 겠습니다.

 

 

바닷길을 약 30분 헤쳐 한산도 제승당항에 닿았습니다.

시·파라다이스호
통영여객터미널-한산도 제승당
운항시간 : 7:00~18:00
요금 (편도) : 성인 5,250원 청소년 4,800원 경로 4,300원 소아 2,600원
                승용차 9,400원~13,200 관광버스 49,000원
1시간 간격 운항 25분 소요
문의 : 055-645-3329

 

제승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산대첩비와 거북등대 안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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