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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찬찬히 걸을 기회가 언제 또 오겠는가

by 실비단안개 2018.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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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꽃이 이제 피기 시작했지만 홍매화를 만났으며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도 살폈습니다.

통도사는 산문을 들어서서 계곡을 따라 겹겹이 우거진 소나무 숲을 지나 경내로 들어 갑니다. 오래전에는 이 길을 걸어 갔습니다. 통도사뒤로 소나무가 웅창했으며 봄이면 진달래가 숲을 밝혀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 자동차를 이용하기에 하천의 물소리와 솔바람 소리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도 자동차로 이동을 하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경내로 들었습니다.



주차후 양산천을 건너 통도사로 듭니다. 양산천은 겨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이 물은 반야암과 서운암, 자장계곡의 물이 합쳐 통도사앞을 흐릅니다.



통도사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으로 듭니다.

천왕문은 통도사 전체의 대문이자, 통도사 경내 세 개의 영역 가운데 하위 영역의 출입문에 해당합니다. 고려 충숙왕 6년(1337년)에 취암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조성 수법으로 미루어볼 때 현재의 건물은 19세기 이후에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부처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들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면서 그들을 인도하는 수호신인 사천왕이 모셔져 있습니다.



다시 통도사 경내 안내도를 가지고 왔습니다.

동쪽에서 진입하는 형식인 통도사는 큰 사찰답게 건물이 많은데, 전체적으로 남향을 했으면서도 지형 때문인 듯 가람배치가 동서로 길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가람의 배치는 법당을 중심으로 세 지역으로 나누어 상노전ㆍ중노전ㆍ하노전이라 부르고 있는데, 노전이 3개라는 것은 통도사가 3개의 가람이 합해진 복합사찰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상노전 구역에는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응진전ㆍ명부전ㆍ삼성각ㆍ산령각을 배치하고, 중로전 구역에는 자장스님의 진영을 모신 해장보각을 위시하여 대광명전ㆍ용화전ㆍ관음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로전 구역은 극락보전ㆍ영산전ㆍ약사전ㆍ가람각ㆍ범종루 등이 있는 영역입니다.



10번 범종루입니다. 극락전 건물이 보이며 영산전 마당의 석탑도 보입니다.



영각앞의 자장매화를 찍고 불이문을 들면 넓은 마당이 있고 북쪽에 황화각이 있습니다. 황화각은 통도사의 스님들이 경(經)을 공부하는 강원건물로 천자각이라고도 합니다. 초창은 1317년(충숙왕 4)에 이루어졌으며, 1647년(인조 27) 탄변화상(坦卞和尙)이 중건하고 1906년 성해화상(聖海和尙)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ㄴ자 평면으로 두 개의 건물을 합친 큰방입니다. 이곳은 강원과 학승(學僧)들이 거처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건물인데, 이들 건물은 일반 신도와 격리되도록 북쪽과 서쪽에서 출입하게 되어 있어 경학을 공부하는 공간답게 처리하였습니다. 제가 황화각을 찍은 이유는 황화각 앞에 큰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봄날 통도사 백목련과 자목련을 찍은 적이 있는데, 이 블로그 배경이 되는 자목련이 통도사 자목련이기에 자목련을 찾아 여기저기를 살폈는데 황화각 앞에는 금목서와 동백이 있었는데 잘 정리가 되어 있었기에 흐뭇했습니다.




황화각에서 대광명전으로 가는데 목련이 꽃눈을 달고 있었습니다. 꽃이 피지 않아 아쉬웠지만 도리가 없지요. 통도사 백목련과 자목련을 찍을 당시 담장의 삼지닥나무꽃, 꽃사과꽃도 만났었는데 통도사가 아름다운 계절은 사철 모두 겠지만 그중에 더 아름다운 달은 4월인가 봅니다.



대웅전 사면의 편액을 살피는데 오래된 건물 인 듯 한 응진전(應眞殿)앞에 섰습니다.

응진전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나한이 범어(梵語)의 아라하트(Arahat)를 한자로 음사(音寫)한 것으로서 그 뜻은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수행이 있다는 뜻인 '응공(應供)' 또는 진리에 응하여 남을 깨우친다는 뜻에서 '응진(應眞)'이라고 하기 때문이랍니다. 부처님을 항상 추종하던 상수제자(上首弟子)는 1,250인으로 불경(佛經)에 기록되어 있지만 이들 가운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제자가 16나한입니다. 그러므로 16나한을 봉안한 법당을 나한전(羅漢殿), 응진전(應眞殿), 또는 십육성전(十六聖殿)이라고도 하나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응진전은 대웅전 서남쪽 동향한 불전으로 1677년(숙종 3)에 지섬대사(智暹大師)가 창건하였다 전합니다. 현존의 건물은 원래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며, 건물의 형식은 정면 3칸, 특면 3칸의 주심포식(柱心包式) 맞배집으로 비교적 간결합니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19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응진전(應眞殿) 편액은 九河스님의 글씨입니다.

 


법당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전체가 외부사진만 있습니다.

