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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누기/가본 곳

천태산 가야 고찰 부은사와 마고동굴

by 실비단안개 2017.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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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순매원 매화향기에 취해 이대로 집으로 가도 괜찮은데, 굳이 삼랑진으로 가는데 이길은 우리의 코스입니다.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 가는데 (밀양)삼랑진 천태산 중턱에 작은 사찰이 있었으며, 위로도 무슨 건출물이 있었습니다. 부은암인가?

안태마을로 접어드니 부은사 안내 표지판이 있었기에 아~ 부은사가 맞구나 하며, 차를 돌려 달라고 하여 차량 두 대가 지날 수 없는 비탈진 산길을 올라가니 천태산 부은암 안내석이 나왔습니다.


부은암(父恩庵 옛 극락전)은 밀양시 삼랑진읍 천태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야국 제2대 거등왕(居登王)이 장유화상의 뜻을 받들어 부왕인 수로왕(首露王)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200년 무렵에 세웠다는 가야 고찰입니다.

베일에 가려진 '신비의 나라' 가야에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뱃길로 가야로 와 김수로왕과 인연을 맺으면서 우리나라에 불법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고 전합니다. 허왕후가 바다를 무사히 건너온 것에 감사하여 세운 김해 분산의 해은암(海恩庵),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세운 무척산의 모은암(母恩庵), 가락국 2대 거등왕이 부친 수로왕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세운 부은암(父恩菴)까지 가야의 사찰은 왕족의 인연과 함께 하였습니다. 거등왕이 아버지 수로왕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세운 왕족의 절 부은암은 모은암과 더불어 가야가 부모님의 큰 은혜를 특별히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은암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860년(철종 11)에 동화사 승려 학송이 옛 부은사지에 재건하였다고 전하는데, 오래도록 부은암(父恩庵)으로 불렸으나 근래에 부은사로 명칭을 바꾸었습니다.
부은암이 있는 천태산은 가락국 왕족의 탯줄을 묻었다는 곳으로 전해지기도 합니다.

가야와 관련이 있는 사찰은 대부분 산중턱에 있는데, 지리산 칠불암, 김해의 장유사와 흥국사가 그러하며 부은암도 산중턱에 있는데 김해 무척산의 모은암을 가지 않았지만 역시 산중턱에 있습니다.




부은암은 일주문이 없었으며, 현재의 부은사로 가는 왼편으로 옛 부은암인 극락전이 있다는 안내가 있어 극락전으로 갔습니다. 이곳에도 매화가 피었습니다.



극락전은 폐사지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넓지않은 절터에 극락전, 영안당과 5층 석탑이 보입니다.




극락전 앞에는 4기의 비석이 있습니다. 1968년 성산 스님이 지은 천태산 부은암 중건사적실기 비석과 자비봉안 보탑기념비가 있고, 그 사이에 청신사 김춘상과 처사 주원택의 공덕비입니다. 비석앞으로 오래 된 배롱나무가 있으니 여름에는 볼만한 풍경이 될 듯 하지요. 법당앞의 애기동백은 이미 지고 있었습니다.



극락전 현판 우측에 1960년에 농산스님이 지은 부은암 극락전 상량문도 있습니다. 극락전의 현판은 구한말의 명필이었던 아석 김종대의 글씨라고 합니다.



극락전 마당을 살짝 비키면 오래전 출입처가 된 길이 어렴풋이 있으며 돌탑도 있지만 지금은 수풀에 가려지고 있습니다. 극락전이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극락전 안쪽에 있는 영안당이며 영안당 옆으로 부도전이 보입니다.




부도전은 농산 스님과 농산 스님의 뒤를 이은 성봉 스님의 부도전이며, 옆에는 글씨가 마모되어 알 수 없는 어느 거사의 부도입니다.




극락전을 나와 부은사로 오르는 길에 사찰에서 경작하는 마늘밭이 있었으며 윗쪽에는 봄농사를 위해 퇴비를 내는 스님을 만났습니다. 퇴비는 은행잎이었는데 부은암에는 오래 된 은행나무가 있으며, 은행잎 엑기스를 판매하기도 하는데, 부은암 전체에 은행열매 냄새가 독했습니다.

스님께 다가가니 사진 많이 찍었느냐고 물어 보시기에 이제 도착하는 길이라고 하니, 법당 뒤로 가면 마고동굴이 있으니 그곳까지 구경하고 삼랑진 읍내가 훤하게 보이니 그것도 놓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부은암은 법당이 뒷쪽에 있는데 앞의 요사채는 마치 선원같았기에 가야 고찰이 왜 이렇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절같은 맛이 전혀나지 않는 부은암 요사채인데, 맞은편에 약사여래불이 있었습니다. 아~ 절이 맞긴 맞구나.




약사여래불 뒷쪽으로 벌통이 여럿 있었습니다. 요사채입구에 토종벌꿀을 판매한다는 안내가 있었는데 부은암에서 직접 양봉을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약사여래불앞쪽으로 약간 비탈진 길을 가니 용왕당이 있었으며, 용왕당 뒤에는 삼성각이 있었지만 사찰에 가더라도 실례가 될까봐 닫힌 문은 열지 않으며 구석구석 살피지 않는 성격인데, 이제부터 사찰 방문시 좀 자세히 관찰을 해야 겠습니다.



용왕당 옆의 요니 석물입니다.

요니는 지름이 78cm나 되는 맷돌 모양의 돌로 이 석물은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돌로서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지고 온 파사석탑과 같은 성질의 재질로 인도에서 직접 조각하여 온 것이라 전해집니다.

