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함께 즐거우면 더 좋지 아니한가!
마음 나누기/맑은 사진 - 꽃과 …

오얏 꽃 - 자두나무 꽃

by 실비단안개 2007. 3. 27.
728x90

며칠전 비가 내리는 날 초등학교에 갔을때, 민속관에 빗물을 방울방울 달고 있는 하얀꽃을 만났었다. 매화도 아니며, 벚꽃도 아니었고 배나무 꽃과 흡사하였지만, 배나무 꽃보다 꽃잎이 작은게 처음 만나는 꽃이었다. 몇컷을 담고 교무실을 찾아 근무중인 분(교사인지 행정실 직원인지는 여쭙지 않았음.)에게 여쭈니 모르겠다는 답변이라 여간 서운한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길로 집으로 오는데 집 앞의 밭을 사이에 두고 남의 담장 안에서 밖을 기웃거리는 빗방울 닮은 꽃봉오리를 만났다. 수령 십수년은 된듯한 나무였으며, 하늘을 가릴정도로 많이도 맺힌 봉오리들이었지만, 이름은 여전히 알길이 없었다.

 

어제 잠시의 나들이길에 집 앞의 빈 밭 건너에서 기분좋게 하얗게 꽃잎이 하늘거렸다. 내가 잡동사니 가방을 벗는 일은 그리 흔하지않은데 빈 밭에 가방을 벗어두고 오래오래 그 향기에 취하다왔다. 동네 어르신 두분께 여쭈니 역시 모르겠다는 답변이었기에 '야사모'의 고수님들께 여쭈니 조회 20여회쯤에서 답변이 올랐는데 새콤달콤한 자두의 꽃이라고 하였다.

그렇구나, 그랬었구나 --

이 꽃은 지난해도 피었었고 지지난해도 피었을텐데 나의 무신경이랄까, 이즘이면 피는 벚꽃과 배나무 꽃에 정신을 잃어 그렇게 스친 꽃이었다.

검색을 해야지.^^

 

자두

자도(紫桃)를 자두로 부른다. 또 오얏나무라 하고 이(李)라고도 한다. 3월에 움이 트는 오얏꽃은 4월이면 절정을 이룬다. 제아무리 무신경인 사람도 오얏 꽃밭에 들어서면 가슴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이(李) 또는 자도(紫桃)란 글자대로 복숭아 모양의 붉은 자줏빛 과일이다. 중국이 원산지로 대추, 밤, 감, 배와 함께 다섯 과일(五果) 중 하나로 무척이나 중히 여겼다. 《예기(禮記)》에 이미 “복숭아와 오얏, 살구, 매실을 임금께 진상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의 재배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라 때 벌써 가꾸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말 풍수의 대가 도선(道詵) 스님이 쓴 《비기(秘記)》에 “고려 왕(王)씨에 이어 이(李)씨가 한양에 도읍 한다.(繼王者李而都於漢陽)” 고 예언했다. 고려 조정은 예민한 반응을 보여 고려 중엽부터 한양에 벌리목사(伐李牧使)를 두었다. 백악(白岳 지금의 북한산)에 오얏나무를 심고 나무가 무성할 때면 반드시 모두 찍어서 이 씨의 기운을 눌렀다.

500여 년 전에 이씨 왕조를 예견한 도선국사(道詵國師)의 예언이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실현된 것이라고 사람들은 무릎을 친다. 무학이 도읍지를 정하려고 만경대의 맥을 밟아 남으로 가다가 비봉에 이르러 “무학은 이 곳에 잘못 이르렀다(無學誤尋到此)”라는 도선의 비석을 발견한다. 무학은 길을 잘못 잡았음을 알고 그 길을 되돌아가 만경대의 정남맥을 좇아 바로 백악에 이르니 삼맥이 합하여 한 덩어리가 되는 명당이라 그 아래 궁성의 터를 잡았다.
그곳이 바로 고려 조정이 신경을 쓰며 오얏나무를 베던 자리(伐李址)라는 전설이다. 고려 왕조는 해마다 자두나무를 찍으며 그 기를 눌렀으나 결국 이씨를 잡지 못해 나라를 빼앗긴 셈이다. 지난 70년대까지 바로 벌리를 하던 서울 자하문 밖은 자두나무 명산지였다.

고려 가요 〈동동(動動)〉에는 사랑하는 님을 보름달 아래 활짝 핀 오얏나무에 비유했다. 오얏나무가 풍요와 위엄의 상징이었던 때문이다. (출처 : Daum
신지식Q&A)

 

이씨 조선왕조의 상징 자두 꽃

오얏은 우리나라에서 김씨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이씨 성(姓)을 상징하는 꽃이며 훗날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꽃이 되기도 했습니다.
<고려사>에 보면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4년 전인 우왕 14년(1388)에 “목자가 나라를 차지한다”라는 노래를 남녀노소 모두 불렀다고 전한다. 종묘제례악으로 세종 31년(1449) 창제된 <정대업定大業> 가사에도 “……삼천 개의 열매 맺은 오얏이 번창하네 / 오얏이 번창하니 즐거움 끝이 없네……”라고 하여 목자(李)가 정권을 잡은 조선 왕가의 번창을 바로 오얏이 많이 달리는 것에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오얏나무(자두나무)는 본래 우리나라에 자라던 나무가 아니고 삼국시대 이전에 중국에서 가져다 심은 수입나무이랍니다.
시경(詩經)에 보면 중국에서도 주나라 시대에는 꽃나무로서 매화와 오얏을 으뜸으로 쳤다 한합니다.
이처럼 오얏나무는 <삼국사기>와 <고려사>에도 복숭아와 더불어 여러 번 등장하는 옛 과일나무이며, 또 꽃을 감상하는 꽃나무이기도 합니다.

조선이 오얏나무를 왕조의 나무로서 특별히 대접한 적은 없으나,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부터 오얏꽃은 왕실을 대표하는 문장(紋章)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1884년 우리 역사상 최초로 우편업무를 시작한 우정국은 1905년 통신권을 일본에 뺏길 때까지 보통우표 54종을 발행했었습니다.

이씨 왕가의 문장인 오얏과 태극 문양이 주조를 이룬 우표였기에 이화우표(李花郵票)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말기 백동으로 만든 화폐에도 표면의 위쪽에는 오얏꽃, 오른쪽에는 오얏나무 가지, 왼쪽에는 무궁화 무늬를 새겨 넣었습니다. 또 덕수궁 석조전 용마루, 순종황제 어가, 대한제국 군대 계급장에도 오얏 문양이 들어갔습니다. (출처 : cafe.daum.net/ipssak)

 

☆.. 모든 사진 확대 가능

 

 

 

 

 

 

 

 

 

 

728x90

'마음 나누기 > 맑은 사진 - 꽃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에 피는 눈꽃 조팝나무꽃  (0) 2007.03.27
복사꽃, 살구꽃... 고향의 봄  (0) 2007.03.27
동백꽃 - 07 - 8 오동도 동백꽃  (0) 2007.03.26
개나리 - 07 - 2  (0) 2007.03.24
수선화 - 07 - 2  (0) 2007.03.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