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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이란 무엇인가 - 고성 탈박물관

by 실비단안개 2006.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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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탈박물관'갈촌탈박물'의 새로운 이름이다.

경남 고성에 위치하며, 갈촌 이도열 관장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갈촌 이도열은 누구인가?

우리의 탈에 대해 이러한 철학을 지니고 20년이 넘게 탈에 미처 사는 이며, 전국을 샅샅이 뒤지고 다닌 세월만도 10년이 넘는다고 한다. 또한 단군탈을 찾기 위해 중국 천산까지 다리품을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그는 중요 무형 문화재 제 7호 고성 오광대 탈 제작 기능 이수자가 되었다.

그는 고성 오광대뿐만 아니라 한국의 탈을 알기위하여 전국 무형문화재 탈들을 만들고 연구하였다. 이러한 예능탈 외에도 신성탈(신앙탈),자연탈,문자탈,그림탈, 등 온갖 탈이란 탈은 다 만든다.그렇게 해서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탈 박물관을 구상, 마침내 정식으로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고성탈박물관에서 탈의 뜻은 '탈을 막는 모든것'으로까지 확대된다. 따라서 박물관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장승도 탈의 일종이며, 심지어는 얼굴 형태도 갖추지 않은 부적까지도 탈의 개념으로 보아주었으면한다.

 

어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다.

"내 몸과 마음에 탈 난것을 탈탈 터는 것이 탈춤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네 세상, 이 많은 탈을 막아 주는 것이 탈이다.

 

고성 탈박물관은 고성읍 율대리에 위치하며, 매년 여름이면 '장승교실'을 운영하고, 탁본, 조물조물 탈 만들기 체험교실도 있다. 전시실 1, 2관이 있으며, 신앙탈, 예능탈이 전시되어 있다.

신앙탈 : 원시시대부터 가정이나 마을의 액과 탈을 막기 위하여 만들어졌던 조형물로서, 조상들이 가졌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종류로는 조개탈, 장군탈, 처용탈, 방상씨, 십이지탈, 장승, 솟대, 암각화등.

예능탈 : 탈이 가지고 있던 신앙성이 없어지고 예능성만 남아있는 탈로서, 오늘날 쉽게 볼 수 있는 탈이다. 종류로는 고성 오광대 외 무형문화재 13군데 단체의 탈들, 농악놀이 탈, 연극이나 연희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탈 등.

 

전시실에는 탈이란 무엇인가, 탈의 역사, 탈의 종류, 탈의 분포도, 검색코너, 나의 탈 찾기, 탈춤 소개등 다양하며, 검색코너에서 궁금증은 검색이 가능하다.

 

 

 

 

 

▲ 개인, 집안, 마을의 탈과 재앙을 막아주던 조형물들

 

▲ 부산 동삼동의 패면(貝面)

 

▲ 신라시대의 목심칠면

 

탈이란 무엇인가?

탈은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모양을 만들어, 주로 얼굴에 써서 분장에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광대, 초라니, 탈, 탈박, 탈바가지 등오르 일컬어졌다. 한자어로는 면(面), 면구(面具), 가면(假面), 대면(代面), 가두(假頭), 가수(假首)등의 용어가 사용되었다.

 

탈은 본디 얼굴과는 다른 형상의 '얼굴가리개'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저 제 얼굴을 가리는 데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탈을 씀으로서 본디 얼굴과는 다른 인물이나 동물 또는 초자연적인 존재로까지 변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탈은 사람에게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격이나 신격을 획득하는 역할을 한다. 아울러 탈은 재앙과 액운을 물리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한편 '탈이 났다'고 하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탈은 고장이나 비정상적인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넓은 의미의 탈은 자연적, 사회적, 문화적 질서가 비정상적이며 불안정한 상태를 가리키며, 달리 표현하면, 자연적, 사회적, 문화적 재앙이 될 것이다. 반면에 좁은 의미의 탈은 제2의 '덧얼굴'로서 가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가면이 탈이란 말과 동일시 될 수 있었던 것은 고대에 가면이 탈을 막고 물리치는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고대 언어에서는 주체와 객체, 수단과 대상이 구분되지 않은 채 한덩어리가 되다보니, 탈을 물리치는 수단과 대상이 같은 말의 탈로 불리어졌던 것이다.

 

 

탈(가면)의 역사

가면을 사용한것은 원시시대부터인 것으로 추정되며, 수렴생활을 하던 원시인들이 동물에 접근하기 위하여 위장면으로, 뒤에는 살상한 동물의 영혼을 위로하며 또한 그 주술력을 몸에 지니기 위한 주술적 목적에서 비롯하여 점차 종교적 의식용으로, 나아가 민족의 연극적 수단으로 변모, 발전되었다.

 

우리 탈의 시작은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 된 패면(貝面)과 강원도 양구에서 출토된 토면(土面) 등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탈의 형태를 갖춘 최초의 유물로는 신라시대의 '목심칠면'을 들 수 있다. 1946년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된 이 탈은 눈알은 유리로 되어 있고, 두 눈에는 황금 환이 그려져 있다. 6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탈은 죽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상시' 탈로 보인다. 그밖에 덕물산 가면과 국보 제121호로 지정된 하회탈 및 병산탈 등이 전해진다. '삼국사기'와 최치원의 '향악잡영'에도 탈놀이 기록이 전해진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탈의 기원은 적어도 삼국시대 훨씬 이전이 된다. 궁중제의나 나례 등에 주로 연회되었던 탈놀이는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 서민의식의 향상과 더불어 신앙적인 측면보다는 양반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더욱 강조되면서 지금의 놀이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출처 : 탈 박물관에서)

 

▼ 예능탈 인물의 역할

 

 

 

 

▲ 탈 알아맞추기 코너 - 탈의 정보가 탈 뒷면에 기록되어 있다.

 

▲ 탈 체험 코너 - 탈 체험을 작성후 안내소에 가지고 가면 자신의 탈을 찾아준다.

 

▲ 소원의 나무 - 소원을 적어 소원 나무에 단다.

 

▲ 검색 코너 - 탈에 대한 궁금증을 검색할 수 있다.

 

▼ 고성의 얼굴

 

 

 

▲ 갈촌 이도열 관장님

 

 

 

 

 

▲ 우리나라와 세계의 탈 분포도와 탈 부분

 

 

▲ 주한 외국인이 그린 '우리의 얼굴'

 

 

 

 

 

 

 

 

▲ 나의 얼굴 - 도깨비탈, 1996년. 이 탈들은 1996년 초등학생 탈 만들기 공모전에 나온 탈이며, 도깨비탈 만들기가 주제는 아니었지만, 하나하나 개성이 넘치는 이 탈들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도깨비 얼굴이다. 도깨비는 원래 우리들의 무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초등학생이 만드는 도깨비탈을 통해 지금이 바로 도깨비 세상이라는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 2전시관 입구의 '쇠돌이' - 쇠돌이 탈은 고성 사람들이 쇠처럼 강하고 돌처럼 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을 표현한 탈이며, 코가 비뚤어진것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 탈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하여 관람중인 어른 두분이 의자에 앉았을 때.

 

▲ 1층 안내소에서 우리 탈을 탁본중인 어린이

 

▼ 2층 체험실 - '조물조물 탈 만들기'

 

 

 

관람 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휴관일 : 1월1일, 설날및 추석날 당일, 매주 월요일, 법정공휴일 다음날

관람요금 :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조물조물 탈 만들기 : 소요시간 40분  참가비 4,000원

 

 

 

 

나의 탈은 어떤(무엇)것일까?

'사람사는 세상', 탈없이 '좋은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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