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배내골을 뒤로하고 배내로를 달려 언양의 석남사로 갑니다. 보통 언양석남사로 알고 있는데 주소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며, 비구니의 수도처로 유명한 절입니다.
주차후 상가를 지나야 석남사로 가는데 상가에는 다양한 건강식품과 지역 특산품이 판매되고 있었으며, 뒤에 보이는 산이 가지산입니다. 남쪽은 윗지방보다 단풍이 늦게 들다보니 이때가 한창이었습니다.
선비님은 석남사입구의 이 화장실이 사찰의 화장실 중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이유인즉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있는 건축물이라고 그렇답니다. 보니 그런 듯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찰은 산속에 있기에 주차를 하고 한참 걸어야 하는데 절에 가는 길에 마음이 가라앉으며 어느 정도 힐링이 되는 기분을 느낄겁니다.
석남사로 가는 이 길 이름은 '나무 사잇길'입니다. 산엔 나무가 있으며 그 사이에 길을 내어 우리가 오가니 산속의 모든길이 나무 사잇길인데 이렇게 이름을 붙이니 길도 나무도 특별해 보였습니다.
석남사 숲 이야기입니다.
석남사는 울산의 대표적인 천년사찰로 가지산 자락에 위치하며, 입구에서 반야교까지 700m에 걸쳐 아름드리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서어나무 등이 즐비해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석남사의 역사와 함께 한 천년의 숲으로 자연 천이(숲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변화해가는 과정)가 진행되고 있어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또한,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항공기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 아직까지 소나무에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일부 소나무에서는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에 연리목 형태를 보이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산의 소나무에는 이렇게 송진 채취흔적이 있으며, 나무 사잇길에서 만난 연리목입니다.
아침해를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을 부부가 찍고 있습니다.
나무 사잇길에서 만난 단풍들입니다. 빨간색이 있으며 노란단풍도 있고 청단풍도 있습니다. 숲 해설가가 동행을 한다면 더 좋은 시간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은 나무 사잇길이었습니다.
석남사 부도전입니다. 석남사 부도전은 일주문을 들어서 150m 전방 좌측 길 옆에 있습니다.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나무입니다. 뿌리가 드러난채 단풍을 달고 있었습니다. 흙을 덮어 주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애매했습니다.
일행이 저마치 앞서가고 혼자 걷는데 해딴에 김훤주 대표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계곡에 내려 갔다가 오는 길이랍니다. 저는 계곡을 향해 카메라질을 했는데요.
마치 숲 해설가처럼 나무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남자의 근육처럼 단단하며 울퉁불퉁한 나무는 서어나무라고 했습니다. 서어나무, 잊혀지지 않을 듯 합니다.
우리나무의 설명에 보면, "서어나무의 어원은 알 수 없지만, '서목(西木)'을 우리말로 '서나무'라고 했다가 발음이 자연스러운 '서어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서어나무는 아무래도 독특한 수피에 먼저 눈이 가기 마련이다. 줄기의 굵기 자람이 균등하지 않아 회색의 매끄러운 표면에 세로로 요철(凹凸)이 생겨서 마치 잘 다듬어진 보디빌더(bodybuilder)의 근육을 보는 것 같아서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버짐이 핀 듯 한 이 나무는 노각나무랍니다.
학명은 Stewartia koreana입니다.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학명에 'koreana'라는 지역 이름이 들어간 순수 토종나무이니 더욱 우리의 정서에 맞을 것 같은 나무인데 아직까지 그 가치만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노각나무는 소박하면서 은은한 꽃이 피고 비단결같이 아름다운 껍질을 갖고 있으며, 가장 품질 좋은 목기(木器)를 만들 수 있는 나무며 쟁기도 만든다고 합니다. 번거로움을 싫어하고 낯가림이 심하여 사람이 많이 다니는 야산에서는 거의 만날 수 없고, 아름드리로 자랄 수 있는 큰 나무이나 깊은 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옆에 자태를 숨기고 조용히 살아가는 나무랍니다.
이렇게 나무의 특징을 이야기하고 들으며 걷다보니 반야교에 닿았습니다.
아치모양의 반야교를 건너면 석남사입니다. 석남사가 비구니승의 수도처란건 들었지만 첫 걸음입니다. 반야교를 건너 침계루 아래로 석남사로 들 겁니다. 침계루 옆에 종각이 보입니다.
다음백과에서 가지고 석남사 설명입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가지산 동쪽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이 절은 824년(헌덕왕 16) 우리나라에 최초로 선(禪)을 도입한 도의선사가 창건했다.
1716년(숙종 42) 추연이 쓴 사적기에 의하면 화관보탑과 각로자탑의 아름다움이 영남 제일이라고 하여 석남사라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74년(현종 15) 언양현감 강옹(姜翁)이 사재를 내어 탁령·자운·의철·태주 등에게 중창하도록 했다. 그뒤를 이어 정우·각일·석맹 등이 극락전·청풍당·청운당·청화당·향각을 중축하고, 희철이 명부전을 신축했다. 1803년(순조 3)에는 침허외 수일이, 1912년에는 우운이 중수했다.
6·25전쟁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1957년에 비구니 인홍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크게 중건했는데, 이때부터 비구니의 수도처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극락전·설선당·조사전·심검당·침계루·정애루·종루·무진료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도의선사의 사리탑으로 전하는 부도(보물 제369호)가 있고, 이밖에 3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과 부도 4기 등이 있다.
