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마음 나누기/가본 곳

부산 기장 여행, 두호 행복벽화마을의 속살

by 실비단안개 2017. 1. 12.
728x90

1월 1일

- 연화리에서 죽성성당까지(기장 해안도로)에 이어

죽성성당이 보이는 두호마을 뒷산입니다. 수평선과 재건축중인 죽성성당, 죽성교회가 보입니다.



죽성포구를 빠져 나가는데 천사의 날개 벽화가 있었기에 차를 주차했습니다. 죽성성당이 있는 두호마을을 살펴봐야 겠습니다.

경상남도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월전과 두호, 원죽 세 마을이 있으며, 월전은 앞에 일부 올렸으며, 두호마을편입니다. 죽성은 조선시대 군사용 활을 만들던 대밭이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해안가에는 유독 대나무가 많은데 죽성 지명에 이미 대나무가 나옵니다.
두호 옛 지명은 두모포로 조선시대 수군이 주둔했는데, 여기 주둔한 수군이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초 수정동 부산진성으로 이전하면서 두모포 대신 두호가 지명이 됐다고 합니다.

다녀오고 보니 죽성 두호마을은 볼거리가 널렸더군요. 지금은 비록 재건축중이지만 바다위의 하얀 성당은 2009년 방영한 SBS 드라마 '드림'의 세트장으로 '드림성당'이라고도 불리는데 성당보다 더 성당 같아서 죽성 명물이 된 지 오래입니다.
400년 된 죽성리 해송도 유명한데 마을 뒷산에 있는데 따로 올릴 예정입니다.
언덕배기 높은 곳의 석성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가 쌓은 죽성왜성이 있으며 어사암이 있기도 합니다.


부산 기장은 해안이 길게 이어져 있는데, 지금은 도로가 좋아 교통이 좋지만 옛날에는 유배지였다고 합니다. 윤선도의 유배지가 '해남'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해남으로 유배되기전에 기장 두호마을로 유배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1616년(광해군 8) 성균관 유생으로서 이이첨(李爾瞻)·박승종(朴承宗)·유희분(柳希奮) 등을 격렬하게 규탄하는「병진소(丙辰疏)」를 올렸다. 이로 인해 이이첨 일파의 모함을 받아 함경도 경원(慶源)으로 유배됐다. 그곳에서 「견회요(遣懷謠)」 5수와 「우후요(雨後謠)」 1수 등 시조 6수를 지었다.

1년 뒤인 1617년(광해군 9) 경상남도 기장(機張)으로 유배지를 옮겼다가,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이이첨 일파가 처형된 뒤 풀려나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로 제수됐으나 3개월 만에 사직하고 해남(海南)으로 내려갔다. 그 뒤 찰방(察訪) 등에 임명됐으나 모두 사양했다."라고 합니다.

고산 윤선도가 7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시 6편을 남긴 곳이 두호마을입니다.



두호마을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였습니다. 먼저 바닷가쪽에서 두호마을로 들었습니다. 지난해 마지막날 새해 해맞이를 검색하면서 숙박업소를 검색하는데 두호마을의 '청춘민박'이 검색되었습니다. 사진이 아기자기하기에 살펴보니 독채민박이라고 하여 예약을 하지 않았었는데 검색으로 만났던 청춘민박이 바닷가 근처에 있었습니다. 오른편의 약간 경사진 골목을 걸어 갈 겁니다.



살짝 본 청춘민박으로, 안을 보려고 하니 개가 짖어 물러나야 했습니다.



비탈골목을 올라가면 버스가 다니는 좁은 도로가 나오며 벽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행복 두호 벽화마을입니다. 요즘은 벽화마을이 많다보니 예전처럼 새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발길과 눈길을 멈추어 보게 되는 벽화입니다. 버스가 정차해 있는 쪽으로 갈 겁니다.



두호마을은 2014년 4월 부산지역 사회복무요원들로 구성된 재능나눔봉사동아리 '사회복무벽화지원단'과 부산여자대학교 '벽화사랑'팀이 기장경찰서와 함께 기장군 죽성리 두호마을에서 벽화그리기 재능봉사로 완성된 벽화마을입니다.

