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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진해 풍경

함정 이름은 어떻게 지어질까/해군창설 70주년 기념 특별전(해군사관학교박물관)

by 실비단안개 201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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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 사관후보생 수료 및 임관, 해군창설 70주년 기념특별전 개막식이 있었으니 하루에 여러 일이 해군사관학교에서 있었습니다.

해군창설 70주년 기념 특별전 개막식이 오후 1시에 있었으며, 사관후보생 수료 및 임관식은 오후2시에 있었는데 박물관 관람에 시간이 1시간 이성 요할것 같아 수료 및 임관식을 마친 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특별전 관람을 했습니다.

해군 창설 70주년 특별전은 '대한민국 해군, 우리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11월 27일~12월 31일까지입니다.

 

군항제 기간이 아닌 경우 민간인 신분으로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을 방문하여 관람을 하기에 사진찍기가 망설여져 관계자에게 여부를 물으니 찍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연혁

해군사관학교는 1946년 1월 17일에 창설된 이후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문헌자료를 수집하 여 왔으며, 그 문헌자료들을 전시하기 위해 도서관 내에 문헌 전시실을 임시로 운영하였다.

그후 개교 30주년 기념일인 1976년 1월 17일을 맞이하여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창설되었는데, 당시에는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문헌 전시실을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창설 당시의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은 도서관 건물의 일부를 빌려서 사용했으며, 그 규모는 작은 사무실 1칸에 불과했다.

그러한 가운데 박물관은 1980년 1월 31일에 충무공 이순신이 창제한 거북선을 실물 크기로 복원하여 해군사관학교의 귀빈부두 해상에 계류 전시하였고, 1981년 2월 23일에는 독립된 박물관 건물을 해사반도의 현 위치에 신축하였다.
그리고 1990년 4월 28일에는 박물관을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출처 : http://museum.navy.ac.kr/inf/inf_01.jsp)

 

특별전시실에 들어서면, '바다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며, 해양의 중요성이 설명되어 있고 본전시실에 들어서면 이순신 장군과 손원일 제독의 흉상이 마주보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 http://museum.navy.ac.kr/bor/bor_01.jsp

- 손원일 제독 :

손원일(1909. 6. 22 평남 강서~1980. 2. 15 서울.)

초대 해군 참모총장과 독일(옛 서독) 대사를 역임한 군인·외교관.
일제강점기 상하이 임시정부의 의정원 의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손정도 목사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의 독립운동으로 1921년 만주로 건너간 손원일은 1925년 원광중학교를 졸업하고 상하이로 유학을 떠났다. 의과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하던 그는 어느 날 제복을 입은 해군의 모습을 보고 진로를 바꾸어, 1927년 상하이 중앙대학교 항해과에 입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3년 간 외국 선박해사에서 항해사로 근무하다가, 1934년 개성에 있는 누나를 방문하기 위해 잠시 귀국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에 의해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상하이 임시정부 비밀 연락원의 임무를 띠고 잠입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2개월 간 혹독하게 고문을 당한 뒤 무혐의로 풀려난 손원일은 다시 중국으로 떠났고, 동화양행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광복과 함께 귀국한 손원일은 혼란한 사회 상황에서도 해군 창설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이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하였다. 먼저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을 규합하고 미 군정청과 협의한 끝에 1945년 11월 11일 한국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을 창설하였다. 해방병단은 1948년 9월 대한민국 해군으로 정식 발족되었고, 같은 해 12월에 손원일은 초대 해군참모총장의 지위에 올랐다. 손원일은 인재양성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1946년 1월 지금의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군병학교를 창설하여 초대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직접 생도들을 가르치기도 했다.(출처 : 다음 백과)

 

대한민국 해군은 광복 후 3개월이 지난 1945년 11월 11일, 육 ·해 ·공 3군 중 최초로 해방병단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습니다. 정부수립3년전에 창설된 해군은 조국해양수호의 주축 세력에 걸맞게 조직을 다져나갔습니다. 창군기 우너로들의 피나는 노력은 6 ·25전쟁 당시 눈부신 활약으로 이어졌고, '호국해군'과 '필승해군'의 위상을 정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해군의 창군 정신 및 창설주역실에는 손원일 제독과 창군기 해군참모총장들의 사진과 유품, 명패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 회원들이 눈여겨 보고 있는 것은 (해군의 창군 정신과 전통 계승아래의 액자) 봉고제 축문으로 진해특설기지에서 행해졌던 충무공 봉고제에서 사용한 축문으로 즉 충무공을 받들어 올린 제의에서 낭독하는 축문입니다.

 

 

▲ 봉고제 축문

 

 

 

 

해군하면 함정인데요, 해군 창설 초기 1척의 군함도 보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과 일본에 협상을 시도하여 1948년까지 총 37척의 군함을 인수하였고, 이후 함정건조기금을 모금하여 1949년 10월에는 한국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을 도입하였습니다.