이 석물은 인도의 힌두교 시바신의 상징으로 성기신앙(性器信仰)의 대표적 대상물로 요니(淫婦)라 부르는데, 이 요니 위에 링가(男根)를 세워놓고 물을 뿌리며 득남의 소원을 빌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링가의 행방이 묘연하여 그 부분만 자연석이 놓여있다고 합니다.




부은사의 큰법당과 범종각입니다.




얼라아부지가 읽고 있는 부은암 유래와 사기입니다.



영산전입구에 마고석굴(麻姑石窟) 안내가 있었습니다. 마고석굴은 원효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한 석굴이라고 합니다.



겨울 가뭄으로 폭포에는 물이 흐르지 않으며 바위에 이끼가 끼여 보이지 않지만, 폭포의 바위에 통천도장(通天道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통천'이라는 글은 가야불교의 절터에서만 나오는데 신어산 은하사에 올라 가다보면 종각 옆 바위에 새겨진 신어통천과 무척산 정상에 통천사와 같은 맥락의 의미로 가야불교를 조명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기도 합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비탈진 산길에 지그재그로 안전망같은 줄이 쳐져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냥 걷고 또 때로는 줄을 이용하여 걸었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산길에는 바위전망대가 있었으며 그 위에 서니 삼랑진읍내가 한눈에 들어 왔습니다. 낙동강을 지르는 낙동철교와 삼랑진교, 삼랑진교도 보였습니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왼편에는 안태호가 있기도 합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걸었습니다. 특별한 곳에 가니 사람들이 쌓은 돌무더기위에 작은 돌 하나를 올렸습니다.



거대한 바위가 나타났으며 얼라아부지가 안내표지판을 읽고 있습니다. 다 온 모양입니다.



마고석굴 옆에는 돌탑 두기가 있었는데 한쪽은 다보탑이며 다른 한쪽은 석가탑이라고 했습니다.



마고석굴입니다. 마고석굴은 옛날 마고라는 이름의 신선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원효대사와 사명대사가 정진수도 했던 곳으로 전해올 뿐만 아니라, 이곳 천태산은 나반존자가 늘 상주하는 도량으로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사업성취, 학업성취, 득남성취, 운수대통 등의 소원을 빌면 꼭 들어주는 영험 있는 도량으로 소문이 나 전국에서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특별한 장소에 갔으니 저도 석굴 법당에 올라 삼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소원은 빌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종교를 떠나 한반도의 역사와 연결이 되기에 절을 했습니다. 부처님 뒤로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어른 두명 정도는 누워도 될 공간이 있었습니다.




절을 하다보니 모자가 자연스레 써졌습니다.



잠시 마고동굴에 머물렀다 일어섰습니다. 마고석굴 안내에 150m라고 했지만 실제는 더 되는 듯 했습니다. 소나무 사이로도 낙동강이 보입니다.



부은사입니다. 큰은행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사찰에는 큰나무가 있어 좋은데 가을 은행단풍이 들때 부은암을 찾는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풍경이 될 듯 하지요.



사찰의 큰법당은 사찰마다 현판이 다른데 부은암은 '천불보전'이었는데 법당에 천불이 모셔져 있다는 뜻일까요. 홍매화가 피면 더 어울릴 듯 합니다.



천불보전앞쪽에 빨래줄 같은 줄이 쳐져 있었는데 혹 연등을 다는 줄일까요.




큰법당문을 살짝 열어 봤습니다. 사찰의 대웅전의 모습은 다 비슷한 듯 한데, 천불보전에는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등 부처님앞에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돌쩌귀자료로 쓰일 수 있을지 몰라 돌쩌귀를 찍었습니다. 꽃살문은 장식이 없는 평범한 빗살문입니다.




천불보전앞에 문화재 안내가 있었습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476호, 석조아미타불좌상입니다. 문화재는 어디에 있을까. 큰법당앞에 안내표지판이 있으니 큰법당에 있어야 하는 문화재는 종무소에 있었습니다. 부은암에 들때 종무소앞을 스쳤지만 들어가지 않았는데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고 하니 종무사로 갔습니다.




종무소에 봉안중인 불상중에 가운데 아미타불이 문화재입니다. 부은사에 들기전에 극락전에 들었는데 극락전 마당에 처사 주원택의 공덕비가 있었습니다. 단순한 처사라면 사찰에서 공덕비를 내리지 않는데요, 1930년 마을에 살던 주원택 처사는 가을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석불 다섯 분을 발견한 공덕을 기린 듯 합니다. 다섯 분의 석불중 중 두 분은 파불(波佛)이 되었고, 한 분은 현재 부은사에 모셔져 있는 아미타불(경남유형문화재제476호)이라고 합니다. 두 분은 외부로 반출되었는데 현재 양산 통도사 포교당에 관세음보살이 부은사 아미타불 협시보살로 판명되었으며 아직까지 대세지보살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문화재를 큰법당이 아닌 종무소에 봉안을 했을까요. 부처님이 봉안되어 있는 곳은 종무소내 극락전입니다. 즉 종무소에 작은 극락전이 있으며 옆엔 공양간도 있었습니다. 1688년 조선 강희 27년 경주 옥석으로 조성된 아미타불은 2009년 3월5일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그로 인해 부은사는 2009년 12월16일부로 2,000여 년 전통사찰(등록번호 제11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부처님 앞에 있는 진신사리입니다.



종무소를 나와 내려오면서 다시 한 번 부은사를 봤습니다. 들어설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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