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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부모님과 남해(독일마을, 어부림) 둘러보기

by 실비단안개 2015.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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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초에 남해 벚꽃 만나러 가자고 했는데 비가 내렸으며, 텃밭일로 어제서야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남해로 갔습니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하동의 밥집에서 재첩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한국의 아름다운 길 남해대교를 지나 아버지 어머니 산소로 갔습니다.

설날 성묘때 꽃을 가지고 가지 않았기에 정신들여 챙겼으며, 산소와 주변에 자란 큰풀을 잘라주었습니다.

친정부모님도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절을 하고 잠시 앉아 과일 등을 먹고 비어있는 시댁으로 갔습니다.

남해는 마늘이 특산물이다보니 요즘이 마늘쫑을 뽑을 때라 옆집 은정이 할머니를 뵈러가니 계시지 않았는데, 할머니도 마늘쫑을 뽑으러 가신 모양입니다.

마당엔 잡풀이 어지럽게 자라고 있었기에 대충 뽑아주고 마루를 쓸고 마늘망 등 농사에 필요로한 것들 몇을 챙겼습니다.

어머니 가신지 벌써 십년째며 아버지 가신지 삼년이 넘었습니다. 쓸쓸하고 외로운 남해집입니다.

친정아버지는 내가 시집갈때 남해댁에 데려다 주었기에 두번째며, 엄마는 첫걸음입니다.

엄마는 내내 우리 시어머니 말씀을 하였습니다.

 

 

몇년전에 아버지께서 지나가는 말씀으로 남해 독일마을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였기에 독일마을로 갔습니다.

큰길이 아닌 뒷길(?)로 올라 독일마을 표지석이 있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차를 돌려 원예예술촌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남해 독일마을과 원예예술촌을 찾았기에 주차하기가 수월치 않았습니다.

 

2년전인 독일마을 옥토버 페스트(Oktoberfest)때 행사장이었던 자리에 파독전시관이 세워졌습니다.

두어번 티비에서 본 독일마을의 파독간호사 길자 할머니를 혹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웃거렸지만 길자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파독전시관의 입장료는 천원이었으며,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생활상이 영상으로 소개되고 있었고 당시의 모습과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파독 간호사하면 왜 울컥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상을 볼때도 울컥했네요.

 

독일마을은 조국 근대화를 위해 파독 근로자로 나갔던 교포들이 여생을 고국에서 보람되게 보내고자 하나둘 정착하는 곳으로 지금은 역사 속의 한 페이지로 묻히고 있지만, 파독 간호사와 광부는 한국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었습니다.

 

독일마을은 남해군(http://www.namhae.go.kr/)이 1997년 11월 독일 북부 도시인 노드프리슬란트와 자매 결연을 맺으면서 밑그림이 그려졌고, 남해군은 교류 과정에서 독일에 근로자로 나간 교포들이 조국의 향수를 잊지 못한 채 퇴직 후 귀국하여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교포들은 30여 년이 지났기에 문화나 생활 환경이 이미 독일인처럼 굳어 있어, 귀국해서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함께 모여 살면서 몸에 익힌 독일식 생활 양식을 한국에 전파하고 힘을 합쳐서 무엇인가 보람된 일을 하기를 희망했습니다.

 

남해군은 교포들의 이러한 바람을 현실화시키고자, 2000년부터 독일 교포 정착마을 사업을 계획하여, 부지는 2000년 6월에 해안 경관이 아름다운 데다가 ‘물건 방조 어부림’이라 불리는 크고 좋은 숲을 갖춘 상동면 물건리의 약 2만 7000평으로 정했습니다.

 

 독일마을 정착 희망자를 모집하기 위해 독일의 베를린, 마인츠, 본, 함부르크, 카셀 등지에서 네 차례 설명회를 개최했으며, 자격 요건은 독일에 간호사나 광부로 파견 나가 20년 이상 거주한 교포로 한정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2002년 6월 다섯 가지 유형의 독일식 주택 표준 모델 선정과 함께 150평 안팎의 64필지를 분양했습니다.