현재 응진전에 봉안된 나한도는 근현대 불화사로 유명한 고산당 축연을 비롯한 화승들이 함께 그린 불화로 유명하며, 외벽의 달마도는 현존하는 국내 사찰벽화 가운데에서도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응진전 달마도는 19세기 후반에 조성된 작품으로 기암괴석과 소나무에 둘러쌓인 깊은 산속에서 달마스님과 제자가 마주한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달마스님은 왼쪽 옆모습을 보이며 둥근 멍석위에 앉아 있는데, 제자를 향해 왼손에 든 발우를 내밀고 있습니다. 맞은편의 제자는 스승에 비해 작게 묘사됐으며, 마치 길을 가다가 돌아선 듯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앞으로 내민 자세에서 오른손으로 발우를 받으려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옅은 황토색 배경에 먹선만을 사용함으로써 달마스님의 선풍을 표현했고, 발우와 제자의 옷자락만을 붉게 채색했습니다.




세월이 배인 응진전의 꽃살문입니다. 옛날 시골의 평범한 초가의 꽃살문과 같았기에 정이 갔습니다.



사찰이나 사당 등에는 주련이 있습니다.

응진전의 주련도 편액과 마찬가지로 구하스님의 글씨며, 주련 아래에는 한글 안내가 있습니다.


有山有水承龍虎 유산유수승용호 산수간에 용호를 타고

無是無非伴竹松 무시무비반죽송 시비장단 없으니 송죽을 벗하네

曾昔靈山蒙授記 중석령산몽수기 일찍이 영산회상에 수기를 받은 분들이

而今會坐一堂中 이금회좌일당중 지금 한 집안에 모여 있네



응진전 맞은편에는 금강계단이 있으며 금강계단과 대웅전 사이에 명부전(冥府殿)이 있습니다.

창건연대는 공민왕 18년(1369)이라 전하며 기록에 따르면 1756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영조 36년(1760) 춘파대사(春波大師)가 중건하였으며, 고종 24년(1887) 또 다시 화재로 소실된 것을 이듬해 호성대사(虎星大師)가 재건하였습니다.

건물 외부 측면에는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와 한강독조도(漢江獨釣圖) 등 조선후기에 유행한 영웅소설류의 내용을 표현한 다양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으며, 경남 유형문화재 제195호 지정되어 있습니다.

수미단에는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명부시왕(冥府十王)을 봉안한 전각으로 지장보살의 대원력(大願力)이 살아 숨쉬는 공간입니다.




주련과 편액 모두 구하스님의 글씨입니다.




용화전 옆 서쪽에 위치하는 세존비각(世尊碑閣)과 개산조당(開山祖堂)입니다.

세존비각은 조선(1706년) 양산 통도사 석가여래 영골 사리 부도비로 경남 유형문화재 제54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비각(碑閣)은 1706(숙종 32) 계파대사(桂坡大師)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重修)하고 석가여래의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를 세우면서 건립(建立)한 것으로 비석(碑石)에는 불사리의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곧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사리를 모셔온 일과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泗溟大師)가 불사리(佛舍利)를 왜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크고 작은 2개의 함에 봉안하여 보관하였습니다. 그 후 한 개의 함은 문수대성께서 자장스님께 부촉하신 승지(勝地)이므로 통도사 금강계단에 다시 봉안토록 하였고, 또 다른 한 개의 함은 태백산(太白山) 갈반사에 봉안되었음을 석비(石碑) 전면(前面)에 기록(記錄)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비문은 수사간(守司諫)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짓고 글씨는 승정원(承政院) , 도승지(都承旨) 이진휴(李震休)가 썼습니다.





옆의 개산조당(開山祖堂)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해장보각으로 들어가는 정문입니다.

전각 정면에 개산조당이라는 현판이 붙은 솟을문은 해장보각의 조사문으로서 '솟을삼문'형식이며 해장보궁(海藏寶宮)으로 통하는 문의 3칸 건물인데 중앙 칸이 양측면 칸보다 높게 솟아 '솟을삼문'이라고도 합니다. 3칸 모두 두 쪽의 널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건물형식은 조선시대 말기의 수법으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당(祠堂)의 솟을삼문과 같습니다.

개산조당 앞에는 석등과 삼십칠 조도품탑(三十七 助道品塔)이 있는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37가지의 방법을 말합니다.




세존비각옆의 개산조당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해장보각(海藏寶閣)이 있습니다. 해장보각은 붉은 매화가 핀 옆인데,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을 봉안한 전각입니다. 이 건물의 창건은 영조 3년(1727)이고 그 후 고종 4년(1900)에 고산대사(古山大師)가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이 전각을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은 불경의 보관처를 용궁(龍宮)에 두기도 하고 또 대장경(大藏經)진리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에 비유되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즉 용궁보각(龍宮寶閣)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됩니다. 따라서 자장스님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을 해장보각(海藏寶閣)이라고 한 것은『삼국유사』에 이미 기록된 바와 같이 자장스님이 중국으로부터 가지고 온 대장경을 통도사에 봉안하였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장보각은 용화전 옆에 위치합니다.