벽화는 바다생물과 자연과 식물, 아가들이 주였습니다.



기장군 죽성리 두호마을은 어촌으로써 기장죽성교회 등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 조용한 마을이지만, 몇몇 허름한 폐가들과 밤이 되면 짙은 어둠 탓에 주민들이나 여행객들의 치안이 문제시되는 곳이기도 했다는데, 벽화봉사활동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실시한 만큼 주민들의 생활만족지수 증가와 안전도가 증대되었겠지요. 경찰관들도 벽화에 등장합니다. 기장군의 경찰은 민중의 곰팡이가 아닌 지팡이로 보입니다.




치안 올레길 안내표시가 좀 과하다 싶을 정도였지만 그만큼 범죄와는 멀어지겠지요.




시멘트담장 사이에 정겨운 돌담장이 있습니다. 장기외출시에는 배달물이 쌓이지 않도록 미리 조치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쌓이는 배달물은 범죄의 표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주 5일제로 여행과 관광이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하다보니 각자 조치를 해야 합니다.




죽성교회입니다. 흔히 십자가가 높은 대한 예수교가 아닌 '한국 천부교 죽성교회'입니다.

천부교는 십자가 대신 건물 꼭대기의 비둘기상이 천부교회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마치 유엔의 한 기구같기도 합니다.

천부교는 한국천부교 전도관부흥협회라고도 하는데, 1917년 11월 22일 평안북도 덕천 출생의 박태선(朴泰善)[1917~1990]이 창설하였습니다. 덕천에서 초등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에서 야간 공업 학교를 마쳤으며, 그 후 소규모의 공장을 경영하던 중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귀국하여 남대문교회에서 집사로 있으면서 노방 전도와 부흥 집회를 하는 등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에 전념하였으며, 1955년 7월 전도관의 모체인 한국예수교 부흥협회를 조직했고, 후에 명칭을 한국예수교 전도관부흥협회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1980년부터는 한국천부교 전도관부흥협회로 개칭하였으며, 박태선 자신이 곧 천부(天父)라고 명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천부교는 1957년부터 교인들의 공동체 신앙촌을 건설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기장신앙촌은 1970년 2월에 건설되었는데, 소사신앙촌과 덕소신앙촌은 없어지고 지금까지 유일한 신앙촌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두호마을에 신앙촌에서 생산한 물건을 판매하는 점방이 있기도 했습니다.

- 천부교 : http://www.chunbukyo.or.kr/




두호마을의 골목은 미로같았기에 돌다가 돌다가 스쳤던 자리로 다시 오기도 했습니다.




인사성 밝고 자부심이 강한 두호마을입니다.







농촌과 어촌에 폐가가 더러 있는 데 폐가는 특별순찰구역으로 지정해 두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폐가도 특별순찰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모르는 놀이들일 겁니다. 자치기, 굴렁쇠 굴리기, 팽이돌리기 등 우리가 어릴때 골목에서 한 놀이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이들은 땅을 밝으며 하늘을 보고 자라야 건강하게 자라는데 요즘은 학습에 너무들 열중이라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여행길에 이런 벽화를 만난다면 어른들은 추억에 젖으며 아이들은 호기심에 눈이 빛날 것 같습니다.




안경을 낀 물고기입니다. 대단한 상상력이지요.



모기장방충방을 두런 창문주변을 예쁘게 단장했습니다. 모기나 기타 벌레들이 벽화구경하느라 안으로 못 들어 갈 것 같지 않나요.



동양화느낌이 물씬한 벽화입니다.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담쟁이덩굴에 꽃이 피었습니다. 자연과 잘 어우러진 벽화입니다.




또 다른 입구입니다. 기장의 특산물을 판매한다는 안내가 벽화옆에 걸렸는데 그대로 올려둡니다.

미로같은 두호마을을 서너번 돈 듯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벽화가 중복으로 찍히기도 했기에 사진 선별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지만 너무 많이 찍었기에 올리지 않은 벽화도 많습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