 

독일마을 앞으로 펼쳐진 방조어부림의 시원한 바다와 남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드라이브코스인 물미 해안도로와 더불어 남해 보물섬의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한 독일마을은 드라마 촬영장이기 되기도 했으며, 주말과 휴일에는 많은 외지인들의 여행지가 되기도 합니다.

 

 

독일마을 기공식 풍경도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생활용품을 비롯 독일에서의 생활전반이 물품과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화장실도 이국풍경이며, 옆으로 독일공방과 맥주집이 있었는데 우리는 구경이나 하자며 들어 갔다가 아버지께 맥주 한잔을 시켜드렸습니다.

 

 

음료와 맥주, 안주, 빙수 등을 팔고 있었지만 시계가 12시가 지났기에 우리는 미조 바닷가에서 식사를 해야 했기에 맥주 한잔으로 엄마와 아버지께서 나누어 드셨습니다.

 

 

처음 남해 독일마을 방문은 2008년이었으며, 당시엔 영업장이 없었으며 지금 만큼 여행객도 없었는데 그 사이 독일마을은 맥주축제를 하며, 인터넷으로 알려지다보니 이제 철을 가리지않고 많은 관광객이 독일마을을 찾고 있습니다.

수요에 따라 공급이 필요하다보니 음료나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지금도 공사중이며, 물건리마을까지 독일집 주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현재 거주 가구수는 20여가구라고 하니 주인보다 객이 더 많아지는 독일마을입니다.

 

 

독일마을에서 내려다본 물건 어부림입니다.

멀리서보니 이팝나무꽃이 하얗게 핀게 표가 납니다.

 

 

물건 어부림에서 올려다보면 독일마을이 그림처럼 앉아 있으니 독일마을을 볼려면 어부림쪽으로 가야 제대로의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늙은 푸조나무 초록잎 사이로 해가 반짝입니다.

참 좋은 계절이며 남해입니다.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지냈는지 금줄이 천연기념물 표지판쪽에 쳐져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150호 (1959년 1월 23일 지정, 지정사유 - 방풍림(防風林)의 역사적인 유물) 70개의 크고작은 섬과 302㎞에 이르는 해안선으로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경 남 남해이다.

남해에서 300년 동안 거친 파도와 바람에 맞서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모이게 하는곳이 바로 남해 삼동면 물건리에 위치한 물건방조어부림(勿巾防潮魚付林)이다.

 

남해 12경중 10경인 물건방조어부림은 바닷가를 따라 초승달모양으로 길이 1,500m, 너비 약 30m로 면적이 무려 2만3438m나 되며 부락민들의 공공소유로 되어 있다. 나무의 높이는 대체 로10∼15m이며 상층목이 약 2,000그루이다.

 

이곳에는 팽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푸조나무등 낙엽수와 상록수인 후박나무 등 수종만도 100여 종류에 달해 마치 나무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빼곡하게 들어선 1만여그루 나무는 깊은 산중의 느낌을 자아낸다.

약300년 전 마을사람들이 방풍과 방조를 목적으로 심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숲이 해를 입으면 마을이 망한다고 믿어 잘 보호해 왔다.

일제강점기 말엽 일본인들이 목총을 만들기 위해서 이 숲에 서 7그루의 느티나무를 자르려고 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총칼에 맞서 이숲을 없애겠다면 차 리 우리를 죽여달라고 맞서 이 숲을 보호한 일도 있다.

 

이곳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전주 이씨 무림군(茂林君)의 후손이 이곳에 정착 해 방풍림을 조성했다고 하며 19세기 말께 어느 한때 이 숲을 벌채하였다고 한다. 벌채후 폭풍 우가 닥쳐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숲을 헤치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한 가지의 나무도 함부로 베는일 없이 이숲은 지켜져 오고 있다.