석남사 가람과 기타 설명은 석남사 홈페이지(http://www.seoknamsa.or.kr/)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석남사 대웅전(大雄殿)과 3층석가사리탑입니다.
대웅전은 부처님이 대웅(大雄) 즉, 대장부라는 뜻으로 '대장부를 모신 집'으로, 1974년에 인홍스님이 해체하여 복원한 정면 3간(間) 측면 2간의 37평 건물로 다포형 팔각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벽석(壁石), 받침돌, 귀퉁이의 귀돌은 아주 잘 다듬어진 인조석으로 설치하고, 또 대웅전으로 오르는 정면의 계단 소맷돌은 용이 입안에 여의주(如意珠)를 머금고 불법을 호위하는 자태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청은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모든 부재에 여백없이 복잡하고 화려하게 칠한 금단청(金丹靑)이며, 색상은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청적황백흑(靑赤黃白黑)의 오색이 조화를 추구하였다고 합니다.
대웅전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는 삼층석탑은 창건주이신 도의국사가 신라 헌덕왕 16년에 호국의 염원을 빌기위하여 세운 15층 대탑이었던 것을
임진왜란시 파괴되어 탑신의 기단만 남아있었는데,1973년 인홍스님의 원력으로 삼층탑으로 다시 세우고 탑속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다고 합니다.
스리랑카 사타시싸스님이 부처님 사리삼과(三課)를 모셔와 이과(二課)는 가야산 묘길상보에 봉안하고 일과(一課)를 이 탑에 봉안하였답니다.
탑높이는 11m 폭은 4.75m입니다.
3층석탑을 여러 방향에서 찍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석남사 홈페이지에서 가람배치도를 가지고 습니다.
침계루에서 보면 오른편, 대웅전에서 보면 왼편에 있는 강선당(講禪堂)입니다.
강선당은 설법과 선이 이루어지는 큰 방으로, 이 당은 다포계 형태의 팔작지붕이며 정면8칸, 측면 4칸이고 학인스님들이 공부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강선당끝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승탑이 있습니다.
강선당앞에 마치 뭔가가 폭파된 듯 한 풍경이 있기에 찍었습니다. 뭘까요.
대웅전 뒤의 승탑으로 가는 길입니다. 승탑은 도의국사 부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담장이 높더군요. 비구니승이 활발하게 앞서갔으며 사찰에서 몇 분과 마주치기도 했습니다.
승탑근처에서 본 가지산부분과 석남사 가람 부분입니다. 게양대가 거슬렸지만 가지산 단풍은 여러 컷을 찍어 봤는데 여기서 찍어야 했습니다.
승탑입니다. 보물 제 36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팔각원 당형으로 되어있고 간석에는 안상속에 화문대를 돌렸고, 팔변연화대위에 놓인 탑신석 전후에는 문비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전면 좌우에는 문비명과 신당 입상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가 승탑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있습니다.
승탑 설명입니다.
사찰에 가면 느끼는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뭔가를 기원하는 걸 참 즐기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정서일수도 있을 겁니다. 담장위에도 소원을 얹었습니다.
우리가 석남사로 든 침계루가 보이기에 찍었습니다.
침계루는 대웅전과 마주보는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입니다. 1974년 인홍스님이 중건했다고 합니다.
산신도와 독성도가 모셔져 있는 극락전입니다. 극락전 측면에 산신도와 독성도 안내가 있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종교를 갖지 못 한 제게는 설명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좌)독성탱화는 말세의 복밭으로 신앙되는 나반존자로서 머리카락과 눈썹이 흰 것이 16나한의 한분이신 빈도라발라사로 보여지며, 조성은 불기 2538년 4월 25일입니다.(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34호)
(우)산신령을 모시는 것은 민간의 토속신앙이 불교에 융화된 것으로 사찰이 산에 많이 있으므로 산신령을 외호신중(外護神衆)으로 모시고 있으며, 아주 밝고 선명하다는 감을 줍니다. 화기는 불기 2538년(서기 1994년)1월 4일입니다.(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33호)
극락전에서 올려다보면 '조사전'이 보이는데 따로 참관은 않았습니다.
극락전 앞쪽에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대웅전 뜰앞에 위치하고 있던 것을 1973년 4월에 극락전 앞으로 옮겼는데, 신라말기에서 고려초기 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푸른 기와집은 정수원으로 정수란 바르게 받아들임, 삼매를 의미하며, 1975년 신축하였으며 운수납자들의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대중 30여명이 함께 좌선할 수 있는 건평 60평의 공간입니다.
종각입니다.
수도처다보니 다 참관할 수는 없었으며, 대웅전 마당에서 다시 한 번 가지산 단풍을 보고 돌아섰습니다.
석남사로 들던 길이 아닌 반대편으로 걸었는데, 내를 건널 수 없어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쪽은 가지산 등산로가 있었습니다.
잠시 걸어본 '나무 사잇길'의 반대편입니다.
어딜가면 혼자 언제나 늦습니다. 일행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주차장 입구 2층 국수와 차를 파는 영업점이라고. 해맑은 표정이 재밌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양이었으며, 달그리메님은 감기로 티슈를 계속 뽑고 있었습니다.
마실것을 앞에 두고 심각한 표정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심각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으며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을 때, 각자의 생각표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의 1박 2일 마지막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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