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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낙동江과 팸투어·답사

명당(합천 조식 생가)옆집에서 먹은 도토리묵의 참맛

by 실비단안개 2014.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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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화요일 살짝 덥긴했지만 지칠 정도는 아니었음.

 

경남도민일보 해딴에서 이끈 '경남 이야기 탐방대 합천편 - 블로그'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주관하는 '경남·부산 이야기'중 하나인 합천 남명 조식 선생 유적을 찾았습니다.

탐방대 블로거는 5인이었지만, 두 분이 개인사정으로 불참하였기에 달그리메 님, 선비 님과 함께 김훤주 대표가 운전하는 차량으로 합천으로 이동하였습니다.

2년전 이맘때 블로거 팸투어때 남명 조식선생이 후학을 가르쳤던 뇌룡정 등을 둘러 봤지만 당시 따로 포스팅을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제가 학습이 짧다보니 남명 선생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찾은 어제였지만 그렇다고 팍 와닿지 않았기에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합니다. 

마산까지 나가려면 2시간을 잡아야 하기에 어딜가면 늘 동동거리게 되는데, 어제는 버스시간이 잘 맞아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경남도민일보를 보고 있는데 달그리메님이 왔기에 해딴에 사무실로 이동하여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데 선비님이 오셨기에 우리는 커피가 든 유리컵을 들고 차를 탔으며, 합천에 도착한 블로그 탐방대는 뇌룡정·용암서원·양천강·남명 생가·삼가장터삼일만세운동기념탑·향교를 둘러봤습니다.

 

남명조식선생은 이황선생과 동시대를 살았던 분으로 은둔생활, 학자, 후학양성 등 비슷한면이 많은데 이황선생에 비해 조식선생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우스개로 돈(지폐)에 남명조식선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두 분은 같은해 태어났으며, 이황선생이 조금 먼저 저 세상으로 가셨는데, 두 분은 쌍벽을 이루는 학자입니다.
퇴계이황은 성리학을 추구한 반면 남명조식은 여러 학문을 접하는데 일명 남명학파라고 하며, 임진왜란때 의병장은 남명조식선생의 제자가 가장 많았다고 하는데 곽재우는 외손녀사위이며 제자이고, 정인홍, 김우홍, 김천일 등도 제자라고 합니다.

조식과 제자들은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에 그치지 않고 배운것을 실천하는 선비입니다.

 

조식(曺植, 1501년 7월 10일(음력 6월 26일) ~ 1572년 2월 21일(음력 2월 8일))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어려서부터 학문 연구에 열중하여 천문, 역학, 지리, 그림, 의약, 군사 등에 두루 재주가 뛰어났다. 명종과 선조에게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한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조식(曺植)의 자(字)는 건중(楗仲)이며, 경상도 삼가현 사람이다. 한미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와 숙부가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비로소 관료의 자제가 되어 사림파적 성향의 가학을 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30세까지 서울 집을 비롯한 부친의 임지에서 생활하며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혔고, 후에 명사가 된 인물들과 교제하였다. 조선 중기의 큰 학자로 성장하여 이황과 더불어 당시의 경상좌·우도 혹은 오늘날의 경상남·북도 사림을 각각 영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유일(遺逸)로서 여러 차례 관직이 내려졌으나 한번도 취임하지 않았고, 현실과 실천을 중시하며 비판정신이 투철한 학풍을 수립하였다.

 

그의 제자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인홍, 김우옹, 정구 등 수백명의 문도를 길러냈으며, 대체로 북인 정파를 형성하였다. 사후 사간원대사간에 추증되었다가 북인 집권 후 1613년(광해군 7년) 의정부영의정에 증직됐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더 자세히 알기 : http://ko.wikipedia.org/wiki/%EC%A1%B0%EC%8B%9D_(1501%EB%85%84


남명조식선생생가지(南冥曺植先生生家址:경상남도 기념물 제148호)는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에 있습니다.

생가 건물의 건립년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생가 건물은 70년도에 새마을 사업시 철거하였다고 하는데 새마을 운동은 경제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소중한 많은 것들을 쓸었습니다. 

마을 경노당옆길을 따라 올라가면 알알이 영근 석류나무가 나오며 두갈래길이 있는데 오른쪽 길을 따라 약간 오르면 생가지가 있습니다.

생가는 아직 정리가 되지않은 상태며 복원생가옆에 키가 유난히 큰 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가을하늘과 잘 어울렸습니다.