숲 속 에 서있는 이팝나무의 노거목은 서낭당나무로 되어있고, 음력 10월15일에는 제사를 올려 마 을의 평안을 빌고 있다. 산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동글 동글한 몽돌밭을 따라 펼쳐진 해안은 여인의 허리처럼 한껏 휘어진 모습이 장관을 이루며 남해 바다를 향해 가지를 뻗은 나 무들 은 남해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당당한 모습이다.

물건리는 방조어부림을 경계로 등대가 있는 포구와 논밭이 있는 물건마을로 나뉘어 진다.

독일마을에서는 물건마을과 방조어부림, 그리 고 포구를 한꺼번에 펼쳐 볼 수 있다.

 

부르기 어렵고 복잡한 이름의 물건방조어부림은 다른 세가지 이름이 있다.

첫째, 거칠고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준다고 하여 방풍림(防風林)이며,

둘째, 쉴새없이 달려드는 파도에 의한 해일이나 염해ㆍ조수를 막아준다고하여 방조림

셋째, 숲의 초록빛이 남해를 떠도는 물고기떼를 불러들인다 하여 어부림(魚付林)이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예전의 분주함은 사라진 물건 어부림입니다.

멸치잡이 배도 없고 삶아 건조를 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으며, 마을은 늙어가기에 적막강산같았습니다.

그래도 푸름과 그늘이 좋다보니 여행객이 자리를 펼쳐 5월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팝나무꽃입니다.

요즘이 이팝나무꽃이 피는 계절인데, 진주 반성쪽엔 가로수가 이팝나무더군요.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주로 남쪽 따뜻한 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초여름에 흰꽃이 피는데 꽃잎은 4개이고 아래로 합쳐 있습니다. 이팝나무란 이름은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얀꽃으로 뒤덮여 이밥, 즉 쌀밥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도 하고, 여름이 시작될 때인 입하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어부림숲엔 미나리냉이, 광대수염등이 피어 있으며, 벌써 찔레꽃도 피었는데 남해가 이곳보다 좀 빠릅니다.

 

 

어부림을 나선 우리는 구비구비 산길을 달려 미조로 갔습니다.

미조 북항에서 멸치축제를 하는데 8~10일까지니 마지막날이었습니다.

임시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남해도횟집에서 멸치쌈밥과 멸치회를 먹었습니다.

손님이 많아 주인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습니다.

멸치는 신선하여 찌개를 해도 으깨지거나 하지 않았으며 비리지도 않았습니다.

 

축제장입니다.

대부분 식당가며 멸치잡이배를 볼 수 없었기에 위판장쪽으로 갔습니다.

 

 

시간 선택을 잘못했는지 멸치잡이배는 보이지 않았고 멸치로 담근 젓갈과 까나리젓을 팔고 있었는데, 멸치젓은 상자당 55,000원이라고 했는데 지난주에 김장용 멸치젓을 담았기에 빈손으로 일어 섰습니다.

 

 

남해로 갈때 새국도 2호선으로 진주, 사천을 경유하여 갔는데 돌아올 때는 창선으로 왔습니다.

지족의 죽방렴은 차에서 구경을 했으며, 역시 마늘이 널린 창선을 달려 초양휴게소에 주차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었습니다.

엄마는 더운니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하여 우리는 나란히 앉아 콘을 까 먹었습니다.

 

 

창선 삼천포대교를 건너 익은 도로를 달려 장복터널을 지나 이종사촌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께서 블루베리농장에 가고 싶다고 하여선데, 동생은 농장에 나오지 않고 집이라고 했는데 수확때 전화를 하마했습니다.

하루 나들이지만 집에가면 저녁하기 싫다고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가자고 하여 진해경철서뒷쪽의 냉면집 명사십리에 가서 냉면을 먹었습니다.

명사십리는 몇해전 진해만 생태숲걷기후 들려 냉면을 먹었던 집인데, 냉면이 나오기전까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데 어제가 진해만 생태숲걷기를 한 날이더군요.

집에 도착하니 오후 7시였으니 꼭 12시간만에 집으로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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