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23일
괜히 나섰다 싶었습니다. 화엄사 주차장에서 해발 560고지에 있는 연기암은 4km였지만 연기암으로 오르는 길은 구불구불 했으며 가팔랐기에 40km를 달리는 듯 할 정도였습니다. 그 먼길을 수행하는 듯 걸어 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연기암에 간 이유는 섬진강이 보인다는 단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우체국 기사가 오토바이로 택배배달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돌려 하산하는 중이었습니다.
화엄사의 원찰로 알려진 연기암은 문수보살 기도도량으로 1,500년전 백제 성왕때 인도의 고승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하기 이전에 이곳에 토굴을 짓고 가람을 세워 화엄경을 설한 유서깊은 천년사찰입니다.
연기암의 연혁입니다.
숲길은 미타암, 보덕암, 내원암, 금정암, 지장암 등의 암자를 돌아볼 수 있는 순례의 길이지만, 우리는 첫길이었으며 설마하는 마음으로 나선 길이 위험천만한 그런 길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주차장에 도착하니 산수유가 환하게 피어 맞아 주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연기암 적멸당입니다. 연기암은 해발 560고지임에도 대웅전인 대웅상전광전(大雄常寂光殿)을 비롯하여 관음전, 문수전 등 여러 전각이 있었습니다.
기와불사를 하는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흐릿하긴 했지만 섬진강이 S자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섬진강을 보려면 화엄사에서 곧장 내려가면 만날 수 있는데 왜 연기암까지 갔는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대웅상전광전 기단아래에는 잔설이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 지역은 눈이 워낙 귀하다보니 잔설도 반가웠습니다. 얼마전 부산에 첫눈이 왔을 때 교통대란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접했으며 이웃인 웅천에도 눈이 내렸었는데 우리 지역은 종일 비만비만 내렸습니다. 어쩌면 피해가 없어 다행이긴 하지만 이웃 지역에 눈이 내린 그날 몇 번이나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며 베란다밖을 내다 봤습니다.
문수보살입니다.
문수보살은 불교의 대승보살(大乘菩薩) 가운데 하나로 우리 나라에서는 이 보살에 대한 신앙이 삼국시대 이래 널리 전승되는데, 문수는 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의 준말로, 범어 원어는 만주슈리(Manjushri)인데, '만주'는 달다[甘], 묘하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슈리'는 복덕(福德)이 많다, 길상(吉祥)하다는 뜻으로, 합하여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이 됩니다.
문수보살의 오른손에는 무명(無明)의 구름을 잘라버리는 지혜의 칼을 높이 치켜들고 있고 왼손에는 패엽(貝葉)으로 된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蜜經)을 들고서 왕자처럼 치장한 모습으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합장후 문수보살옆의 분홍매화를 만났습니다.
* 패엽(貝葉) : 옛날 인도에서 철필(鐵筆)로 불경의 경문(經文)을 새기던 다라수(多羅樹)의 잎. 두껍고 단단하며, 잎을 그어 상처를 내면 흑갈색으로 변하여 글씨를 기록할 수 있었다.
문수보살은 대웅상전광전옆에 있었으며 소나무에 싸여 하늘을 이고 있었습니다. 연기암에는 유독 석등이 많았는데 이유는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습니다.
깊은 산속의 사찰에 들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무거운 돌과 나무를 지고 날랐을 인부들의 안녕입니다. 하여 방문은 하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대웅상전광전 마당에서 내려다 봐도 섬진강이 보였습니다.
깊은 지리산에 핀 봄꽃입니다. 이미 산수유와 매화를 만났지만 풀꽃인 수선화와 제비꽃도 피어 있었습니다. 이때 든 생각은 눈이 내렸을 때 방문했다면 더 좋았을 걸이었습니다.
섬진강은 연기암 어디에서나 보였습니다. 겹겹의 지리산 자락사이로 섬진강은 구례를 굽이돌고 있었습니다.
절마당 입구에 다듬지않은 돌탑이 있었으며 윗쪽의 매화는 꽃잎을 열었는데 입구의 매화는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연기암 첫길은 모험같았습니다.
'마음 나누기 > 가본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해 왕지등대마을 벚꽃길 속으로 (0) | 2019.04.02 |
---|---|
진주 월아산 벚꽃축제, 마을잔치처럼 소박했다 (0) | 2019.03.31 |
구층암의 보물 모과나무 기둥과 암자의 봄 (0) | 2019.02.18 |
화엄사 흑매화와의 아쉬운 만남 (0) | 2019.02.14 |
고성만 해지개다리와 해안 둘레길 걸으며 본 것들 (0) | 2019.01.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