생가는 주변보다 터를 더 파 복원이 된듯 한데 나무는 원래 자리 그대로 있기에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웃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터보다 아래에 복원된 생가도 3~5센티 아래에 복원이 되었다고 하니 키큰 나무는 남명조식선생이 태어난 한참 후에 심어진 나무입니다.

 

남명 조식선생은 1501년 7월 10일(음력 6월 26일) 조선 연산군7년 경상도 삼가현 토골(현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토동)에서 승문원 판교 조언형과 인천이씨(충순위(忠順衛) 이국(李菊)의 딸)의 3남 5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와 쌍벽을 이루는 퇴계 이황선생도 같은 해에 태어났습니다.

원래 이곳은 인천 이씨 종가로 풍수에 따르면 선생의 외가는 명당 자리로 닭의 해에 태어나는 아기는 현인이 된다고 하였는데, 그런 예언 때문인지 선생이 태어나던 날 우물에서 무지개빛이 뻗쳐 온 방을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복원중이기에 아직은 사람냄새가 없는 그런 집채일 뿐입니다만 명당 자리라고 하니 일행은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일행이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들일을 하시길래 인사를 하니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여 주었습니다.

생가윗쪽으로 보이는 산이 부엉이가 살았다는 붕덤산으로 지금도 부엉이가 있다고 하며, 옆으로 누운 산새는 독사머리를 닮았으며, 산에 올르면 생가터가 잘 보이는데 마치 토끼가 자고 있는 듯 하다고 합니다.

토끼가 모로 자는 모습중 생가터는 토끼의 배쪽이며, 아주머니의 집은 토끼의 가슴부분으로 등산로가 있으니 산에 올라 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런 정성까지는 보이지 못 했습니다.

아주머니께서 도토리묵을 먹을런지 물어 봤기에 일행에게 고하니 그러자고 하여 앞서가는 아주머니를 따랐습니다.

 

 

석류나무가 있는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남명선생의 생가터가 있으며, 왼쪽으로 가면 아주머니댁이 있습니다.

 

 

외토리와 주변은 아주 한적했으며, 빈집도 눈에 띄었는데 이런 집 구입하여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공기가 맑았으며, 은둔(?)생활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고장같았습니다.

밭뙤기 조금 있다면 푸새심어 욕심 내리고 살고 싶다는 이 마음 또한 저의 욕심입니다.

 

 

이 도토리는 향교 아래집에서 찍은 건데 산이 깊다보니 도토리가 많은 모양입니다.

산행시 입구에 걸린 도토리는 다람쥐에게 양보하세요 이런 문구는 보지 못 했습니다.

 

 

아주머니댁에는 도토리가 가득 물에 불려지고 있으며, 또 한켠에는 이렇게 가라앉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도토리묵 두접시를 내어 왔습니다.

우리 같으면 누가 집에 들어오면 쓸고닦기 바쁜데 아주머니는 있는 그대로를 우리에게 열어 보였으며, 주방출입도 막지 않았습니다.

도토리묵과 간장이 상에 놓였는데 도토리 참맛을 느끼고 싶다면 양념장에 찍지말고 도토리묵만 먹어보라고 하더군요.

가정집에서 직접 만든 도토리묵이지만 쓴맛은 아주 약간 느껴질뿐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도토리묵을 먹을 때 양념장에 찍거나 끼얹지말고 도토리묵만 먹어보시기 바랍니다. 입에 맞지 않으면 양념장을 추가하면 되니까요.

 

 

우리는 곧 점심식사를 해야 했지만 도토리묵 두접시를 게눈 감추듯 했습니다.

 

 

 

 

 

마당에 단감이 익고 있습니다.

골목을 오를 때도 익은 감이 떨어지지기도 했고 손에 잡히기도 했으며, 누군가를 위해 그랬는지 익고 있는 감을 집주변의 높은 곳에 놓아 두기도 했더군요.

빨리 익도록 칼집을 넣어 올려두기도 했기에 만져보니 덜 익은 듯 하여 그대로 두고 왔으며, 아주머니네 단감은 하나씩 맛을 봤습니다.

다음에 오는 길에 똘 들리라고 하시는 아주머니, 명당 자리옆도 명당인가 봅니다.

명당이 별겁니까.

인심나는 곳이 명당이지요.

따뜻하고 소박한 대접을 받고 나오는데 아저씨께서 외출에서 돌아오십니다.

강아지도 졸래졸래 뒤따라.

 

▲ 두 분은 해설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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