위에 소개한 전각과 가람이 상노전 중로전에 위치한다면 아래의 영산전은 하로전에 위치합니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나무로 조각한 사천왕상이 서 있고, 이 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바로 통도사의 하로전 구역이 시작됩니다. 먼저 천왕문의 왼쪽으로는 통도사 도량을 수호하는 가람신을 모신 가람각이 자리하며, 그 앞으로는 아침저녁 예불의식에 사용하는 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걸어 둔 2층의 범종각과 연이어 만세루가 자리하고 범종각의 오른편에는 서향으로 돌아앉은 극락보전과 이를 마주 보고 있는 약사전, 그 사이에 남향한 영산전이 있습니다. 영산전 앞에는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영산전(靈山殿)은 하로전(下爐殿)의 중심 건물로 보물 제1826호 지정되어 있습니다.

영산전의 전방 좌우에는 극락전과 약사전이 동서에 놓여 있고, 그 중앙 지점에는 신라 말기의 3층석탑 1기가 있습니다. 이 탑은 현 위치에서 동북쪽 약 1.5m 지점에 경사진 채 있었으나 최근에 현 장소로 이동하여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영산전의 초창 연대는 미상이나 현 건물은 숙종 30년(1704) 송곡대사(松谷大師)에 의하여 중건 된 것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영산전의 내외 벽화는 매우 주목되는 작품들로 외벽의 그림은 풍화(風化)를 받아 많이 훼손되었으나 내벽의 그림은 그런대로 잘 남아있다고 합니다.  

영산전의 본존불로는 석가모니불상을 봉안하였고, 그 옆으로 돌아가면 거대한 팔상영화를 안치하였는데, 팔상도라고도 하는 그림은 석가여래의 일생을 여덟 가지 중요 사실들로 정리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영산전의 본존불로는 석가모니불상을 봉안하였고, 현존 하는 팔상도중 최고의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다른 팔상도나, 대광명전 삼신탱을 조성한 임한스님의 영산회상도가 있었으나, 현재 두 불화는 박물관으로 이전되었으며, 팔상도의 조성은 영조 51년(1775)으로 연대뿐만 아니라 당시 불화(佛畵)의 화풍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대형그림입니다. 영산전 벽화는 우리나라 사찰벽화로서는 유일한『法華經』견보탑품(見寶塔品)변상도를 비롯해 조선후기 석가여래 팔상도의 도상에 기본이 된『釋迦如來應化事蹟(석가여래응화사적)』의 내용을 그린 것으로 18세기 불교 회화사상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보물 제171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보물 제1471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산전 앞에 서 있는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입니다. 기단에는 기둥모양이 표현되고 특히 아래층에는 안상(眼象)이 얕게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올려 조성하고, 지붕돌 처마의 곡선처리와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붕돌 밑면에 새긴 4단의 받침도 탑의 외형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부분으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으며, 탑 앞의 배례석과 함께 통도사의 석조문화재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입니다.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통도사(通度寺)라 이름이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이 도량은 종교적인 가치는 물론 불교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보물은 물론 각 전각을 장엄하고 있는 벽화, 단청 등 경중을 따질 수 없는 불교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통도사입니다.





영산전의 팔상도를 그린 임한스님의 삼신탱이 있는 대광명전(大光明殿)입니다.

대광명전은 보물 제1827호 중로전(中爐殿)의 중심건물입니다. 대웅전(大雄殿) 서북쪽에 위치(位置)하며 건물의 규모나 목재 또는 가구수법(架構手法)이 대웅전 다음가는 우수한 건물로 평가 받고 있으며, 1756년 10월 화재로 전소 된 것을 1758년 9월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통도사약지(通度寺略誌)에 따르면 통도사 창건 당시에 초창하였다고 하며, 자장스님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대장경 400함 가운데 화엄경 사상을 바탕으로 세워진 건물로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부에는 화엄경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있ㄴ느데, '비로자나'는 광명의 빛을 두루 비춘다는 광명편조(光明遍照)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불상 뒤편에 조성된 삼신불탱은 현재 원본은 박물관으로 이전되었으나, 조선후기 통도사를 기점으로 활동하였던 임한(任閑)스님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현존하는 삼신탱화 중에서 그 화격이 최고로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대광명전앞에서 약간 비켜 장경각(藏經閣)이 있습니다. 장경각 앞에는 자목련 한 그루가 있는데 그때 그 목련나무지 싶습니다. 통도사를 돌고 돈 이유는 목련나무를 찾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는데 의외로 많은 문화재를 만났으며 통도사에 있는 식물들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대광명전앞과 장경각 사이에 단풍나무가 있었으며, 마당 곳곳에 매화나무와 능소화, 홍도화, 오향매, 산수유, 목련 등이 있었습니다. 통도사에서 딱 1년만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 전각 내용은 안내표지판과 통도사 홈페이지를 참고했습니다.



이제 복수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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