 

백두산함은 우리나라 해군 장병과 가족들이 모은 성금으로 1949년도에 마련한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용도 폐기되어 미국의 어느 대학교 실습선으로 쓰이던 배를 녹칠 제거하고, 여기저기 망치로 두드려서 수선해 인수한 다음 뉴욕에서 하와이를 거쳐, 대만민국으로 아슬아슬하게 끌고 왔다고 합니다.

이 전투함이 하와이에 기착할 때 일제에 끌려가서 모진 노동에 시달리던 당시 하와이 교포들이 대한민국이 독립하여, 자랑스런 고국의 전투함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구름처럼 진주항에 모여 들었답니다.

 

이윽고 나타난 대한민국의 백두산함은 태극기 달랑 달고 들어온 눈에 뛰지도 않을 만큼 작고 초라한 450톤으로 함정의 전장은 52.9M였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2개월전에 진해에 입항했습니다.

그래도 모두 감격에 겨워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백두산함은 10년동안 최전방에서 해양수호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고 1959년 퇴역했으며, 백두산함 마스트는 해군사관학교 해사반도에 전시보존하고 있습니다. 해사반도의 백두산함(PC-701) 마스트(돛대)앞에는 필사즉생 필생즉사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난중일기 중) 비석이 있습니다.

 

 

▲ 백두산함

 

▲  해사반도의 백두산함(PC-701) 마스트(돛대)와

필사즉생 필생즉사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난중일기 중)

 

한국전쟁과 뗄 수 없는 또 하나의 기적의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입니다.

기네스북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조를 한 배'로 기록되어 있는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흥남부두에서 1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1950년 12월 25일 거제 장승포항에 피난민을 내렸는데, 항해 도중 5명의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 메러디스 빅토리호 

 

 

장보고함, 김좌진함, 참수리호 등 많은 군함과 잠수함이 있는데, 해군에 있어 발과 같은 군함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질까요?

해군 함정은 무게, 임무 및 기능에 따라 분류하는데, 군함의 만재배수톤수가 500톤 이상이며 영관장교가 지휘하는 군함을 함(艦)이라 하며, 만재배수톤수가 500톤 미만이고 위관급 이하 장교가 지휘하는 군함을 정으로 분류합니다.

단 잠수함의 경우는 수중 배수톤수150톤을 기준으로 함과 정으로 분류됩니다.

또 함정은 임무와 기능에 따라 전투함, 전투지원함, 전투근무지원정으로 분류합니다.

 

 

함정 이름짓기입니다.

민간인인 우리가 볼 때는 이름만 다르지 다 같은 군함같은데요, 함정의 이름은 유형과 이미지와 관련된 도시, 조류, 호수, 산이나 강, 역사적 인물 등으로 정한다고 합니다. 해군의 구축함은 국방과 관련된 위인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율곡 이이], 호위함과 초계함에는 지명 [울산,서울,충남], 잠수함에는 해상이나 독립 운동에 공헌한 인물 또는 최근에 국가 발전에 기여한 인물 [장보고, 김좌진, 손원일], 고속함정에는 조류명[참수리], 상륙함에는 산이나 도서 명[독도, 비로봉, 향로봉], 유조함과 군수지원함에는 호수 [천지], 기뢰전함에는 한국전쟁시 기뢰전과 관련된 북한지역의 지명 [원산] 등을 선정합니다.

 

이 자료를 설명할 때 이배사 회원이 유관순함은 없느냐고 물었으며, 윤봉길함과 유관순함이 있었습니다.

 

 

함정 명칭과 함께 사용하는 함정의 번호 단위입니다.

 

 

 

유관순함은 잠수함으로, 잠수함에는 해상이나 독립 운동에 공헌한 인물 또는 최근에 국가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함명을 제정합니다.

그런데 209급 SS 장보고함이 214급 SS에도 있었는데 이는 잘못 기록되었는데 특별전을 앞두고 관계자께서 정신없을 정도로 바빠 헷갈렸나 봅니다.

209급에는 장보고함, 이천함, 최무선함, 박위함, 이종무함, 나대용함, 이억기함, 이순신힘, 정운함이 있으며, 214급에는 손원일함, 정지함, 안중근함, 김좌진함, 윤봉길함, 유관순함이 있는데 군함에 여성의 이름이 명명된 건 유관순함이 처음입니다.

 

 

제장명 교수의 호위함과 초계함 설명중인데 회원 대부분이 문화관광해설사다보니 질답이 이어졌습니다.

 

 

 

해군 함정 설명 앞쪽엔 모형 함정이 있습니다.

 

 

▲ 구축함 충무공 이순신함과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함정 설명이 있는 같은 공간에 해군의 NLL 수호 의지편에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등이 설명되어 있으며, 한주호 준위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앞쪽에는 북한 어뢰발사 추진체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순항훈련은 해사 4년간의 교육훈련 과정을 총결산하는 함상 군사실습으로 1년의 3분의 1 기간동안 5대양 6대주를 항해한다고 합니다.

 

 

장교 계급장 중 대령, 중령, 소령의 계급장을 우리는 보통 무궁화라고 하는데 과연 무궁화가 맞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대한민국 해군의 장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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