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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진해 군항마을과 근대역사 테마거리

by 실비단안개 201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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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황산(공원) 진해탑은 리모델링중

- 100년 넘은 진해우체국, 영업은 멈추어도 시계는 간다

- 흑백에서 오랜만에 모카커피를 마시다

 

위에 이어 씁니다.

흑백을 나온 우리는 진해 군항마을 역사관으로 갔습니다.

역사관 주변의 복개천은 예전엔 문화의 거리였는데 군항제때면 전시나 연주회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변을 포함하여 군항마을로 2014년 '제 7호 기록사랑마을로'지정되었다는 안내비가 있는데 주변을 근대역사 테마거리라고 합니다.

군항마을에는 개화기의 진해의 역사와 근대 유산이 소개되어 있으며,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의자와 조형물이 있습니다.

 

 

 

진해가 군항의 도시이다보니 마크사 거리가 있는데, 군인들의 군복에 이름과 마크를 달아주고 수선을 하던 곳인데 지금도 몇 있습니다.

 

 

진해의 근대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군항마을 역사관이며 옆엔 커피점입니다.

 

 

진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진해탑과 중원로타리 시계탑(분수탑)인데 지금은 잔디광장으로 변했습니다.

중원로타리는 일제가 진해 시가지도시 계획을 하면서 만들어졌으며, 1967년 중원 로타리 광장에는 시계탑과 분수대 거북선 모형 배치되었다가 이재복 전 시장이 당선된 후 2007년 중원 로타리 광장 분수대와 시계탑, 거북선을 철거, 평면형 잔디 광장으로 변했습니다.

 

 

중원 로터리의 역사는 100년 전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진해 시가지로 조성한 '중평 한들'의 중앙에는 한 그루의 팽나무[포구나무]가 서 있어서 정자 나무 역할을 하였는데 합니다. 일본인들은 1909년 도시 계획을 하면서 당시 이 팽나무를 중심으로 여덟 갈래의 길을 냈고 방사선 도시가 자연히 형성되도록 했는데, 이 같은 방사선형 8거리에 대해 해방 이후 역사학자 등이 이것은 일본인들이 침략주의 발상에서 일본 해군 깃발을 본떠 방사선 형태로 만들었다고 말하여 논란을 빚기도 했습니다.

 

해방 이후 1960년에 팽나무가 수령을 다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려 했지만 실패하고, 1967년 4월 2일 진해 라이온스 클럽이 나서서 당시로는 거금인 2,000만 원을 들여 분수대와 시계탑을 건립했습니다. 그리고 시계탑과 분수대는 지난 1998년 3월 시와 라이온스 클럽이 전면 보수를 했으며 로타리 내 명물로 군항제 기간 큰 인기를 끈 거북선 모형은 1982년 4월 뜻 있는 지역 주민들이 돈을 모아 설치했습니다.

2007년 11월 15일 로타리 내에 식재된 나무는 모두 옮겨 심고 시계탑은 인근 옛 경찰서 부지에 조성된 공원으로, 모형 거북선은 이충무공 동상이 세워진 북원 로터리로 옮겨졌으며, 중원 로타리에는 잔디 광장이 조성되었습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군항마을 역사관에서 찍은 사진인데, 분수탑에 시계가 있기전에 그 자리에는 거북선이 있었는데 사진이 돌려져 있다보니 연대는 확인을 하지 못 했는데 새로운 사실입니다.

 

 

2007년에 철거된 시계가 있는 분수탑이며 뒷쪽이 옛 진해경찰서인데 지금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저에게 있는 유일한 분수탑사진인데 2006년 군항제때 옆에서 찍은 사진이라 시계와 거북선이 재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진해탑이 나오도록 찍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진해경찰서는 석동으로 이전했으며, 군항제 기간 중심이 되는 곳이 중원로타리인데 진해시민은 분수탑 시절을 그리워 합니다.

동행한 이가 40대 후반이었는데 당시 분수대에서 놀면서 이끼를 닦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동심이 그대로 묻어나는 마음이었으며 표현이었습니다.^^

현재의 중원로타리입니다.

 

 

제황산공원으로 오르면서 찍은 중원로타리인데, 군항제때 아니면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중원로타리입니다.

 

 

군항마을 역사관에 일본의 다다미를 체험하도록 의자위에 설치해 두었으며, 일제강점기때의 사고 사진, 생활모습과 진해탑 이전모습과 가재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군항마을 역사관에서 여죄천을 따라 남원로타리쪽으로 가다보면 모퉁이에 1920년에 지어진 중국풍의 3층짜리 팔각정은 뽀족집으로 불립니다. 팔각정이라고 하지만 지붕을 보면 육각누각으로 일제 강점기 초소로 쓰였다가 요정으로 운영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수양회관이란 밥집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수양회관 맞은편에 있는 원해루입니다.

원해루는 1949년에 지어졌으며, 한국전쟁 중공군 포로였던 장철현 씨가 1596년 영해루(榮海樓)로 장사를 시작 한 곳인데, 지금은  원해루(元海樓)로 영업을 하는데 현재 리모델링중이기에 12월에 다시 영업을 한다고 합니다.

영해루는 타이완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다녀가기도 했고, 이승만 대통령이 진해에 내려올 때마다 이 집에 들러 군만두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의 촬영 장소가 되기도 했으며, 진해에서 군 생활을 하는 해군이라면 누구나 이곳 자장면 한 그릇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며, 요즘이야 군부대에 전문요리사가 있으며 외부에서 행사를 하기고 하지만 한때는 군부대 출장요리를 하기도 했으며, 군부대 출장요리를 한 그 시절엔 요즘 자장면보다 요리를 더 많이 팔았다는 집이 원해루입니다.

지금은 가게 양옆의 새로로 달려 있는 나무간판에만 榮海樓라고 쓰여 있으며 음식값이 바깥에 붙어 있습니다.

- 자장면보다 요리를 더 팔았다는 원해루의 통소라 삼선짬뽕과 고추잡채  2012.04

 

 

 

일제강점기때 세워진 장옥입니다.

장옥은 1층이나 2층으로 도로쪽에 출입구가 있으며 안쪽에는 마당과 화장실, 우물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대부분 현대식 건물로 다시 지었지만 지금도 진해탑 아래쪽엔 장옥이 있습니다. 흑백다방, 원해루도 장옥에 속하는 건물입니다.

위의 사진중 팽나무가 있는 중원로타리 사진에 장옥 형태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의 붉은 나무집을 지나는 할머니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모두 가짜고 이 집이 진짜 장옥이라고 했는데, 장옥은 일제강점기때 지은 건물이기에 채광을 위해 창문을 길게 했다는 겁니다.

왼쪽 아래의 사진엔 벽돌에 무슨 암호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으며, 위의 사진은 2층 창문입니다.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장옥을 보존해야 할지 헐어야 할지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 진해 근대 역사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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